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조창훈 기자

▲ 조창훈 기자

가덕도는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현실성이 없었다. 고속도로나 철도로 연결돼 있지 않은 섬 옆 바다에 활주로 길이만 4km인 땅을 간척해 공항을 짓는 일은 애초에 무리였다. 무엇보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짓는 공항이 영남권 전체가 아닌 부산만을 위한 공항이 될 우려가 컸다. 그럼에도 부산 정치권은 가덕도란 환상을 만들었다. '김해공항 뺏긴다'며 위기를 자극하고 가덕도로 지역민심을 모으면 표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입논란으로 지지율이 바닥을 친 서병수 부산시장은 시장직을 내걸고 가덕도에 올인했다. 지방자치, 지역균형발전을 외치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예 부산지역 더민주 의원들은 부산에서의 세력확장을 위해 가덕도 유치 집회를 선동했다. 밀양을 지지한 대구, 경북의 정치권도 정도의 차이만 있었지 부산 정치권의 행태와 별 차이가 없었다. 신공항을 “대통령의 선물”이라 암시하는가 하면, “이미 밀양으로 확정됐다”며 굳히기에 들어갔다. 그렇게 영남권 신공항은 첨예한 지역갈등으로 번졌다.

▲ 부산 정치권은 가덕도란 환상을 만들었다. 대구, 경북의 정치권 역시 별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영남권 신공항은 첨예한 지역갈등으로 번졌다. ⓒ KBS뉴스 화면 갈무리

국책사업이 지역갈등으로 번지는 이유는 사업유치 자체가 지역정치의 주요행위이기 때문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역할은 중앙정치 무대에서 국책사업을 따오는 일로 국한된다. 국책사업 유치란 선심성 공약으로 선거에 당선되면 '쪽지예산'으로 지역 예산을 따낸다. 예산은 SOC사업같이 가시적인 결과물이 클수록 좋다. 중앙정치에 힘이 있을 수록 더 큰 사업을 따 낼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은 동해안 끝 포항에 KTX와 고속도로를 유치하는 괴력을 보였다. 현실성 없다며 백지화됐던 영남권 신공항은 19대 대선 직전 영남권을 잡기위해 박근혜 후보가 되살린 공약이다. 결과는 국익낭비다. 국가 전체를 조망하며 실행돼야할 국책사업은 지역의 갈라먹기로 변질돼 사업효율성이 떨어진다. 공주, 논산, 부여가 달려드는 바람에 세 지역에서 직선거리 20km 떨어진 산속에 지어진 KTX공주역은 하루 이용객이 380여명에 불과한 유령역이 됐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간접자본 예산 지출효율성은 경제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8위으로 최하위권이다.

국책사업은 지역정치인의 무능을 덮어준다. 평소에 제 역할 못하는 나쁜 남편의 생색내기 선물 같다. 면피용 선물이 알맹이가 없듯 국책사업 역시 터무니없이 과장된다. 국책사업 경제효과가 지역경제로 흘러가지 않는 점도 문제다. 국책사업의 실행 주체는 대개 거대 건설기업이다. 사업장 인근 편의시설 역시 대기업 체인이 맡는다. 일자리 창출과 연관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건설업의 장점이 기술의 발전으로 감퇴된 점도 고려돼야한다. 기껏해야 몇 년 지속하는 공사는 젊은이를 붙잡지 못하고, 지역정치인은 또다른 국책사업 공약선물을 들고 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환경, 교통, 공사소음 등 지역에 미치는 부작용까지 고려하면 국책사업의 손익분기점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 대통령을 가장 많이 배출한 대구가 몇 십 년 째 광역지자체 중 경제력이 최하위권이란 점은 국책사업의 경제효과가 과장이었음을 방증한다. 신공항부지 결정 용역을 맡은 프랑스공항공단의 슈발리에 수석엔지니어는 "국책사업은 새 남편, 새 부인같이 새롭고 흥분되는 존재가 아니"라며 "환상을 깨라"고 일갈한다.

▲ 국토부가 영남권 신공항을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내자 한 지역언론은 1면을 백지로 내걸었다. ⓒ 매일신문

지역정치인은 언제나 좋은 ‘내 편’이어야한다. 지역민에게 중요한 건 국책사업같은 일시적 선물보다 꾸준하게 관리된 민생이다. 지방자치제도는 지역 실정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고 지자체간 정책경쟁으로 공공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지역 정치는 지역의 민생을 높일 차별화된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해야한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도입한 '성남표 3대 복지'가 좋은 예다. 복지가 아니라도 좋다. 지자체가 실질적인 민생을 위해 정책과 비전을 앞다퉈 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 과정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이 중앙에 요구해야할 일은 국책사업이 아니라 지자체가 정책을 만들고 실현할 수 있는 재정과 권한이다. 박근혜 정권처럼 지자체를 중앙행정부에 종속된 실행기관으로 본다면 지역정치의 미래는 요원하다. 지역정치인이 뛰어난 소통 능력으로 지역민심을 파악하고,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결하려 노력해야 지역민들이 바뀌는 진짜 정치가 실현될 것이다. 진짜 정치만이 국책사업이란 선물을 주고, 주요 상공인 등 지역유지만 관리하면 할 일이 끝났다고 여기는 나쁜 정치인의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

▲ 부산지역 방송사는 올해 슬로건을‘신공항은 가덕도로 부산은 세계로'로 내걸었다. ⓒ 부산MBC

영남권 신공항의 문제는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책사업에 대한 환상을 주입하고 지역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지역언론 문제도 지적돼야한다. 한 지역방송사는 올해 슬로건을 ‘신공항은 가덕도로 부산은 세계로’로 내걸었다. 지역언론들에겐 국책사업 유치를 자사의 공로인 냥 과시하는 풍토가 있다. 피해주민의 목소리에 귀막고 사업이 거대한 실패로 끝나도 반성하는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다. 심판관이어야 할 지역언론이 오히려 선물에 눈이 멀어 경주마처럼 내달리니 지역감정에 현혹된 지역민들이 합리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하는 건 당연하다. BBC가 세계최고의 공영방송으로 불리는 까닭은 자국의 군대도 '아군'이 아니라 '영국군'이라 표현하고, BBC의 문제도 자사이익에 매몰돼 판단하지 않는 불편부당한 태도 덕분이다. 바로 지역언론이 국책사업에 대해 가져야할 태도다. 국책사업의 경제, 사회, 문화, 환경적 효과를 공정한 태도로 면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차분하게 전달하는 지역언론을 기대한다. 경쟁 지역에 더 유리하다면 과감하게 유치하지말자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보고 싶다. "우리가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냐." 가까운 지역언론사 기자가 늘 하는 말이다.


편집 : 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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