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슈퍼스타K로 뜬 가수 중식이

“아기를 갖고 싶다니/그 무슨 말이 그러니/너 요즘 추세 모르니...계산을 쫌 해봐/너랑 나 지금도/먹고 살기 힘들어...맞벌이 부부되면/집에서 누가 애를 봐/우리는 언제 얼굴 봐/주말에 만나거나/달 말에 만나거나...니 개도 못 키우면서/주제에 우리가 무슨 누굴 키우냐...”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방영된 엠넷(M.net)의 신인가수 경연프로그램 <슈퍼스타케이세븐(K7)>에서 중식이밴드가 ‘아기를 낳고 싶다니’를 부르며 등장했을 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그려 낸 ‘흙수저밴드’의 등장이라는 평이 이어졌다. 중식이밴드는 감정폭력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좌절을 담은 ‘죽어버려라’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5위권까지 올라갔다. 여세를 몰아 4.13총선을 앞둔 지난 3월 29일 정의당과 ‘총선 공식 테마송 협약’도 맺었다. ‘여기 사람 있어요’, ‘심해어’, ‘아기를 낳고 싶다니’ 등의 노래가 정의당의 선거운동에 쓰였다. 정의당은 중식이밴드의 외침이 청년들의 절박한 절규와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흙수저밴드’로 각광받던 그들에게 쏟아진 비난 

그러나 협약식 이틀 후 <여성신문>에 중식이밴드를 ‘여혐밴드’로 비판하는 누리꾼들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제결혼을 다룬 ‘좀 더 서쪽으로’,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유출한 동영상을 본 이야기인 ‘야동을 보다가’ 등이 성차별적인 표현으로 문제가 됐다. 중식이밴드에 대한 열광은 식고, 논란은 커졌다. 최근 새 곡을 내지 않고 있는 중식이밴드의 보컬 중식이(34·본명 정중식)를 지난 6월 10일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리고 지난 14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를 했다.

“무슨 말을 물어보실지 알아요. 요즘 공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파마를 한 것 같은 자연산 곱슬머리, 알록달록한 남방셔츠,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나온 중식이는 카페 밖 야외테이블에 길 쪽을 등지고 앉았다. 근처에 집과 작업실이 있다고 했다. 슈퍼스타K로 얼굴이 꽤 알려졌지만, 약간의 저작권료가 들어오고 공연 수입이 생겼다는 것 외에 생활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밴드 구성원 넷과 매니저까지 5명이 수입을 똑같이 나누는데, “점점 액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식이 자신은 현재 따로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밴드 멤버 중 둘은 악기 레슨을 하고 한 명은 공장에 다닌다고 한다.

▲ 중식이밴드의 보컬 중식이가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문중현

“도마 위에 올라가면 칼이 보이지 내가 안 보이잖아요. 초반에는 아무것도 못했어요.”

중식이는 ‘여성혐오’가 뭔지도 모르던 상황에서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고, 요즘은 페미니즘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남의 평판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신경을 쓰고 있더란다. 그러다 보니 곡을 만들며 자기검열을 하게 돼, 2014년 2월 ‘아기를 낳고 싶다니’를 시작으로 3~5개월에 한 번씩 발표하던 노래를 지난해 말 ‘심해어’ 발표 후 더 내놓지 못하고 있단다.

“그 사이에 나와야 할 노래가 여성혐오적인 노래였어요. 원래 작업이 끝난 상태였는데, ‘작전회의를 하자’고 했죠. 자기검열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확실히 여성혐오였습니다.”

자유롭던 음악 작업에 생각이 많아지다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어 오던 중식이는 ‘여혐’ 논란 후 생각이 많아졌다. 그는 10대부터 20대까지 ‘펑크(punk)’라는 장르에 매료되어 있었다. 표현의 공법, 정해진 규칙이 없는 자유로움이 그가 추구하는 음악이었다. ‘이건 안 돼, 저것도 안 돼’하는 나라에 살기 때문에 오히려 오기를 부리며 음악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논란에 휘말린 후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됐고,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등 관련 서적을 읽으며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계속 돌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저는 ‘된장녀(허영심으로 사치하는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사람을 본 적도 없고요. SNS라는 곳은 만질 수 없잖아요. 왜 망상 속에서 신기루일지도 모르는 것하고 싸워야 하나 생각했어요. 저는 무교예요.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 싸우지 않죠. 어느 날 여성혐오로 혼나고 있으니까 되게 억울하기도 했어요.”

‘대스타도 아닌데 내가 왜’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중식이는 우리 사회가 여성혐오라는 민감한 주제를 드러내 놓고 편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즉 남녀가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찌질한 남자’일수록 반드시 알아야 할 이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자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남성권력을 (그동안) 억압받고 희생당해온 여성들에게 토스(넘김)하면서 책임감도 해소해줄 수 있는 게 페미니즘 아니겠냐”고 말했다.

중식이는 앞으로 가사 쓸 때 신경이 쓰이고, 편집할 때 스트레스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은 확고했다. 발표를 보류한 곡은 언젠가 고치지 않고 그대로 낼 생각이다. 남자와 여자가 술을 먹다 일어난 일을 다룬 ‘뽀뽀뽀’란 곡이다.

“어차피 세상 사는 것에 반칙은 없잖아요. 저도 이번에 처음 사는 인생이잖아요. 그니까 하고 싶은 거 해야죠.”

