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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대한민국
[역사인문산책] 비선
2016년 11월 09일 (수) 18:13:25 박상연 기자 0910118@hanmail.net
   
▲ 박상연 기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권력을 이어가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다. ‘보이지 않는 권력’은 주변 세력들의 견제를 피하기 수월하다. 그럴듯한 꼭두각시 하나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 11살 어린 나이로 조선을 다스린 23대 순조를 보자. 즉위 초반 허수아비 신세에 그쳤다. ‘보이지 않는 권력’ 때문이었다. 나이 어린 왕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맡은 정순왕후 뒤로 친정 경주 김씨가 권세를 누렸다.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거두고도 권력은 순조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순조 왕비인 순원왕후의 친정 안동 김씨 가문이 기세를 떨쳤다. 순조 이후 헌종, 철종 시기에도 남양 홍씨, 풍양 조씨 등 유력 가문이 조선 후기 국정을 쥐락펴락하며 권세의 길(勢道)을 탄탄히 다졌다.

2016년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가 국정 농단에 휘말렸다. ‘보이지 않는 권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한 토막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는다. 40년 전부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며 최순실을 국정에 끌어들인 범죄행위가 드러났다. 최 씨가 청와대의 외교문서와 대통령 연설문을 직접 받아 수정까지 했다는 언론 보도에 박근혜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대국민 사과문을 낭독하고 잘못을 인정했다. 청와대나 경찰, 기업까지 최 씨의 입김으로 인사가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정동춘 전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검찰 조사를 앞두고 “최 씨 소개로 이사장이 된 것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 현장. ⓒ flicker

최 씨는 청와대와 대통령의 권력을 내세워 인형극 놀이하듯 권력을 휘둘렀다. 국정 개입 외에도 직접 법인 재단을 세우고 청와대의 입김을 빌려 기업들에 거액을 뜯어냈다. 재단 이름으로 모은 거금을 독일 자신의 유령 회사로 보낸 돈세탁 정황도 포착됐다. 공교육 인사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서슴지 않으며 딸의 대입과 승마 선수 생활에 걸림돌을 말끔히 걷어냈다. 제집 드나들 듯 정문을 통해 청와대로 출근했다는 최 씨의 행적은 연일 생각지 못한 곳에서 문제로 불거진다. 

어둠 속에 안주했던 권력은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 생명력을 잃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닻을 올렸다. 최 씨를 시작으로 대통령 최측근이자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의 핵심 정호성, 안종범과 민정수석 우병우까지. 그러나 검찰의 ‘꼬리 자르기’ 수사를 걱정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우려대로 최 씨가 사태를 떠맡고 꼬리가 된다면, 어둠의 권력은 잠시 몸을 추스르고 배우를 바꿔가며 변함없이 권력을 부릴 태세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망자 최태민에서 최순실로 정신적 지주 역할을 대물림했듯이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언니 최순득, 딸 정유라…. 비선 실세 1위는 언제든 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황두현 기자

[박상연 기자]
단비뉴스 미디어부 박상연입니다.
깊게 생각하고 넓게 보라. 그리고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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