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노벨상

노벨문학상

▲ 기민도 기자

영화 <트럼보>는 미국 작가 트럼보의 일대기를 다룬다. 1940년대 인기 있는 작가였던 트럼보는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영화인들의 파업에 힘을 보탰고,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통당하는 동료들을 도왔다. 하지만 매카시즘 광풍을 피하지 못해 감옥에 갇힌다. 출소 후에는 작가 일을 할 수 없었다. 블랙리스트 때문이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던 그는 11개 가명으로 작품을 쓴다. 황색물도 마다치 않았다. 그의 작품은 점차 유명해졌고, 더 나은 극을 만들 여유도 생겼다. 그렇게 오드리 헵번, 그레고리 펙의 <로마의 휴일>, 커크 더글러스의 <스파르타쿠스>는 세상에 나왔다. 가명으로 오스카상을 두 번 수상하는 비하인드 스토리다.

반세기를 넘어 올해 한국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최순실과 그 일당이 장악한 문화부에서 말이다. 야당과 문화계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정치적 이유로 문화인들의 밥줄을 끊으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들이 대통령과 비선 일당의 큰 그림을 미처 간파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노벨 문학상을 타지 못하는 한국 작가들을 도우려는 의도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을 게 틀림없다. 트럼보가 겪었던 시련이 필요하다는 사려 깊은 배려를 놓치면 안 된다. 블랙리스트에 적힌 이윤택 감독도 동의하지 않았던가. "자생력을 키우는 젊은 연극인들이나 소극장 연극을 하시는 분들은 지원금 없이도 헝그리 정신이라는 게 있다. 살아남는다." 올해 정치적 논란으로 규모가 축소된 부산 영화제도 비슷하다. 도리어 관객과 영화가 중심이 된 영화제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선 실세에 빌붙는 예술인들은 대통령을 지지해주고, 핍박받는 작가들은 노벨문학상에 한 걸음 더 다가서니 무엇이 문제인가. 다 나라를 위해 한 일인데.

▲ 노벨정치상이 있었다면 문학과 경제상을 타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터.... 대통령을 만들고, 국정을 조정한 '무당'이라는 존재. 탈근대정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중세와 근대를 혼합한 정치를 보여주니, 누가 노벨상감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 flickr

노벨경제학상

대통령과 비선 일당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예상한 것 같다. 우주의 기운을 느끼는 초능력의 세계에 머무니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상대로 들어맞았다. 수상자의 이름은 하트와 홈스트룸. 계약이론의 창시자들이다. 계약이론은 도덕적 해이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대주주가 전문경영인과 3년 계약을 맺었다고 하자. 전문경영인은 3년 임기가 보장되기에 계약 후에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 성과제가 해법으로 떠오른다. 전문경영인에게 스톡옵션 등을 계약조건으로 제시하면, 계약 후에도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트 교수는 전문경영인이 아닌 일반 노동자들에게까지 확장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한국 학자들의 수준이 너무 낮은 점을 우려해 상식을 뒤집는 정책을 편다. 올해 노벨상으로 공인된 계약이론을 현실에서 부정하는 방식이다.

바로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다. 공공성이 큰 철도, 위험성이 광범위한 금융, 환자의 안전을 다루는 병원에서 첫발을 뗀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에 어려운 분야를 먼저 해결하는 비상식의 상식 전술이다. 영국의 전 총리 대처가 강성 광산 노동조합을 깨고 나니, 다른 노동자들이 다 따라오지 않았던가.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만 성공하면 계약이론은 자연스레 깨진다. 올해 계약이론으로 노벨상을 탔는데, 현실에서 반박하니, 누가 더 대단한가. 다음 노벨경제학상은 한국으로 올 게 틀림없다. 노벨상을 타가는 일본인을 더는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효과는 덤이다. 그 과정에서 열차가 탈선하고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진다고 문제가 되겠는가. 다 나라를 위해 한 일인데.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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