20대 중반에 게임을 하듯 시작한 음악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중식이는 학창 시절 몹시 평범했다고 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20대에는 먹고살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막노동, 배달, 동대문 지게꾼 등 닥치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음악을 시작한 건 스물다섯 무렵이었다. 주위에 음악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는데, 기타 치는 걸 보며 하나하나 코드를 배웠다. 혼자서 노래도 만들었는데, 친구들이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다. 일하면서 틈틈이, ‘남들 게임하는 만큼’ 음악을 했다.

중식이밴드의 노래에는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이 있다. ‘죽어버려라’에는 “맨날 일하기 싫다 말하면서 일하러 간다. 왜냐 월세 때문에 세금 때문에 밥값 때문에”라는 노동자의 넋두리가 담겨 있다.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가사’에 시원함을 느낀다는 팬들이 많다. 정작 중식이는 생각나는 대로 노래를 만들고 부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창작의 범위를 묻는 말에 “똥을 싸고 먹어도 된다”고 답했다.

“사실 ‘죽어버려라’는 가방끈이 짧은 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해본 거죠. 예를 들면 요리사 되려고 레스토랑에 취직해서 3년 동안 설거지만 하고, 칼 한 번 잡으면 혼나는 곳에서 수 셰프까지 올라가려면 셰프가 죽어야 하잖아요. 근데 어느 날 3년 있다가 식자재 손질하는 상태까지 올라가려고 하는데, 그 사이에 주방장 아저씨 친인척이 수 셰프로 등장해버려요.”

▲ 중식이밴드의 노래 ‘죽어버려라’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정중식 유튜브 채널

그래도 중식이는 자신이 ‘N포 세대의 대변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저 자기 자신을 대변했을 뿐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솔직해야 덜 혼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노래도 그저 솔직하게 했을 뿐이란다. 자신의 노래에 대해 사람들이 반응하는 건 ‘저 사람이 질러줬어’ 같은 시원함이라고 생각한다.

중식이는 음악 외에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쓰는 데도 관심이 있다. 직접 출연•제작한 단편영화 <나는 중식이다>로 2014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요즘은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분노와 표현에 관한 이야기인데, 시나리오만 완성된 상태다. 그는 지금처럼 사람들이 민감하고 화를 잘 내는 이유를 ‘표현의 부재’에서 찾았다. 자신의 응축된 분노를 누군가 대신 표현해 주지 않아서 화가 난다는 것이다. 내가 던진 분노가 돌고 돌아 다시 엄청난 해일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게 ‘표현하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우리 삶은 좀 더 나아졌는데 희망이 없는 이유가 뭘까요? 표현의 중매쟁이들이 수수료를 못 먹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항 정신을 가지고 말을 했던 사람들은 씨가 말랐어요. 그래서 개떡 같은 ‘여기 사람 있어요’가 조명이 됐잖아요. ‘아기를 낳고 싶다니’가 자신이 얘기하고 싶었던 걸 대신해주니까 좋은 거잖아요. 그 표현들을 못 하게 하니까 사람들이 짜증 나고.”

▲ 중식이가 직접 출연•제작한 단편영화 <나는 중식이다>의 한 장면. ⓒ 정중식 유튜브 채널

정치부와 사회부가 찾는 가수

중식이는 정의당과의 총선협약, 여혐논란이 있기 전부터 사회성 짙은 가사 때문에 연예부보다 정치부, 사회부가 더 찾는 가수였다. 우리 사회 청년들이 처한 취업난과 복지 부재의 현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었더니 거침없는 속사포가 터져 나왔다.

“취직을 위해 눈높이를 낮추라고요? 아니 눈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교육을 했잖아요. 미래가 없는 직업을 선택하긴 싫잖아요. 현장에서 마스크도 안 주고 세멘(시멘트) 가루를 마실 수밖에 없는 직업 말이에요. ‘너희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라는 표본을 만들어 놨잖아요. 금지 직업이 되어 버린 일을 하면, 거의 똥물에 앉은 기분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렇게 교육을 시켜 놓고, 눈이 높다고 하면 주제 파악을 잘하란 얘긴가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도 확고했다. 복지가 되어 있으면 자신도 결혼을 했을 거라고 말한다. 저출산•고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만 가득하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는 사회가 ‘결혼과 출산은 공기처럼 당연한 의무’라고 강요하는 건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통계나 인터넷이 아니라 주변을 보면 현실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그는 “결혼해서 행복한 친구를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직장에서도 일하기 싫은 데 일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 거 아니에요. 책임질 대상(아이)이 있는 거니까. 진짜 우리나라는 가족을 인질로 잡아 놓고 계속 일을 시키려고, 애를 낳으라고 하는 꼴밖에 안 되는 거 같아요.”

그는 청년들이 투표장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도 의문을 표했다. 청년들이 투표를 많이 하러 가는 게 문제가 아니란다. 정치를 모르는 사람은 아예 투표를 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하기’보다 확실한 ‘빼기’가 필요하다면서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친구는 ‘비비케이(BBK)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하는 걸 듣고도 웃고 있던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의 ‘멋진 리더십’을 보고 투표를 했단다.

“헬조선이지만 죽지는 마세요” 

그는 ‘헬조선’의 청년들에게는 “그래도 안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대를 조금 낮추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안에서 살아내길 바란다고 했다.

▲ 중식이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 문중현

그리고 자신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쉴 때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는 삶을 원한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고 앉아 있을 때도 핸드폰이라도 들여다봐야 하는 현대인들의 삶은 조금 불쌍하단다.

“지난 5월에 공연을 하러 강원도 춘천에 갔어요. 천천히 걷는 사람들 틈에서 저도 천천히 걸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죠. 그래서 천천히 걸었어요. 그 느낌은 ‘되게’ 좋았어요.”


편집 : 민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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