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대구 촛불집회 현장을 가다

11월 12일 백만 개의 촛불이 타올랐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그 현장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 느꼈다. 거대한 광화문광장이 팔을 펼 수도 없을 만큼 비좁아졌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모두의 얼굴에 희망이 담겨 있었다. 내 함성이 옆 사람 함성과 합쳐지자 땅이 흔들렸다. 모두가 전율했고, 대통령이 하야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순진했다. 대통령은 예상을 뛰어넘는 상대였다. 11월 19일 집회를 거치면서 퇴진을 외치는 함성은 더욱 커졌지만, 대통령은 그럴수록 청와대 문을 더 굳게 잠갔다. “5천만이 외쳐도 하야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종필 전 총리의 말대로라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우공이산의 시시포스다.

사상 최대 인원이 모일 것이라는 26일 집회를 앞두고, 대구민심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대통령이 나고 자란 곳,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향수가 짙게 밴 곳, 선거철이 되면 대통령과 친분을 과시하는 이들로 넘치는 곳, ‘박근혜’ 이름 석 자만으로 눈물 흘리는 이들이 있는 곳, 바로 그곳에서 정말 ‘박근혜 퇴진’을 외칠 수 있을까. 대구 민심이 변하면 그건 박근혜의 정치적 보루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단신 기사로 다루고 말기에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대구가 차지하는 현실적 비중이 너무 크기에 대구 촛불집회 심층 취재 길에 올랐다.

대구에서 이런 구호를 들을 수 있다니

대구에 가까워지자 하얗게 내리던 눈이 비로 바뀌었다. 궂은 날씨 탓에 집회장소에 사람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스쳤다. 집회가 열리는 반월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구 제일의 번화가. 오후 4시. 지하철역에서 나오며 우산을 펴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함성이 귓전을 강하게 울렸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대구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니…. 그다음 눈을 의심해야 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대구시민들이 우산을 받쳐 들고, 우비를 입고 바위를 향해 달걀을 던지고 있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본 행사 시간 5시에 아직 1시간이나 남았지만, 대구시민에게 26일은 날짜만 있지, 시간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무대 앞으로 뛰어가 시민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는 결기가 서려 있었다. 진행자의 장단에 맞춰 외치는 구호 속에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대구에서의 이런 모습을 ‘3만’이니 ‘5만’이니 하는 숫자로 표현하고 끝낼 수 있을까? 숫자와 정치적 무게에 대한 함수관계에 잠시 고민하고 있을 무렵 왁자지껄 소란스러워진다.

술냄새 풍기는 중년 남성의 외침... "빨갱이들이 모인 거야!"

▲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에 참여한 대구시민. ⓒ 박진영

“야 이 XX들아 왜 길을 막고 난리야!” 한 남자가 언성을 높이며 무대 쪽으로 달려들자, 진행요원이 그를 말린다. 한참 실랑이 뒤에야 장정 다섯 명이 달라붙어 겨우 그 남자를 무대 밖으로 옮겼다. 이 장면은 왠지 데자뷔, 즉 기시감(旣視感)을 느끼게 해준다. 대구 집회현장에서 한 번쯤은 이런 장면을 볼 것이라 생각했던 탓이다. 몇십 년 지속한 일방적 ‘박근혜 사랑’이 한 번에 완벽히 깨지는 게 오히려 인위적이지 않을까. 집회를 반대하는 그 남자 덕분에 집회에 모여 달걀로 바위를 깨려는 대구시민들의 순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 본능으로 끌려나간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셨는지 궁금합니다.

“왜 길을 막아놓고 간첩 행위를 허냔 말이야. 대한민국의 대통령께 이러는 거는 김정은이만 좋아하는 거다. 자발적으로 모인 게 아니라 전부 빨갱이들이 모인 거라. 열불 터진다. 지금 사태는 최순실이 잘못한 거지 대통령이 잘못한 게 아니다. 그 한 사람만 잡으면 되지 왜 대통령한테 욕을 해. 지금 분위기가 이래서 그렇지 숨어서 박근혜를 지지하는 대구시민이 더 많아.” (윤 씨, 52)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의 남자 입에서 술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무엇이 그에게 술을 마시도록 권한 것일까? "빨갱이들이 차로를 막아놓고 간첩 행위를 한 것" 때문이라는 그의 답에 일단 마음을 놓았다. 박근혜의 정치적 고향 대구에 이렇게 많은 빨갱이가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무대로 돌아가 시민들의 자유 발언에 귀 기울였다. 도건협 대구언론노조 지부장이 정권의 언론탄압에 목청을 돋웠다. 이용수 위안부 할머니는 한‧일 위안부합의를 말하며 눈물지으셨다. 경북대 신동민 학생이 대통령 성대모사를 하며 시민들에게 대신 사과를 하지 않았으면 자칫 분위기가 너무 엄숙해질 뻔했다. 어린 초등학생들도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할 때 대구의 미래가 밝아짐을 느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이 사실이라면... 대통령 자격 없다"

