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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힘을 빼야 비선이 사라진다
[헌법, 우리가 바꾸자] 서혜미 기자
2016년 12월 07일 (수) 23:00:54 서혜미 기자 weselson_@naver.com
   
▲ 서혜미 기자

‘황제 폐하 만세’라 할 때 ‘만세’는 황제만이 들을 수 있는 찬사였다. 명 말기 환관 위충현은 ‘구천세’와 ‘구천구백세’라는 단어를 고안해낸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백성들은 이를 외쳐야 했다. 환관의 영향력이 미미했던 역대 한반도 왕조를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환관은 황제 다음가는 존재인 때가 많았다. 궁형을 당한 사마천은 내정의 비서실장 격인 중서령에 올랐고, 당대에는 환관이 황궁 안 군사권을 틀어쥐었으며, 명대의 환관은 비밀 정보기관인 동창, 서창, 내창을 구성하며 대신들의 목숨을 좌우했다.

오늘날 환관과 비슷한 존재가 있다면 대통령 측근이다. 이들은 ‘비선 실세’라 불리며 한국 정부 수립 이후부터 끊임없이 권력을 남용했다. 민주화 이후만 쳐도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은 안기부장과 독대해 정보를 보고받고, 뒤에는 권력형 비리인 ‘한보게이트’에 연루됐다.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의 친형들도 비리를 저질렀다. 최순실 게이트 역시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개인이 국가 비밀문서를 열람하고, 정부의 주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깊이 개입했으며, 자신과 친한 이에게 공직 자리와 사업 특혜를 줬다. 아무 공직을 맡지 않은 사인에게는 책임조차 묻기 힘들다는 점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크다.

   
▲ 환관은 중국 최후의 왕조인 청대까지 존재했다. ⓒ 위키피디아

환관과 비선실세의 공통점은 모두 황제와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한다는 점이다. 대신들을 숙청하고 쿠데타까지 마다치 않은 환관의 전횡은 역설적으로 황제 덕분이었다. 환관의 권력은 한·당·명·청을 거치며 강해졌다. 중국 황제들은 왕조를 거듭할수록 전제독재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했고, 이런 황제를 가까이서 보좌하는 환관의 세력도 덩달아 커졌다. 25년 넘게 측근 비리가 끊이지 않는 배경에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막강한 권한이 있다. 한국 대통령이 임기 동안 직접 임명할 수 있는 공직은 약 3천 개,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는 만 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필요 이상으로 강력한 권력을 지닌 사람 곁에 떡고물이 떨어지길 바라는 이들이 기생하는 것은 필연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제왕’을 떼야 한다. 고려와 조선에서 환관들이 득세하지 못한 이유는 귀족과 사대부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귀족과 사림 세력은 왕권을 견제했고, 그 결과 왕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제한적이었다. 한국도 대통령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도록 의회 권한을 키워 행정부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령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때 청문회만 여는 것이 아니라 청문회에서 반드시 국회의원 과반이 고위공직자 임명에 동의하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은 적절한 검증 없이 대통령이 아무나 임명해 터진 사건이었다.

국정감사 대신 상시청문회를 도입하는 것도 의회 권한을 키우는 방법이다. 국정감사는 20일 안에 피감기관 수백 곳을 들여다봐야 한다. 한 해 예산안 검토 시기와 맞물려 있어 온전히 감사에 집중할 수 없고, 한 상임위가 하루 20여 곳을 감사하기도 한다. 의원이 꼼꼼히 현안을 파악하는 대신, 보좌관이 넘겨주는 자료만 받아 읽으며 장·차관에게 호통만 치는 관행이 횡행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청문회를 수시로 열어 행정부의 인사와 예산집행 등을 평소에도 감시·견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미국은 상원이 연간 1,200회, 하원이 연간 2,000여 회의 청문회를 개최해 대통령을 견제한다. 한국 못지않게 대통령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지만, 비선비리 등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비선의 비는 ‘숨길 비(秘)’다. 비선들은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집권자를 보좌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외 없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눈에 띄게 국정에 개입하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횡포를 부린 탓이다. 역사적으로 비선의 폐해가 극에 달한 시기는 왕조의 쇠락기와 맞물렸다. 명대 위충현, 후한 십상시, 전국시대 조고는 왕조의 몰락을 직접 이끌기도 했다. 역대 한국 정부도 비선비리와 국정농단이 드러난 시기에 레임덕이 빨라지며 결국 정책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저출산과 저성장, 북핵위협 등 한국이 처한 대내외적 상황은 어둡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비선실세로 지목된 사람들을 철저히 처벌하고, 비선의 폐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대통령이 불쑥 개헌론을 던졌다. ‘게이트’가 열리지 않도록 하려는 불순한 의도였다. 이를 간파한 시민사회와 야권은 ‘수사와 퇴진이 먼저’라며 유례없는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어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어느 대통령 할 것 없이 불행한 말로를 겪게 되는 이유는 개인 자질 탓도 있지만 권력구조가 잘못 짜여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비뉴스>는 대선 전이든 후든 개헌론이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미리 논쟁의 터를 마련하기로 했다. 마침 이봉수 교수의 튜토리얼 시간에 제출된 과제들 중에 학생들의 다양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이 많아 토론과 첨삭을 거친 뒤 연재한다. 권력구조 말고도 새 헌법에 담을 다양한 제언과 참신한 시각들을 환영한다. (편집자)

편집 :  고륜형 기자

[서혜미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팀장, 편집부, 전략부 서혜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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