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이택광 경희대 교수
주제 ② 노동계급 없는 자본주의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되는 걸 원했던 거죠. 그래서 노동하는 사람은 있는데, 노동계급은 없는 현상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일어납니다. 너무나도 잘 구현된 곳이 우리나라죠.”

‘노동계급 없는 자본주의’를 주제로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택광 경희대 교수가 진단한 우리나라 노동의 현실이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를 만든다. 노동자들이 공산주의자가 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된 반공주의는 결국 노동자들의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결과를 불렀다. 반공의 영향으로 경제를 위한 정치만 남겨지고 우리 사회 다수 시민들을 위한 정치는 없어졌다.

치킨집 사장이 된들 무엇이 달라지랴

“고등학생 때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투쟁하는 현장에 갔어요. 10여 년 시간이 흐르고 한 일간지 취재를 위해 동일한 투쟁현장을 취재하러 갔는데 분위기가 달랐어요. 노동시장은 유연화해서 비정규직이 만연해지고, 노동자 스스로도 자기 자식은 노동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는 목소리를 전하더라고요.”

노동자 스스로 자신들을 천대하는 시대다. 자본시장의 소비자인 노동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자본권력을 무기로 삼는 기업들이 차지했다. 기업이 시장의 질서를 세우고 개별적인 노동자들을 고용한다. 노동계급은 사라지고 수많은 노동자들만 양산됐다.

▲ 노동자들도 그들만의 '시장'을 가지려 하지만, 현실에서 살아남는 경우는 20%도 되지 않는다. ⓒ <YTN 뉴스> 갈무리

이 교수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에서 노동자는 실패한 인생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길 거부하는 다수는 결국 '사장’이 되길 원한다. 치킨집 사장, 피자집 사장 등이 돼 노동자가 아닌 고용주로서 작은 기업을 소유해보려 발버둥 친다. 하지만 기업이 지배하는 시장질서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지기 일쑤다. 최근 서울시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외식업, 도•소매업, 서비스업 등 생활밀착형 43개 업종의 지난 10년 생존율이 19.9%에 그쳤다고 한다. 10명의 노동자가 사장으로 변신해도 10년 후 살아남을 사장은 2명뿐이다.

노동자는 소비자로서만 대접 받아

그는 근대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의 이해관계에 따라 삶이 구성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기업이 곧 시장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기업 사장들은 시장에 기업이 많아지길 원하지 않는다. 골목골목에 숨어 사장으로 살아가려는 노동자를 가만두지 않는다. 꼼꼼히 골목을 파고들어 노동자의 이력을 가진 이들을 그들의 원래 자리로 돌려보낸다.

“시장자유주의는 경제와 정치가 관련 없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정치를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려고 합니다. 평등이란 대원칙을 전제하지만 평등을 강조하면 자유를 필연적으로 훼손하는 모순과 같은 거죠. 노동자들도 이 영향으로 스스로 노동자임을 감추고 있습니다.”

자유가 제한된 시장질서 안에서 기업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 한다. 해답은 소비자다. 다양한 기업보다 많은 소비자가 존재할 때 소수의 기업이 살아남는다. 노동자는 기업의 사장이란 가장 상위 노동계급을 열망하지만 노동계급이 사라진 현실 앞에 그 자리는 무의미하다. 기업은 노동자들의 그런 시도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더 많은 소비자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 소셜미디어의 이면에는 질투심이 아니라 시기심에 사로잡힌 노동자이자 소비자가 존재한다. ⓒ flickr

“소셜미디어 중 인스타그램 사용자는 사진을 찍을 때, 특정한 부분을 찍어서 올립니다. 맛있고 비싸 보이는 음식이라든지, 비싼 시계, 자동차 브랜드 로고 등이지요. 전체적인 사진을 올리는 경우가 없어요. 특히 슬픈 사진보다는 기쁜 사진만 올립니다.”

개별적인 즐거움의 합은 쾌락이다. 이 쾌락이 표현되는 곳이 소셜미디어다. 부르주아식 삶의 방식을 열망하는 노동자들이 모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일부 부르주아의 소위 ‘자랑질’은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질투심과 시기심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감정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나와 일정 부분 관계를 맺은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이 질투심이라면 시기심은 완벽한 타인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민주적 공간이라고 표현되는 사회관계망 서비스 안에서도 다수 노동자는 소수에게 시기심을 느끼며 소비자로 남아있다.

