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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창고, 문화예술을 품다
[지역∙농업이슈] 도시 재생 ① 성수2가
2016년 01월 27일 (수) 20:21:49 이지민 기자 aaa3469@naver.com
모든 도시는 세월과 함께 변화한다. 한때 사람과 자본이 몰려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 한순간 몰락의 길을 걷기도 한다. 지역을 지탱하던 중심 산업이 쇠퇴하거나 도시 확장으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면, 그곳은 더 이상 삶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죽은 장소로 전락한다. 숨을 쉬지 않는 도시에 새로운 기를 불어넣는 과정, 이를 ‘도시 재생’이라고 한다. 자본을 억지로 투입해 인공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대신 장소가 가진 본연의 의미를 끄집어내 장소 정체성을 만든다. <단비뉴스>는 3회에 걸쳐 도시 재생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을 찾아간다. (편집자)

서울 지하철2호선 성수역에 처음 내리는 사람은 역사 안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수제화 공장과 가게를 점으로 표시한 커다란 지도와 수제화 조형물이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구두가 만들어지는 과정, 종류, 구두 장인의 이야기로 채워진 ‘슈스팟’이라는 이름의 전시가 약 130m에 걸쳐 펼쳐진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공간 특성이 대번에 드러난다. 80년대부터 구두공장이 모여든 성수동은 한국 수제화 제조업체 70%가 모여 있는 곳이다. 3평 남짓한 작은 신발 가게부터 서울시가 지원하는 대규모 구두 공동 판매장이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다.

   
▲ 지하철2호선 성수역 안에는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전시물이 눈길을 끈다. ⓒ 이지민

평일 대낮 성수역 3번 출구에서 처음 만나는 건 골목길을 오가며 부자재를 나르는 오토바이들이다. 낡은 창고와 그리다가 만 것 같은 벽면의 그라피티가 겨울 날씨와 어울려 황량함을 더한다. 야트막한 창고 건물과 자동차 정비소가 한 목소리로 ‘회색’을 외치는 듯하다.

   
▲ 성수역 3번 출구에서 나와 걸어본 성수 2가에서는 준공업 지대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 이지민

이런 성수동에 2010년 이후부터 문화예술인들의 공방과 작업실이 생기기 시작했다. 1970년대 정미소로 지어진 대림창고가 패션쇼와 전시회를 위한 공간으로 2011년 재탄생했고, 2014년 2월에는 인쇄 공장을 개조한 갤러리 카페 겸 조명 공방인 ‘자그마치’(zagmachi) 가 문을 열었다. 변화에 응답하듯 성수동은 2014년 장위동, 신촌동, 상도동, 암사동과 함께 서울형 도시재생시범사업지역으로 선정됐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총액 100억 원을 지원받아 지속 가능한 도시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성동구는 전국 최초로 지속가능도시추진단에 지속발전과와 도시재생과를 두고 어디나 비슷한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하면서 장소성을 되살리는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응답하듯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를 성수동에서 실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공장이나 자동차정비소였던 낡은 공간을 깔끔하게 신축하는 대신 장소성을 살려 지역 고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특색이다.

   
▲ 성수동은 2014년 서울시의 도시재생시범사업 지역 5곳에 포함됐다. ⓒ 성수도시재생지원센터

작년 8월, 4월, 6월에 각각 문을 연 편집숍 '수피(SUPY)', 카페 겸 문화 공간 '레 필로소피(Les Philosophies)', 카페 겸 갤러리 '사진창고'가 대표적인 주인공들이다. 성수2가에 둥지를 튼 이 업체들은 성수동의 낡은 공업지역 분위기를 매장에 반영하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이 만든 상품을 팔고, 즐기는 일을 2015년에 왜 이곳에서 시작하게 되었을까?

허름함을 이용한 역발상

“2014년 9월 말에 뉴욕에서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왔는데요. 그때 성수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처음 거리를 걸으면서 ‘여기 서울 맞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낯선 느낌이 들었어요.”

편집숍 '수피’(SUPY)의 이계창(35) 대표는 서울의 부동산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발품을 팔았다. 누구나 그렇듯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원했다. 그러나 임대료, 보증금, 권리금이 높은 곳들을 뚫기 힘들었고, 성수동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 어느 지역보다 낙후된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자신이 만들어갈 수 있는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 작년 겨울 매장으로 개조하기 전 신발∙봉제공장의 입구. ⓒ 이계창 Instagram 계정

신발∙봉제공장이었던 지금의 터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이 대표 본인은 물론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무서울 정도로 지저분한 상태였다. 이 대표는 공장이 처음 세워졌던 1960년대 건물 모습을 상상하며 본연의 분위기를 되살리고 싶어 했다. 지인들의 반응은 싸늘했고 비웃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홍대, 이태원, 압구정 등지 상권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색다른 느낌이 이곳에 있었다. 음습하고 허름하지만 어딘가 예술적인 느낌이 '수피' 브랜드의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인 컨셉과도 맞는다고 이 씨는 생각했다.