연설에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로 의자에 앉아 조용히 촛불을 든 중년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이풍자(61) 씨는 집회참여가 생전 처음이란다.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은 내비두고, 재벌들한테 돈 거둬서 자기들끼리 잇속 챙긴 것이 너무너무 분하다. 그리고 만약 7시간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은 대통령으로서 정말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흥분하던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사실 박근혜와 새누리에 투표하고 지지했던 사람이다. 특히 나는 대통령이 여자라서 동질감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지켜보니 그들은 전부 힘 있는 자의 편이었지 우리 편이 아니었다. 오늘 오전 박사모 행사 뉴스를 봤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이 박근혜 편을 드는 것을 보니 한심스럽다.”       

▲ 이풍자(61) 씨는 아픈 허리 탓에 의자에 앉아 집회를 참여했다. ⓒ 박진영

'수구꼴통의 도시'가 변했다

‘80.14%’.

2012년 20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대구에서 받은 득표율이다. 이풍자 씨만이 아니라 대구시민 10명 중 8명이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바쳤다. 기록적인 득표율 쏠림 현상 탓에 대구는 ‘수구꼴통의 도시’로 조롱받았다. 그러나 대구시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든든한 우군으로 남았다. 남들은 ‘맹목적’이라 비난했지만, 대구는 대통령을 믿었다. 대통령이 대구를 위해 열심히 일해 줄 것이라는데 한 치의 의심도 보내지 않았다. 대구와 함께 ‘TK’로 묶이는 경북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더욱 크다.

김천에서 사드 배치 반대를 홍보하러 온 투쟁위 사람들도 그들 중 하나다. 김천시민들은 100일 넘게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이어간다. 원래 보수의 도시였던 김천은, 정부의 일방적인 사드배치 강행으로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기 두 달 전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자격 없음을 알아차렸다. 투쟁위 합창단원 이동도(51) 씨는 “대통령에게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며 “사드 배치와 박근혜 게이트를 통해 대구‧경북이 바뀌길 바란다”고 들려줬다.

▲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김천시민들이 나와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 박진영

이날 집회 주최자는 노동단체다. 집회현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4대와 스피커, 무대장비는 노동자들이 매달 낸 조합비의 결과물이다. 3천만 원이 투입됐단다. 그런데 주최자인 노조 회원들은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밀려나 ‘박근혜 퇴진’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소설가 김영하는 <한겨레> 기고문에서 집회의 주인인 노동자들이 집회의 ‘순수성’에 시비 거는 몇몇 언론 때문에 주눅 들어있다고 지적했다. 기고문을 읽은 탓인지 피켓을 든 노조 회원들의 어깨가 유난히 축 처져 보였다.

- 어디서 나오셨나요?

“우리는 구미에서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우리가 이곳에 나온 이유는 하나다. 작년에 문자 한 통으로 100명이 넘는 노동자가 하루아침에 해고당했다. 우리는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 그 후 1년 7개월 동안 복직 투쟁 중이다. 구미는 특히 박정희와 박근혜 지지가 높은 지역인데, 나와 우리 조합원들 역시 그들을 지지했다. 그런데 잘못이었다. 나는 그들이 우리를 위해 도와줄 것이라 믿고 살았다. 그런데 막상 해고를 당하니 외면하더라. 대통령도, 지역 국회의원도, 시장도 어느 누구도 우리 편이 없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 대구에 이렇게 많은 시민이 모인 것을 보니 희망이 생긴다. 구미에서도 지금 집회가 열린다. 이번 집회를 통해 법이 모두에게 평등해지길 바란다. 힘없는 노동자를 탄압하는 자본가들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민주노총 금속지부 아사히글라스 소속 허상원, 47)

▲ 문자 한 통으로 해고를 당한 허상원(47) 씨는 이번 집회를 계기로 대구경북이 바뀌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박진영

"국민이 화를 내도 대통령이 무시하고 있잖아요"

이날 집회에는 앳된 청소년들 얼굴도 많이 보였다. “전경련도 해체하라!”라는 구호에 맞춰 전경련 해체를 외친 고등학생들 대화가 오히려 미덥다. “그런데 전경련이 뭐야?”