경멸과 혐오, 그리고 마녀사냥

법철학에서는 증오의 두 가지 정서를 ‘경멸’과 ‘혐오’로 규정짓는다. 경멸(Contempt)은 위계 내에서 상대방을 내 밑에 두려는 것을 뜻한다. 혐오(Disgust)는 상대방을 배제하고 관계를 끊으면서 밑에 두려는 것이라는 의미로 경멸과 다르다. 하지만 상대방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은 아니다. 모두 제거하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경멸은 여자혐오 현상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 모든 여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몇몇 소위 ‘김치녀’들이 마음을 고쳐먹는다면 만날 수 있다는 조건이 있기 때문에 경멸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혐오는 동성애에 대한 태도를 들 수 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시선은 동성애를 격리시켜야 할 질병으로 바라본다.

이 교수는 “혐오는 관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전복하려 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감정기제”라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는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그 자체 모순이 심화할수록 오히려 강력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혐오 문제가 민주주의의 발전에 따라 일정하게 사라질 수 있는 것과 다르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 실시될 때 우리나라는 북한을 경멸로 바라봤다. 반면 극우파들은 북한을 혐오하는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 교수는 “혐오는 무조건 싫은 것이기 때문에 반민주적”이라며 “상대방을 악마처럼 취급하게 되는 수준까지 발전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 중세시대 마녀는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져 혐오와 증오의 감정 속에 화형에 처해졌다. ⓒ pixabay

어떤 대상에 대한 혐오를 현실화한 대표적인 경우가 마녀사냥이다. <마녀의 망치>라는 책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이를 지식처럼 여기고 모두가 마녀들을 식별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이 교수는 “상대를 배제하기 위한 혐오나 증오의 감정은 모두 근대화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산물”이라고 말했다.

페미니즘에 숨겨진 의도

이 교수는 페미니즘에도 숨겨진 의도가 있다고 말한다. 여성의 동등함을 설득하면서 결국 노동지배구조를 정당화하는 목적을 드러낸다. 여성의 권리 신장으로 여겨졌던 페미니즘이 오히려 노동착취를 정당화하는 역설적인 측면으로 작용한다. 그는 산업화 시기 대규모 여공들이 아시아에만 있었던 것을 예로 들며 노동 문제이자 차별의 문제로 이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세차익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인 자본주의의 입장에서는 그 나이또래 남자들보다 여공들을 고용하는 게 수지타산이 맞았던 거죠. 마치 자본주의가 여성들에게 일할 권리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해당 국가의 보수주의 논리를 이용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 이택광 교수가 '노동계급 없는 자본주의'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박진우

최근 우리나라에서 도수가 낮아진 소주가 인기리에 팔린다. 그 이유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남성들만의 노동주로 여겨졌던 소주를 여성들이 마신다는 것은 그만큼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이런 표면적인 증가가 마치 여성들이 남성들의 자리를 빼앗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고, 이 때문에 여성들에 대한 혐오가 정당성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다고 여성들을 비난하는 것도 이런 남성의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혐오의 정서는 자신들의 존재감을 앞세우면서 상대방보다 그들이 우위에 있다거나 동등한 대우를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민주주의가 개선될수록 많아질 텐데 문제가 해결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헬조선’ 해결책은 있다

인터넷 신조어로 등장해 이제는 익숙해진 ‘헬조선’이라는 말은 암울한 우리나라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미개하다는 자기혐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교수는 오히려 이 단어가 우리나라가 점차 발전되면서 생겨난 문제라고 본다. 그는 ‘헬조선’에 대해 “사회구조의 계급적인 문제가 개인의 사적 구제 문제로 바뀐 게 원인”이라며 “우파가 성공한 우리 사회에서 좌파적 해결책이 설득되지 않고 다른 해결책이 없는 현실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은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허무함이 섞인 표현이다. 허무함은 관용을 거부하고 그 자체를 규범화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관용이 아니라 규범으로 작용하는 관용은 ‘관용하지 않으면 나쁘다’고 규정해버린다. 이 교수는 “민중총궐기 시위현장에서 물대포를 쏜 경찰들도 개인과 개인으로 만났으면 그렇게 못 했을 것“이라며 “상대가 폭도라고 규정지은 혐오의 정치, 관용의 규범화가 만든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 지난해 11월 1차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 flickr

이 교수는 현재 ‘헬조선’이 처한 현실을 소설가 이상의 <오감도> 속 ‘13인의 아해’에 비유했다. 그들은 도로로 질주하지만 결국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갈 곳이 없다. 해결책은 결국 정치와 시민들의 많은 참여에서 찾아야 한다.

“노동자들이 더 이상 소비자로만 남아서는 안 됩니다. 정치적인 문제로 확대해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느냐는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정연주 조효제 정희진 김혜원 이문재 이택광 신형철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 : 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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