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뉴스] 제4회 무주산골영화제 스케치

초록을 지나니 또 초록이다. 전라북도 무주군 구천동으로 향하는 길, 구불구불 돌아가는 시골길 주변은 푸른빛 물오른 숲이 무성하다. 산을 넘을수록 인적이 드물다. 차창을 내리니 산에서 내려오는 차갑고 맑은 공기가 정신을 깨운다. 도착한 야영장에는 텐트, 돗자리, 먹을거리 등을 챙겨 야영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대집회장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언뜻 번잡한 도시를 떠나 깊은 산 속으로 캠핑을 떠난 관광객들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목적은 캠핑이 아니라 밤새 숲 속에서 영화를 보는 것. 지난해 처음 시작해 호평을 받은 무주산골영화제만의 특별한 프로그램 숲 속 극장을 찾았다.

지난 2일 전북 무주 등나무운동장에서는 무주산골영화제(이하 무주영화제)가 개막했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하는 무주영화제는 ‘봄과 여름 사이, 초록빛으로 물드는 숲속에서의 영화제’다. 산골, 캠핑, 영화를 키워드로 하는 영화제는 올해도 다채로운 행사로 관객을 반겼다.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작은 영화 축제는 한국장편영화경쟁부문인 ‘창(窓)’, 다양한 주제를 새롭고 독창적인 영화를 선보이는 ‘판’(場), 라이브 연주와 무성영화를 함께 보는 ‘락’(樂), 깊은 밤 어두운 숲 속 극장에서 진행되는 ‘숲’(林), 무주군민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영화관’을 운영한 ‘길’(路)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을 만났다.

지난 3일 영화제 둘째날 모습을 포토뉴스로 담았다.

▲ ‘웰컴 투 산골!’ 무주산골영화제의 캐릭터 무무가 영화제 상영장을 소개한다. 무무를 따라 발도장을 찍어가며 알차게 영화제를 즐길 수 있게 한 주최 측의 배려가 따뜻하다. © 유수빈

 

▲ 덕유산자락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팝콘보다 돗자리가 필수다. 영화 시작 전에 좋은 자리를 맡으러 온 한 관객이 말하며 눕는다. “와 여기 되게 좋다!” 조용한 숲이 사람들 소리로 채워지며 소란스럽지 않은 활기가 돈다. © 유수빈

 

▲ 덕유산국립공원 깊숙이 자리한 대집회장에서 영화 상영 전에 공연이 싱어송라이터 빅베이비드라이버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엄마~’를 부르는 어린이부터 백발의 할머니까지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 유수빈

 

▲ “기분 좋은 쌀쌀함이 가득한 이곳(덕유산 자락)에서 만나니 더 반갑다”는 인사로 시작한 빅베이비드라이버가 공연을 하고 있다. 숲 속의 열린 공연장에서의 공연에는 새소리가 절묘한 화음이 되어 평화로움을 더했다. © 유수빈

 

▲ 어둠이 내려앉은 밤, 선명하고 쨍한 디지털 상영과는 다르게 정겨운 느낌을 주는 35mm 필름으로 <카모메 식당>이 상영되고, 관객들은 저마다 편한 자세로 영화를 즐긴다. 작은 트럭에 실린 영사기에서는 필름이 도르르 돌아간다. 화면이 흔들리기도 자막이 조금 잘릴 때도 있지만 이 또한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재미다. © 유수빈

 

▲ 영화 <카모메 식당> 상연 전 백은하 영화전문기자와 함께한 관객과의 대화에서 담담하고 소박한 일상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이날 상영된 영화를 비롯해 평소 감독에게 관객들이 궁금했던 점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사소한 계기로 친구가 되고,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여자들의 관계를 그린 <카모메 식당>에 대해 감독은 “일상을 꼼꼼하고 소중하게 기록하면서 사람들의 고독감에 대하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유수빈

 

▲ 봄과 여름 사이, 숲 속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덕유산자락을 배경삼아 영화에 몰입하고 있다. © 유수빈

 

▲ 같은 날, 덕유산 야영장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무주군 안성면 두문마을에서는 영화제를 찾은 관광객들을 위해 지역 주민들이 준비한 ‘낙화놀이’가 펼쳐졌다. 낙화놀이는 숯가루, 사금파리 가루, 소금, 마른 쑥 등을 넣은 낙화봉을 긴 줄에 매달아 불을 붙여, 낙화봉이 타오를 때의 불꽃 모양과 소리를 즐기는 전통 불꽃놀이다. 마을 주민들이 일일이 손으로 만든 심지가 타닥타닥 타면서 떨어지는 불꽃과 흩날리는 숯가루는 밤하늘을 수놓았다. 특히 빨갛게 타오르며 연못에 반사된 불꽃은 방문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 유수빈

 

▲ 지난 3일 덕유산야영장에서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초기작이자 시간이 흘러도 많은 관객으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대표작 <요시노 이발관>(2004), <카모메 식당>(2006), <안경>(2007)이 35mm 필름으로 연속 상영됐다. 그의 영화에서는 소소한 일상 속 인물들의 따뜻한 유머를 통해 행복과 삶의 의미를 전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 유수빈

화려하지 않아도, 성대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편안하고 여유로워 좋다. 무주영화제를 즐기며 느낀 점이다. 무주영화제에는 어마어마한 자본 대신, 주민들의 참여가 있다. 티켓을 구매한 이들만이 볼 수 있는 영화관이 아니라 누구나, 언제나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열린 숲 속 극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돗자리를 깔고 담요를 덮고, 앉거나 누워서 각자 편한대로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상영하는 모든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소박하지만 단출하지 않은 무주영화제의 특징을 보여준다. 마니아층이 두터운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이곳을 찾은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여러분들과 아름다운 밤, 행복한 밤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말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숲 속에서의 하룻밤이었다. 그의 영화처럼 별 것 아닌 것에 미소가 지어지는 밤이었다.


편집 : 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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