   
▲ 1층 인쇄공장 옆에 '수피'(SUPY) 매장을 알리는 표시가 있지만, 허름한 외관 때문에 화려한 옷 매장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 이지민

'수피' 매장은 1층의 인쇄공장 '현대제책사'를 지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바삐 돌아가는 인쇄공장 벽면에 무심한 화살표가 입구를 알려줄 뿐이다. 불친절한 표지판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검은 문이 가로막고 있다. 무거운 문을 밀면 요란한 장식과 최신 유행하는 옷들이 펼쳐지고, 힙합클럽에서나 나올법한 음악이 귀를 때린다. 쿵쿵 울리는 음악 소리가 문 밖 공장의 어수선한 소음을 무색하게 한다. 부실한 천장과 벽면, 노출된 구조물, 붉은 조명은 낯설다 못해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든다.

   
▲ 페인트칠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세련된 편집숍이 나타난다. ⓒ 이지민

애써 눈에 띄지 않으려는 듯 도도한 외관을 띄고 있지만 이 대표는 성수동에 지금보다 많은 사람이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패션 아이템을 내놓는 사람으로서 보는 이들이 많을수록 보람을 커지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저기 새로운 빌딩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려가 들기도 한다고 밝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보았던 차가운 공업 지대의 매력, 그 속에 새로운 생명력이 꿈틀대는 느낌이 사라질까 봐서다.

   
▲ 오래된 건물의 느낌을 살린 내부 인테리어가 감각적인 패션 아이템들과 대비된다. ⓒ 이지민

“새것이 무조건 좋다거나, 부동산으로 돈 좀 벌어보자는 의식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새것과 옛것이 공존하면서 성수 2가가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옷이나 장신구 외에 공간에 멋을 더하기 위한 소품들이 눈에 띈다. ⓒ 이지민

공연, 전시, 강의가 이루어지는 문화공간

‘수피’를 나와 성수역 반대편으로 50m 정도 가면 검정색으로 칠해진 멀끔한 카페가 나온다. 카페 '레 필로소피'(Les Philosophies)의 원래 건물은 성수2가 지역에서 창고나 공장만큼이나 많이 눈에 띄는 자동차정비소였다. 카페 맞은편 큰 카센터가 증·개축 전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차가 들어오던 입구는 통유리로 재탄생했고, 바닥과 벽면은 페인트만 새로 칠하는 정도로 손봤다. 타이어를 걸어두던 2층에는 팟캐스트를 녹음할 수 있는 녹음실과 전시공간으로 재구성했다.

   
▲ 1년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정비소였던 곳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쓰인다. ⓒ 이지민

“세 명이 동업해서 만들었어요. 한기일이라는 친구는 영화 관련 칼럼을 쓰면서 팟캐스트 ‘명화남녀’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그걸로 책도 냈는데요. 녹음할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죠. 그래서 2층에 녹음실을 만들었고요. 이종환이라는 친구는 작곡하고 기타를 쳐요. 그래서 가끔 공연도 열고, 강의도 여기서 하죠.”

   
▲ ‘레 필로소피’ (Les Philosophies)를 운영하는 대표 세 명은 각자의 장기를 살려 기타 강의, 영화 보기 강연 등을 연다. ⓒ 이지민

이호정 대표는 공간의 역할이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약간 쑥스러워했다. 2층에는 매주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 7점을 소개하는 ‘7Pictures’라는 전시가 진행중이고, 주말에 열릴 공연, 강의 포스터가 계산대 벽에 붙여져 있었다. 팔리길 기다리는 사진이 듬성듬성 걸려있고, 북카페 분위기를 내는 다양한 종류의 책이 한쪽 벽을 채우고 있다. 심지어 계산대 옆에는 작은 온실처럼 보이는 공간도 있는데, 독특한 꽃과 선인장이 눈길을 끈다. 공업지역 분위기를 살리는 한편으로 플로리스트인 지인을 불러 삭막함을 조금 덜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 현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꽃다발과 화분이 있다. 수강생을 모아 꽃꽂이 레슨을 열기도 한다. ⓒ 이지민

카페도 카페지만, 재밌게 놀아보자는 취지에서 문을 열게 됐다는 이 대표는 최근 하나둘 신축하는 주변 건물들을 보며 걱정이 없지 않다고 털어놨다. 바로 앞뒤로 공사중인 건물에 모두 카페가 들어올 예정인데, 손님의 절반이 지역 주민이기에 매출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이 상업화하는 것은 좋지만 진입장벽이 낮은 카페 창업으로 획일적인 경관을 이루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유동인구가 많아지되, 소품가게, 공방 등 다양한 상점이 들어와 볼 거리가 풍성한 곳으로 조성되었으면 하는 게 이 씨의 바람이다.

