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서창완 기자

▲ 서창완 기자

“남자가 무슨 선원이 되겠다는 거야?”

선원이 되겠다는 오빠의 말에 여동생이 비웃듯 말한다. 오빠는 억울한 마음에 엄마에게 달려가 보지만 조금도 역성들어주지 않는다. 배를 타는 일은 힘세고 용감한 여자들이나 하는 일이 맞으니까.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은 남자와 여자의 성 역할이 바뀐 가상의 나라 이갈리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런 식으로 보여준다. 남자들은 작은 성기, 작은 몸을 가져야 예쁘다고 인정받는다. 키 크고 어깨가 넓으며 힘까지 세다면? 여자들에게 외면당한다.

남자인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불편함을 느꼈다. 타고난 성(性)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게 말이 돼? 소설 속 못된 여자들을 보며 분노했다. 반면 여자들은 이 소설을 읽고 통쾌함을 느꼈다고 했다. 여자로 살며 경험한 억울하고 분한 상황을 ‘이갈리아의 아들들’이 겪는 것을 보며 ‘너희들이 봐도 말이 안 되지?’하고 꼬집을 수 있어서일 것이다. 남자로 살아온 내가 고작 4시간 겪은 불편함과 억울함을 여자들은 자라는 동안 죽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어야 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지난 17일 벌어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자의 삶이 ‘불편함’에서 그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용화장실에 도사리고 있다가 10명 가까운 남자를 그냥 보내고 첫 번째 들어온, 알지도 못하는 여자를 살해한 피의자는 ‘여자들이 무시해서 그랬다’고 한다. ‘여자라서 죽을 수 있다’는 섬뜩한 현실은 많은 여성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했다. 추모와 항의, 눈물과 분노가 뒤엉킨 ‘강남역 10번 출구 앞’ 여성들의 외침은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본능적 절규다. 상당수의 남성들이 그 장면에 불편함을 느낀다. 남자라는 이유로 잠재적 살인자라는 의심을 받는 건 억울하다며.

▲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 여성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 MBN 방송 화면 갈무리

나는 여자가 남자를 강간했다거나 이별 통보에 분노한 여자가 전 남자친구를 납치했다는 소식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고, ‘매 맞는 아내’가 반대의 경우에 비해 압도적이다. 밤길은 위험하니 일찍 들어와야 한다거나 혼자 다니는 여행은 절대 안 된다는 압박을 부모로부터 받는 ‘아들들’을 본 적이 없다. 여성을 상대로 강간, 납치, 폭행을 한 일이 없으니 나는 괜찮은 남자라고 위안해도 좋을까? 나의 누이, 애인, 동료 등 여성들이 부딪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너무 많은 이 사회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괜찮은 남자일 수 없다. 더구나 그런 현실에 공포를 느끼는 여성들에게 ‘웬 호들갑이냐’고 질책한다면 그건 또 다른 폭력이 아닐지.

특정 대상을 미워하고 공격하는 혐오 범죄는 사회적 강자 대신 약자를 향한다고 한다. 강남역 사건의 피의자도 정신질환을 앓던 약자이면서 자기보다 더 약한 여성을 혐오했다. 그가 살아오면서 무시당했다고 느낀 대상이 여성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여성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범행에 이른 것은 ‘나보다 더 약한 인간에게까지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 때문이었을 거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의 하층노동자들이 해고를 일삼는 자본가 대신 값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이주노동자를 더 혐오하고 공격하는 현상도 이와 비슷하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저지른 것은 정신질환자 개인일 테지만,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 급속히 퍼지고 있는 ‘여성혐오’와 그 배경의 뿌리 깊은 성차별 의식이 범죄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약자가 약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회의 한편에서 강자들은 경배의 대상이 된다.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은 ‘가방을 직접 들었다’는 이유로 찬사 받는다. 광복절은 횡령•배임•탈세 등을 일삼은 재벌 총수들이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여론의 지지 속에 사면 받는 날이다. 공약을 내팽개친 정치인이 유권자의 망각 속에 다시 선택돼 권력을 휘두르는 일은 좀 흔한가. 여성들은 성폭행•살인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돼 있고, 임신과 출산으로 회사에서 잘릴 가능성도 높다. 그들을 ‘위해’ 분노하는 대신, 혐오하고 공격하는 남성들이 늘어난다면 강자들은 더 쉽게, 더 불공정한 사회를 만들 것이다. 세상사는 일이 조금은 덜 억울하고 덜 갑갑하길 원한다면, 분노의 대상부터 제대로 가려내야 한다.


편집 : 김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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