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조령산휴양림과 새재 흙길 탐방기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다비드 르 브르통이 '걷기 예찬'을 한 지도 어언 10년여, 이제 사람들은 일부러 걷는다. 번잡한 세상과 잠시 동안이라도 단절하려는 듯, 제주 올레길을 찾아 걷고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어지럽고 자극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고독해지고 싶어,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사색하고 성찰하려고,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기 위해 걷는다. 그래서일까? 번잡한 도시와 떨어져 숲 속을 걸을 수 있는 휴양림에 대한 인기는 사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비수기일 것 같은 한겨울에도 주말에는 예약하기가 힘들다. 이번 신정 연휴에도 휴양림 예약은 쉽지 않았다. 이윤정 국립자연휴양림 관리소 행정지원과 주임은 “신정 연휴도 마찬가지로 예약이 금방 찼다”며 “추첨예약은 물론, 잔여예약도 순식간에 차버렸다”고 설명했다. 2016년 첫 사흘 동안 국립자연휴양림을 거쳐간 사람은 총 21,237명이다.

숲속 통나무집에서 자고 흙 길을 한번 걸어보라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에 따르면 휴양림을 찾은 이용객은 신설 초기인 2005년 1백만명에서 2014년 282만명으로 약 3배로 증가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휴양림'을 검색해보면, 가족 단위로 휴양림을 즐기고 온 후기를 공유하는 블로그 수도 적지 않다. 휴양림을 이용해 본 이들은 휴양림의 장점으로 '북적대는 휴양지가 아닌,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 휴양림 이용객의 약 60%는 숙박객이며, 2014년에는 282만명이 휴양림을 찾았다.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농촌농업보도실습' 수강생들이 이용실태 등을 취재하기 위해 조령산휴양림을 찾아간 날은 일요일인 지난해 9월 20일이었다. 이용객들이 붐비는 주말(토요일 밤)이 아니라서 더욱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이날 조령산휴양림을 찾은 이용객은 모두 13팀이었다. 도시에서 귀를 괴롭히던 소음은 사라지고,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 이름모를 풀벌레소리와 새들의 지저귐만이 정적을 깰 뿐이었다.

▲ 휴양림의 숙소는 한 채씩 떨어져 있어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 김현우

추분을 이틀 앞둔 이른 가을이었는데 밤이 되자 어느새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밤이라고 숲 속을 거니는 산림욕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저녁을 먹은 뒤 겉옷을 하나씩 걸치고 캄캄한 숲길을 일행이 무리 지어 걷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동행한 교수님은 귀신 이야기를 해 분위기를 돋웠다.

이용객 많아지면서 예약 어렵고 서비스정신 부족

휴양림의 예약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선착순이다. 선착순 예약으로 운영되다 보니 PC 이용 능력이 떨어지는 노년층과 PC 사양이 낮은 사용자는 예약하기가 쉽지 않은 게 문제였다. 휴양림을 관할하는 산림청은 지난해 6월 PC와 모바일 사용이 취약한 65세 이상 노년층을 위한 전용 자동예약전화(ARS)를 도입한 데 이어 9월부터는 선착순 예약 방식을 폐지하고 주말(금•토)과 법정공휴일 이용은 추첨제로 전환했다. 여름 성수기 때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한 예약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대책이다. 휴양림 예약자가 직계 존•비속과 배우자에 한해 양도•양수하는 것도 허용했다. 이전에 매매•교환이 금지돼 예약자가 이용하지 못하면 위약금을 물고 취소해야 했던 것에 견주면 편리해졌다.

휴양림의 인기 요인은 일반 펜션이나 휴가지보다 싼 값에 잘 가꾸어진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주변에 편의시설이 없다는 점에서 먹을 거리를 미리 준비해와야 한다든지 하는 약간의 불편함과 서비스 면에서 아쉬움도 있다. 이날 일행이 묵은 숙소에서도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다. 조리대에서 물이 떨어져 마루바닥이 심하게 갈라져 있는데도 방치하거나 샴푸나 휴지가 없는 등 민간이 운영하는 콘도나 펜션에 견주면 관리가 소홀한 점들이 눈에 거슬렸다.

▲ 일행이 묵었던 숙소의 조리대 아래 마루바닥은 물에 젖어 틈이 갈라지고 울퉁불퉁했다. © 김현우

황토로 재현한 옛길을 맨발로 걷는 즐거움  

조령산휴양림의 연계관광지로는 문경새재 도립공원이 꼽힌다.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다. 문경새재는 지난 여름, 한국관광공사가 실시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지’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1위로 꼽혔다. 잘 보존된 자연과 옛길, 그리고 주막과 드라마 촬영장 등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문경새재는 충청북도 충주와 경상북도 문경을 이어주는 조령 고갯길을 말한다. 서로는 조령산, 동으로는 주흘산 사이 계곡을 따라 뻗은 길이다. 원래는 산세가 험하고 길도 좁았다. 새재란 이름도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란 뜻이다. 험한 산길인데도 조령 고갯길은 경상도와 서울을 잇는 최단거리 길이라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다. 임진왜란 때도 조령을 넘은 고니시 유키나가 군대가 세 갈래 왜군 중 한양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 문경새재 시작을 알리는 1관문 주흘관 © 하상윤