청바지 봉제공장이 갤러리로

단순히 카페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한 성수동의 문화공간 중 대표적인 곳이 ‘사진창고’다. 지난 6월부터 손님들을 맞고 있는 이곳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사진 전시를 볼 수 있다. 강연과 전시를 위한 대관도 이루어진다. 카페를 운영하는 최종은 대표 자신이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열정 있는 사진작가들이 비싼 대관료 때문에 전시할 공간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커서 직접 갤러리를 열었다고 한다. 예술가들과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지금까지는 좋다. 저렴한 대관료 덕에 5월까지 전시 예약이 끝났고, 10월과 11월 예약도 차 있다. 방문했던 1월 15일 오전에는 '사진창고'의 독특한 분위기를 눈여겨본 드라마 촬영팀이 다녀갔다고 한다.

   
▲ '사진창고' 옆 건물 ‘베란다 인더스트리얼’ (Veranda Industrial)은 금속 부품공장을 개조한 스튜디오이자 갤러리다. ⓒ 이지민

원래 청바지 봉제 공장이었던 사진창고는 입구부터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내뿜는다. 금속 부품 공장을 개조한 갤러리인 '베란다 인더스트리얼' 바로 옆에 있다. 노출 콘크리트를 정비하지 않은 외관과 정직하게 쓰인 '사진창고'라는 간판이 어딘가 황량해 보인다.

   
▲ 정돈되지 않은 입구 탓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어오길 망설이기도 한다고 최 대표는 말했다. ⓒ 이지민

내부는 외관보다는 정비된 모습이다. 빛바랜 벽면에 낡은 수동 카메라가 걸려있고, LP 기계에서 팝송이 흘러나온다. 흑백TV 같은 소품들은 멋스럽게 느껴진다. 창고 느낌을 살린 컨테이너 뒤로 테이블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손님들은 한번씩 커피를 손에 쥐고 곰곰이 사진 작품들을 살펴본다. 점심을 먹고 회사 동료들과 커피를 사려고 들렀다는 이소경(28)씨는 "친구들이 근처로 놀러오면 데려오는 카페"라며 “외부와 내부 분위기에 반전이 있고, 소품이랑 사진이 많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고 이곳의 매력을 꼽았다.

   
▲ 커피를 마시면서 무료로 사진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 이지민

최종은 대표는 전시 포스터가 걸려있는 걸 보고 갤러리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카페여서 당황하는 사람들에게 “사진만 보고 가셔도 된다”고 말한다. 지나가는 동네 분들이 “커피는 마시고 왔는데 어쩌느냐”고 하면서 나가려고 하면 팔을 붙잡고 “둘려보시고 다음에 와서 주문하시라”며 일단 반긴다. 애초에 커피를 팔아 수익을 남기겠다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과 사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잘 찍든 못 찍든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유명작가의 전시가 아니어도 사진을 앞에 두고 대화하는 공간으로 쓰인다는 게 보람이고 즐거움이죠.”

겨울이라 밖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는 힘들지만 ‘사진창고’의 옥상은 추위를 감수하며 구경하고 싶은 독특한 풍경이다. 미술학원에 있어야 할 석고상이 바닥에 놓여있고, 우유를 담는 초록 플라스틱 상자가 테이블을 받치고 있다. 강의나 세미나가 이루어지는 방문은 파란색 페인트로 서툴게 덧칠되어 있다. 회색 벽돌을 벽 삼아 사진 4점이 아무렇지 않게 걸려있는 모습은 기이해 보이지만 어딘가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만 같다.

   
▲ 옥상은 그 자체로 또 하나 볼거리다. 어디선가 주워온 듯한 의자들을 모아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 이지민

아직은 흰 도화지 상태인 성수2가

창고, 공장, 자동차 정비소들이 내뿜는 삭막함을 뚫고 하나둘 재밌는 공간이 생기는 중인 성수동은 많은 매스컴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시작 단계’인 것 같다고 이곳에서 막 자리 잡은 사람들은 말한다. ‘레 필로소피’ 이호정 대표는 “성수동이 서울의 브루클린이라고 잡지 같은 데서 쓰는데, 좀 오버하는 느낌도 든다”며 “기대하고 왔는데, 막상 거리를 보고 실망하는 분들도 계신다”고 밝혔다.

“저한테 여기가 카페거리냐고 손님들이 물어보시면, 어디라고 말씀드리기가 모호해요. 뉴욕의 브루클린처럼 문화예술로 알려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성동구 차원에서도 이루어지는 도시 재생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작년 4월 성수도시재생지원센터가 문을 열어 주민이 참여하는 도시재생아카데미, 도시재생주민기자단 등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갔다. 도시 재생은 2018년까지 1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성동구의 ‘사업’이기도 하지만 주민이 원하는 공간을 꾸리고, 의견을 수렴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성수도시재생지원센터 안애랑 씨는 “성수2가에서 일어나는 민간 차원의 변화를 지원할 것”이라면서 동시에 “무엇보다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도시 재생 사업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한다는 게 성동구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편집 : 서혜미 기자

[이지민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지역농촌팀 이지민입니다.
책임질 수 있는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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