전경련이 무엇인지 모르면 또 어쩌랴. 나라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추운 날씨에도 PC방 안 가고 집회현장에 나온 그들이 대견스러울 뿐이다. 한쪽에서는 ‘청소년 모여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는 학생들이 보인다. 제법 묵직한 화두를 입에 올린다. “학생에게도 참정권을 달라”. 서양 모든 민주주의 국가 투표권은 만 18세부터다. 일본도 올해 18세로 낮췄다. 우리는 19세다. 2천 500년 전 고대 아테네 직접 민주주의 이후 부활한 현대 민주주의 투표 연령은 18세 이상인데…. 청소년 시국선언단에서 나왔다는 맏언니 격 이다은(17) 학생은 피켓을 드느라 빨개진 손을 맞잡으며 인터뷰에 응했다.

“대구에 있는 청소년이 모여있어요. 청소년의 목소리를 한곳에 모으고 다 같이 말하자는 것이 목적이에요. 저번 부정선거 집회 때도 나오구요, 시국이 안 좋을 때마다 모여 운동을 합니다.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나요. 국민이 화를 내도 대통령이 무시하고 있잖아요. 물론 이번 집회 이후에도 대구가 완전히 변할까 싶기도 해요. 아마 다음 선거 때가 되면 ‘이번에도 그러겠어?’라는 심정으로 어른들이 투표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희는 청소년에게도 참정권을 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소수의 사람, 배제된 사람들이 인정받고 배려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어요.”

▲ 청소년 시국선언단 학생들은 청소년들이 쉽게 집회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 박진영

2시간 넘게 이어진 자유발언 시간이 끝나고 행진이 시작됐다. 반월당에서 중앙네거리를 거쳐서 다시 돌아오는 코스다. 시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깃발을 들고 움직였다. 하늘도 도운 건가. 빗줄기도 잦아들었다.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은 끝이 안 보이는 인파에 스스로 놀라 감탄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행진 내내 앞, 뒤, 옆이 사람으로 가득 차 부대꼈지만 모두 이해하며 미소 지었다. 차에 탄 시민들은 응원 경적을 울려줬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새누리는 해체하라!”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스스로 이곳이 정말 ‘80.14%’의 지지를 보낸 대구가 맞나.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 질서 있게 행진하는 대구시민. ⓒ 박진영

사람들이 둥글게 모인 장면이 눈에 띄어 다가갔다. 낯익은 얼굴. 김부겸 의원이 시민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김부겸 의원은 대구민심 변화의 아이콘이다. 대구에서 3수 만에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대구도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김부겸 의원은 이날 집회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그동안 자기표현을 잘 안 했던 대구시민들이 이렇게 집회에 많이 나와 자기 의사 표시하는 것은 그만큼 이 상황에 대한 분노, 심각성, 허탈함이 다 어우러졌다고 본다. 대구시민이 이렇게 분노하는데도 청와대가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큰일이다. 그동안 대구사람들은 어지간하면 참고 살았다. 그런데 한계가 폭발한 것이다. 이제 시민들께서 정당한 의사표시를 해야겠다고 느끼고 계신다. 나는 이렇게 속에 참고 있던 울분을 표현하신 것을 존경한다. 이런 마음들이 이제 정치과정에서 반영되어 사태 수습으로 이어져야 한다. 오늘 이런 정치적 경험을 했으니 대구도 달라질 것이다. 확신한다. 정치적인 상상력이 넓어졌다.”

▲ 김부겸 의원이 시민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박진영

"우리가 알고 있던 박근혜-새누리는... 허상이다"

대구가 진짜 변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행진은 1시간 정도 걸렸다. 반월당에 돌아온 시민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방송인 김제동과 만민공동회를 꾸렸다. 많은 대구시민이 나서서 자기 목소리를 쏟아냈다. 안전한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학부모, 공정한 경쟁사회를 바라는 취업준비생,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는 회사원 등….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남자가 감격스럽게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는 최근 영남재단 비선 실세와 관련해 JTBC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한 정지찬 전 영남대 교수였다.

“대구 시민께서 이번 집회를 계기로 의식이 많이 바뀌실 것 같다. 이전에는 선거 때만 정치에 참여했다면 이제는 시민이 직접 나서야 사회가 바뀌리라 생각을 하실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민주화를 할 기회다. 겉으로만의 민주화가 아닌 우리 내부의 경제‧사회, 시스템의 민주화 말이다. 그것은 오로지 시민들의 직접적인 사회 참여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동안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겉껍질이자, 허상이다. 앞으로 우리 대구시민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진실을 추적할 것이다.”

집회가 끝나고 짙은 어둠이 내려앉자 거리는 한산해졌다. 시민들은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갖고 거리에 나왔을 터이다. 하지만 집회에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밝고 후련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26일 이전 누군가 말했다. 대구에는 ‘샤이 박근혜’가 많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대통령은 그들을 믿고 있다고. 하지만 26일 집회를 통해 읽힌 대구민심은 달랐다. 샤이 박근혜는 없다. 대구는 변했다. 아니 변화의 첫발을 뗐을 뿐이다.


 편집 : 민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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