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웅 서사구조로 본 주토피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인어공주>. 디즈니 공주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했던 만화영화 목록에 디즈니 공주들은 빠지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쯤 디즈니 공주 옷을 입고 영화 속처럼 공주가 되는 상상을 한다. 디즈니 캐릭터가 새겨진 신발은 불티나게 팔리고, 디즈니 피규어는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인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우리 생활에 깊숙이 침투한 지 이미 오래다.

▲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가 월드와이드 누적 수익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 Box Office Mojo

최근에는 영화 <주토피아>까지 성공하며 디즈니 만화영화의 흥행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2월 개봉한 <주토피아>는 월드와이드 누적 수익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네 번째 기록이다. 주목할 점은 미국에서보다 해외 수익이 높다는 것이다. 북미 박스오피스를 보면 해외 수익은 6억 6,300여만 달러에 이른다. 국내 수익은 3억 3,720여만 달러로 해외의 절반에 불과하다.

<주토피아>의 흥행은 영화가 문화적 할인율(cultural discount)이 높은 장르임을 고려할 때 놀라운 성공이다. 호스킨스와 마이러스에 따르면 한 나라의 문화상품이 다른 나라에서 소비될 때 언어와 역사, 관습의 차이로 인해 그 가치가 떨어진다. 언어와 정서가 다를수록 문화적 할인율은 높다. 한국 영화가 미국 시장에서 좀처럼 성공하지 못하고 브로드웨이에서 인기 있는 뮤지컬이 한국에서는 실패하는 이유다.

작고 연약한 토끼, 주토피아의 영웅이 되다

<주토피아>는 어떻게 문화적 할인을 극복하고 해외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영웅 서사구조라는 스토리텔링에 있다. 미국 극작가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에서 서사를 이루는 영웅의 여정을 12단계로 보여준다. ‘일상세계–모험에의 소명–소명의 거부–스승과의 만남–첫 관문의 통과–시험, 협력자, 적대자–동굴 가장 깊은 곳으로의 접근–시련–보상–귀환의 길–부활–영약과 자유의 삶’의 구조가 그것이다.

▲ 주토피아의 경찰관이 된 주디.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웅 서사구조 스토리텔링은 영화 <주토피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주인공 주디 홉스는 작고 연약한 토끼다. 어느 날 여우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구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되리라 결심한다. 경찰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뒤 주토피아 최초 토끼 경찰관이 된다. 그 사이 주토피아에서는 포식 계층에 속하는 동물들의 연쇄 실종사건이 발생한다. 주차단속을 맡던 주디는 홀로 수사를 진행하다 소동을 일으키고 그 벌로 경찰서장으로부터 이틀 안에 사건을 해결하라는 미션을 받게 된다. 주디가 가진 단서는 사진 한 장. 주디는 사진에 찍힌 여우 닉 와일드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선 주디와 닉은 맹수들을 가둔 곳에서 시장 라이언 하트를 발견하다. 시장은 잡혀가고 사건을 해결한 주디는 영웅이 된다.

영웅이 된 주디에게 또 한 번 시련이 찾아온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공존으로 평화를 유지하던 주토피아에 육식동물이 포식자로 돌변하는 사건이 빈발한다.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 속에 주디는 “맹수들의 포악성이 생물학적 DNA와 관련 있다”고 말한다. 주디의 말 한마디로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을 멀리한다. 닉마저 주디를 떠나자 상심한 주디는 집으로 돌아간다. 부모님의 농장일을 돕던 주디가 ‘밤의 울음꾼’이라는 꽃을 발견하며 스토리의 반전이 펼쳐진다. 주디는 이 꽃을 잘못 먹었다가는 토끼마저도 포악해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 길로 닉을 찾아가 사과하고 둘은 다시 사건에 뛰어든다. 밤의 울음꾼을 이용해 동물들을 흉포하게 만든 자는 벨웨더 후임 시장임을 알게 되고 주디는 닉과 함께 시장을 잡고 주토피아는 평화를 되찾는다.

문명과 야만의 대립, 문명과 문명의 대립

<주토피아>의 담론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담론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대립이다. 주디는 어렵게 해결한 육식동물 실종사건 기자회견에서 “육식동물의 DNA가 문제다”라는 발언을 한다. 이 발언으로 주토피아 내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게 된다. 주디가 말한 ‘육식동물의 DNA’가 ‘육식동물의 포식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토피아는 문명화된 사회다. 본래 자연은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먹히는 구조다. 하지만 주토피아는 그렇지 않다. 힘이 약한 초식동물과 힘이 센 육식동물이 함께 어울려 산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육식동물이 자신의 본능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 세계에서 보는 야만이란 교화시켜야 할 대상이다. 주토피아에서는 자신의 잠재적 본능을 억제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육식동물을 교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명사회 주토피아에서 일어나는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대립은 문명과 야만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 벨 웨더는 겉으로 보기에 작고 연약한 양이지만, 겉과 달리 공포 정치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고자 하는 동물이다. ⓒ 네이버 영화 스틸컷

두 번째 담론은 초식동물과 초식동물의 대립이다. 실종된 육식동물들을 가두었다는 죄로 시장 라이언 하트가 구속되자, 보좌관이었던 벨 웨더가 차기 시장이 된다. 벨 웨더는 대표적인 초식동물로 작고 약한 양이다. 하지만 겉과 다르게 벨 웨더는 공포를 이용하여 권력을 획득하고자 한다. 벨은 ‘밤의 울음꾼’이라 불리는 풀을 이용하여 육식동물의 잠재적 본능을 깨우고 그 위험성을 활용해 주토피아를 분리한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소수인 육식동물을 몰아내고 다수의 초식동물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 또 다른 초식동물 주디는 벨에 맞서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공존하는 주토피아를 지키고자 한다.

주토피아에서 안타고니스트는 벨 웨더다. 그는 공포를 이용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려 한다. 육식동물의 야만성을 내세워 주토피아를 분리하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 하는 것이다. 벨과 같이 권력 획득과 유지를 위해 대중의 공포감을 이용하는 것을 우리는 “공포 정치”라 부른다.

애니메이션에 “공포 정치”가 등장하는 이유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왜 공포 정치가 등장한 것일까? 월트 디즈니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화를 만든다.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할리우드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세계화 전략의 핵심 장치는 스토리다.

할리우드 영화 대다수는 영웅 서사 스토리를 취한다. 프로타고니스트 영웅이 조력자와 함께 안타고니스트 외계인을 물리치고 지구를 지키는 스토리 라인을 가진 마블 코믹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마블의 서사구조는 <주토피아>의 서사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주토피아가 취하고 있는 는 “공포 정치” 스토리는 세계화 전략을 위한 적절한 장치라 할 수 있다. 공포 정치는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정권유지를 위해 공포 정치를 펼치는 나라는 많다.

<주토피아>가 작고 귀여운 토끼 영웅을 내세우고 동물들의 갈등을 통해 공포 정치 지배 담론을 펼친 것은 이 같은 할리우드 공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주토피아를 보며 현실 속 벨 웨더를 떠올리며 상황에 공감한다. 다수의 공감은 흥행을 이끈다. 바로 이와 같은 국경 없는 공감이 <주토피아>가 세계인을 사로잡은 이유라 할 수 있다.


편집 :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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