과거를 보는 경상도 유생들이 애용한 길이기도 했다. 당시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세 갈래로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잇는 추풍령(秋風嶺),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잇는 죽령(竹嶺), 그리고 문경새재를 지나는 길이 있었다. 유생들은 죽령은 “죽죽 미끄러진다”며,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며 피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문경새재는 가장 빨리 한양에 당도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지만 ‘경사스런 소식을 듣는다’는 문경(聞慶)이란 이름 때문에 더욱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 새재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황톳길. 멀리 앞서 걷고 있는 관광객들은 신발을 들고 맨발로 걷고 있다. © 하상윤

오늘날 새재 길은 황톳길로 조성됐다. 영남대로 옛길은 새 길 주변으로 명맥을 이어간다. 새재 길이 흙길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보존지시 덕분이라고 한다. 국토개발이 한창이던 60년대 후반, 박 대통령은 국도건설계획을 검토하다 우연히 문경새재를 지나는 도로건설계획을 확인했다. 일제강점기 문경보통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한 적이 있는 그는 새재를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도로 건설을 지시했다고 한다.

덕지덕지 시멘트를 발라 복원한 다른 사적지와 달리 문경새재는 걷기에 편안하고 정감이 간다. 대로변 샛길은 자갈을 깔거나 통나무로 계단을 만드는 등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길을 닦았다.

길을 따라가면 왼쪽에 계곡물이 흐르고 오른쪽에는 폭포가 쏟아진다. 그만큼 경관이 빼어나 사극 촬영지로도 각광받는다. 어떤 때는 방송사의 드라마와 영화 촬영, 뮤직비디오 촬영 일정 등이 겹쳐 곳곳에서 촬영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21일에는 KBS 드라마 <장사의 신>이 촬영되고 있었다.

▲ 대로변 돌무덤에서 KBS 드라마 <장사의 신> 촬영이 한창이다. © 하상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2005~2012년에 1천7백만명의 관광객이 문경새재를 찾았다. 같은 기간 강원도 설악산국립공원을 찾은 관광객은 2천1백만명, 국립공원에도 크게 뒤지지 않는 도립공원이다. 도립공원 내 오픈 세트장도 다른 지자체의 모범으로 평가받는다. 문경시는 2014년에만 세트장 사용료로 1억9천6백만원을 벌었다. 애물단지가 된 <태조 왕건> 세트장을 철거한 충북 제천과 비교된다.

주막은 문 닫혀 있고 음식점들은 값 비싸

황톳길은 문경새재 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며 시작된다. 고갯길을 오르다 보면 조령원 터가 있다. 원(院)은 조선시대에 공적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 공무 여행자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 숙소였다. 더 가다 보면 주막이 복원돼 있다. 원에 묵을 수 없던 일반인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 복원된 주막은 특별한 행사가 없는 한 열지 않는다. ©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그러나 주막은 황량했다. 드문드문 공연이나 차 시음회가 주막에서 열린다곤 하지만 평소에는 아무것도 없다. 초입부터 주막까지 올라오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옛길을 복원하는 김에 술 한 잔 곁들이던 주막처럼 술과 주전부리를 팔면 딱 좋은 위치인데…

주막 앞에 초가지붕을 얹은 정자가 있어 우리 일행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정자 이름이 조회루(鳥會樓)이니 '새가 모이는 누각'이란 뜻인가? 새들도 이곳에 모여 넘기 힘든 새재를 넘을 궁리를 한 걸까?

▲ 제2관문인 조곡관 전경 © 하상윤

제2관문인 조곡관을 넘을 무렵,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발길을 돌려 1관문 밖 식당가로 향했다. 공원 입구에는 더덕구이, 버섯전골, 도토리묵 산채정식 등을 파는 식당이 여느 관광지와 다름없이 빼곡히 들어서있었다. 식당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시키려고 메뉴판을 쳐다보니 가격이 꽤 비싸 보였다. 음식이 나온 걸 보니 더욱 초라해 바가지를 쓴 기분이었다.

한 접시에 1만원씩 하는 도토리묵과 파전 등은 우선 양이 너무 작았고, 1인분에 1만원씩 받는 버섯전골은 공깃밥을 다 먹기에도 부족할 정도였다. 지역 언론에 따르면 문경새재 상인들은 해마다 ‘관광객 편의를 위한 상가번영회 간담회’를 가졌다. 이유는 “특색 있는 먹거리가 약하고 일부 음식점이 불친절하거나 비싸다는 관광객의 비판” 때문이란다. 2013년에 이어 2014년도에도 똑같은 보도가 나왔다. 상가번영회 간담회가 겉치레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오늘날 문경새재는 유생들과 보부상들이 다니던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오간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배를 채울 대안이 예전처럼 주막밖에 없는 게 아니다. 차로 조금만 나가면 문경이나 수안보에 이르고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면 문경휴게소나 괴산휴게소에 금방 도착한다. 문경새재가 아무리 천혜의 자연과 역사를 간직했다 한들 주막은 닫혀있고 식당은 비싸다면 누가 오래 머물고 싶어할까?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대산농촌재단과 함께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와 [지역농업이슈보도실습] 강좌의 산물입니다. 이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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