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로그인 회원가입
2017.11.18 토
> 뉴스 > 칼럼 > 이봉수 칼럼
     
서러운 지난날들은 왜 반복되는가
[이봉수 칼럼]
2016년 12월 03일 (토) 13:11:00 이봉수 hibongsoo@hotmail.com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결정적 순간에는 영화도 그렇듯이 주제곡이 등장한다. 양희은의 ‘아침이슬’과 ‘행복의 나라’를 따라 부르던 군중은 ‘상록수’를 부를 때는 숙연해지며 눈물을 흘리는 이도 많았다. ‘거칠은 들판’은 노동현장과 진눈깨비 흩날리는 광화문광장이었고 ‘솔잎’은 백만이 넘는 군중과 TV로 그 광경을 지켜본 수천만 민중이었다. 서럽고 쓰리던 날들은 왜 반복되는가, 다시는 오지 말라고 그렇게 소망해도.

70년대 금지곡 ‘아침이슬’과 ‘상록수’는 유신시대를 관통하는 저항가요였다. 10.26사건으로 유신의 핵인 박정희가 제거돼 ‘상황끝’인 줄 알았는데, 전두환과 노태우 그리고 이명박과 박근혜로 끊임없이 핵분열하면서 저항가요 또한 40여 년간 재생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선진국에서 저항가요는 ‘라 마르세예즈’처럼 애국가 반열에 오른 것들을 빼고는 다시 광장에 불려 나오는 일이 드물다. 그들은 노래에 담긴 혁명정신을 과격하게는 왕의 목을 날리는 ‘레짐 체인지’로, 온건하게는 제도개혁으로 구현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떤가? 요즘 우리 국민은 막장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고 황당하고 참담하다는 뉴스에 빠져있다. 주말에는 분노를 표출하려고 광장으로 모여들지만, 수구세력은 끈덕지게 반전을 노린다. 이 드라마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뉴스가 막장 드라마와 궁중사극의 요소를 두루 갖췄으니 몇 백 년, 천 년 뒤까지도 사극의 단골 소재가 될 것이다. 드라마를 제대로 만든다면 그 주인공은 누가 될까? 드라마에서 검찰∙기자∙재벌∙정치인은 어떻게 그려질까?

국정농단 주범은 김기춘 정점의 공안세력

우선 박근혜는 최순실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로 그려질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제대로 만든다면 최순실의 역할은 제한적으로 묘사하고 대신 김기춘을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부각해야 마땅하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김기춘에 견주면 훨씬 가볍다.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넘어 우상화를 꿈꾼 박근혜를 조종한 점은 둘 다 같지만, 최순실이 사적 이익을 추구한 반면 김기춘은 총체적으로 민주공화국을 유린했다. 문화체육부 인사개입 문제로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지만 전체 죄과에 견준다면 곁가지에 불과하다.

김기춘은 5.16장학생 출신으로 새파란 검사 시절부터 공안검사 경력을 쌓으며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등으로 재직하며 민주인사를 탄압하고 고문으로 간첩을 조작해내고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주도했다. 또 초원복집 사건으로 지역감정에 불을 붙이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법제사법위원장으로 검사 구실을 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김기춘은 2010년 10월 26일 박정희 31주기 추도식에서 박근혜가 보는 가운데 “각하께서 못 다 이루신 꿈들이 박(근혜) 대표를 통하여 활짝 꽃필 수 있도록 언제까지나 함께 하시고 가호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라며 박정희를 ‘수호신’으로 미화했다.

그는 실제로 7인회 멤버로서 박근혜 정권 창출에 기여한 뒤 비서실장 자리를 꿰차고 한국사회를 극단적인 이념 대립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파헤치던 채동욱 검찰총장을 축출하고, 법원도 “길들이도록” 지시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진상을 조사하려는 세월호특별법이 “국난을 초래한다”며 세월호집회에는 극우단체에 맞불집회를 열도록 지시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기획하고, “문화∙예술계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블랙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계를 넘어 학계∙언론계 등에도 존재한 것 같은데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자기 얘기를 해서 민망하지만 <경향신문> 시민편집인에서 잘린 것도 블랙리스트에 따른 것으로 느꼈다. 시민편집인 제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재정지원으로 운용됐는데 박근혜 대선캠프 출신이 이사장으로 온 뒤 예산을 잘라버린 것이다. 재단이 주관하는 언론사 수습기자교육도 단골 강사였는데 섭외가 뚝 끊겼다. 하긴 2년 전 마지막으로 쓴 칼럼들이 ‘불한당 정체성 드러낸 새누리당 정권’과 ‘박 대통령과 연산군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이었으니 내 ‘업보’인지도 모르겠다.

‘정신적 내전’ 유발한 뉴라이트의 약진

정부가 영향력을 갖는 하찮은 자리까지 사상검증을 하고, 유신체제에 기여했거나 그 시절을 흠모해 마지 않는 뉴라이트들을 대거 요직에 앉힌 것도 인사위원장을 겸하던 김기춘이었다. 그를 정점으로 하는 유신잔당과 뉴라이트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을 계승한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이기동), KBS 이사회(이사장 이인호), MBC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고영주) 등을 모조리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하고 공영방송을 어용방송으로 전락시켰다. 그들이 노린 것은 국민의 정신까지 지배한 유신시대의 부활이었다.

특히 공안검사 출신인 고영주는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할 만큼 극도로 우편향돼 있지만 공정성이 생명인 공영방송 이사장 자리를 꿰찼다. 그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으로서 방송문화를 진흥하기는커녕 MBC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한직으로 밀린 무능한 인물도 자기 이념에 동조하면 요직에 앉히는 인사농단이 빚은 언론참사였다. 편파왜곡보도가 얼마나 심했으면 MBC는 광화문 집회현장에서 생방송조차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MBC는 세월호 참사 때도 현장에 맨 먼저 달려간 목포MBC 취재진이 “160여명밖에 구조하지 못했다”고 보고했지만 서울 보도본부가 무시함으로써 ‘전원구조’라는 초대형 오보를 바로잡을 기회를 놓쳤다. 저널리즘의 표준만 지켰더라도 정부의 초기대응 속도가 빨라져 구조된 인원도 늘었을 터이다. 박근혜가 3차 담화에서 엉뚱하게도 언론 탓을 했지만 그런 언론을 만든 총책임자가 바로 자신이다.

정권 초기와 말기가 전혀 다른 검찰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사회를 감시해야 할 검찰을 오히려 정치검찰로 악용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김기춘과 함께 공안통치의 상징이 된 인물은 ‘리틀 김기춘’ 소리를 듣는 황교안이다. 그는 경기고 동기인 이종걸과 노회찬이 유신반대 유인물을 뿌릴 때 유신체제를 옹호하는 학도호국단 연대장이었으니 일찍부터 유신이 길러낸 ‘인재’였던 셈이다.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독재를 지탱하는 핵심 인물 중에는 법대 출신이 많다. 7인회 멤버도 다섯이 서울법대 출신이고 둘이 육사 출신이다. 육사와 법대 출신, 곧 ‘육법당이 유신체제를 지탱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유신이 선포되고 44년이 지나도록 우리 사회는 공안세력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경준, 김형준 등 검찰비리 연루자뿐 아니라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우병우와 이인규도 모두 서울법대 출신이다. 그러고 보니 촛불집회에 기름을 끼얹는 막말의 주인공 김진태도 서울법대 출신이네. 국회가 탄핵을 가결해도 최종관문인 헌재의 소장으로 버티고 있는 박한철 역시 서울법대와 대검 공안부장 출신이다.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산 7080세대들은 전공과 상관없이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곤 했다. 그런데 서울법대 다니는 친구의 하숙집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고시서적 말고는 일절 책이 없는 게 아닌가? 다른 책은 고시공부에 방해가 된다나?

우리는 반 세기 동안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아왔다. 서울법대는 홍성우 황인철 조준희 조영래 같은 인권변호사를 비롯해 소신껏 일하는 법조인도 많이 배출했지만 독재에 기여한 부분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요즘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휘하는 특별수사본부가 힘을 좀 내니까 검찰을 향한 분노가 누그러지고 기대감도 생기는 듯하다. 그러나 <한겨레> 등이 오랜 기간 특종보도를 이어가도 꿈쩍하지 않았던 게 바로 그 조직이다.

검찰은 늘 정권 초기와 말기에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왔다. 이번에도 수사검사들은 비서관이 박근혜와 전화한 내용을 듣고 “어쩌면 저렇게 무능할까”라는 반응을 보였다는데, 그들은 그동안 어디에 유능했던가? ‘권력의 시녀’ 소리를 들으며 체제유지에 앞장서다가 국정파탄과 레임덕 현상이 생길 때쯤에야 민심에 밀려 수사에 착수하곤 했다.

최악의 조합, 유신잔당+언론

이런 검찰의 행태를 똑같이 반복해온 게 언론이다. 모든 언론이 지금 최순실-박근혜 커넥션을 비난하고 있지만, 그들의 국정농단을 조장한 게 누구인가?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최순실이 ‘박근혜 인형’에게 한복을 입혀 외교무대에 세우고 빨간 옷을 입혀 ‘투자활성화복’이라 선전할 때 보수언론은 ‘패션외교’니 ‘패션정치’니 하면서 얼빠진 행태를 오히려 부추겼다. <동아일보>는 무려 4개 면을 펼쳐 ‘박근혜 패션 프로젝트’를 내보내기도 했다.

   
▲ 박근혜 대통령 패션 관련 보도들. ⓒ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

누가 뒤에서 조종하는지는 몰랐지만 아무래도 ‘무당끼’가 끼어든 것 같아 취임 1주년 무렵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에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옷을 갈아 입었는지 박근혜 사진을 전수조사해 <단비뉴스>에 보도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공식석상 의상만 1년 만에 무려 122벌! 희대의 인형술사 최순실은 자신의 꼭두각시가 꼬까옷을 입고 자신이 주입한 메시지로 세상을 뒤흔들 때 얼마나 희열을 느꼈을까?

   
▲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1년간 공식석상에서만 122벌의 다른 옷을 착용했다. ⓒ 단비뉴스, 오마이뉴스

박근혜 정권은 공영방송 어용화에 그치지 않고 비판언론에는 툭하면 소송을 제기해 재갈을 물리려 했다. 극우언론에는 재정 지원을 퍼붓고, 종편에는 특혜를 아끼지 않았다. 탄압과 회유의 수법들은 괴벨스의 나치 선전체제와 유신체제에서 배운 언론대책이었다. 자발적으로 박근혜 정권 창출과 유지에 헌신한 언론이 많았던 게 차이라면 차이였다. 사실 유신 때도 언론자유가 있었더라면 유신잔당들이 독재자의 딸을 내세워 재집권하는 일은 없었을 터이다. 그나마 그 누구도 청산하지 못한 ‘박정희 신화’를 딸이 일부라도 허물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재벌이 ‘피해자’라고?

‘박정희 신화’ 중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것은 개발주의와 재벌에 특혜를 주는 성장지상주의다. 박정희는 물론 공과가 있는 인물이지만, 지금은 그 폐해가 크다. 개발주의는 ‘생태’ ‘환경’ 등 참신한 주제로 포장한 신개발주의로 둔갑해 4대강을 오히려 망쳐놓는 것으로, 성장지상주의는 재벌의 비리를 눈감아주고 특혜를 주는 정경유착으로 재림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검찰 공소장을 뜯어보면 재벌은 모두 ‘피해자 롯데’ 식으로 표현돼 있다.

그들이 정말 피해자인가? 삼성은 ‘200억+a’의 푼돈으로 ‘이재용 세습’으로 가는 관문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문제를 통과했다, 국민 대부분이 가입한 국민연금에 수천억원의 손실까지 끼치면서. 그동안 수백조원 삼성그룹을 물려받으면서 고작 수백억원 상속증여세만 낸 것은 정경유착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사실상 조세포탈의 범죄다.

유신체제의 최대수혜자였던 유신잔당 중에서도 ‘친박’ 정치인들은 ‘시민혁명’에 맞닥뜨린 지금도 반전을 꾀하려고 온갖 술수를 부리고 있다. 생존에만 급급하는 정치낭인은 물론이고 진정한 보수의 가치가 훼손되는 걸 걱정하는 일부 정치인까지 회유해 일단 탄핵을 저지하려 든다.

현대사를 뒤돌아보면 해방은 친일파의 재집권으로 의미가 반감됐고, 4.19혁명은 5.16쿠데타로 뒤집혔다. 6월항쟁은 유신잔당의 반간계(反間計)에 민주진영이 분열하면서 쿠데타 세력의 재집권으로 귀결됐다. 민중은 비주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나, 그는 탄핵 파동 끝에 간신히 임기를 이어갔고 결국 검찰과 언론의 흉기에 숨졌다. 하긴 노무현도 박정희가 키워놓은 삼성재벌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김대중도 유신잔당의 보스인 김종필과 손을 잡고서야 정권교체를 할 수 있었을 정도로 유신의 뿌리는 깊고 넓게 퍼져있다.

민주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드시 반복되고 부역자는 다시 부역한다. 일제 때 순사였던 친일파 최태민은 ‘빨갱이’ 잡는 경찰로 변신했고 각종 종교 지도자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두 가문 2대에 걸쳐 국정을 농단했다. 반민특위에서 풀려난 친일 헌병 박종표가 마산경찰서 경비주임이 되어 김주열 학생의 눈에 직격으로 최루탄을 쏜 것은 드라마보다 더 슬픈 우리 역사다.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학과 구조주의를 결합했다. 그가 보고자 한 것은 역사적 사건이나 현상들과 함께 흐르면서 그 이면에 숨어있는 장기적 구조였다. 한국사회는 36년간의 친일을 청산하지 못했고 그보다도 더 오랜 기간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유신잔당의 기득권체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민주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알다시피 상록수의 가사는 이렇게 끝난다. 이번에는 소망이 이뤄질까?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실립니다.

편집 : 강민혜 기자

     관련기사
· 박근혜 대통령 ‘처세술’ 누구한테 배웠나
· 박 대통령과 연산군의 같은 점과 다른 점
· 취임 1년 선보인 옷만도 122벌
· 선진국의 압도적 선택, 의원내각제
· ‘독일식 비례대표’ ‘대통령 결선투표’ 도입
· 현행 헌법만 잘 지켰어도…
이봉수의 다른기사 보기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나누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Follow danbi_news on Twitter

단비뉴스소개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7136)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로 65(신월동 579)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413호|Tel 043)649-1557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문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환
Copyright 2009 단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nbi@danb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