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재앙은 막자] ⑤ 발전소 주변의 환경오염

지난 5월 19일 오후 6시쯤 경북 경주시 양남면의 나아해변. 동글동글한 자갈이 깔린 몽돌해변에서 50대 후반의 남자가 여러 군데 설치해 놓은 낚싯대들을 오가며 ‘입질’이 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해변 북쪽 끝, 파란 바다를 가로지른 방파제 너머에는 잿빛 무덤 모양의 원자로 몇 개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983년 월성 1호기가 들어선 후 올해 완공된 신월성 2호기까지 모두 6기의 원자로가 이곳에서 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 월성원전 앞 나아해변에서 한 남자가 낚시를 하고 있다. © 구은모

울산에 살면서 가끔 이 해변으로 낚시하러 온다는 남자는 “취수구 주변에서 잡어가 잘 잡힌다”며 “원전 옆이라고 해서 특별히 불안할 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도 게를 몇 마리 잡았다며 즐거워했다.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에서 사고가 날까봐 시민단체들이 ‘폐쇄하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와중에도 낚시꾼과 산책 나온 주민 등 10여명이 오가는 나아해변은 언뜻 한가롭고 평온해 보였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민의 삶과 거대한 무덤들이 평화롭게 공존해 온 경주시의 모습처럼.

‘사고 위험’ 원전 옆에서 한가롭게 낚시하는 사람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월성원전과 지역 주민들은 결코 조화롭게 공존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0년 11월 월성원전·방폐장 민간환경감시센터는 원전 주변 주민들의 소변을 채취해 방사성물질의 하나인 삼중수소(트리튬,용어설명참조) 농도를 측정했다. 민간환경감시센터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원전 주변환경의 방사능을 감시하기 위해 설립한 조직으로, 관할 지자체장이 위원장을 맡고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조사 결과 원전에서 약 2킬로미터(km) 떨어진 나아리 주민들의 체내 삼중수소 농도가 16.4~31.4리터당베크렐(Bq/L,용어설명참조)로 나타났다. 반면 원전에서 약 30km 떨어진 경주시내 주민들의 체내 농도는 ‘미검출’이거나 최대 1.12Bq/L에 불과했다. 원전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이 공기, 토양, 수자원 등 어떤 매개 물질의 오염을 통해서든 인근 주민들의 체내에 흡수됐음을 시사하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몸이 삼중수소 같은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면 세포 내의 디엔에이(DNA) 염기서열이 끊어지거나 훼손되기 시작한다. 염기서열이 끊어지거나 훼손되면 우리 몸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수리 작업을 하는데, 이때 일부 작업이 잘못되면서 비정상적인 세포, 즉 암세포가 생긴다. 암 발생 확률은 방사선에 노출된 만큼 높아진다.

▲ 월성원전 앞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가 설치해 둔 팻말. © 구은모

지난 2006년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NAS)가 발표한 ‘저선량 방사선의 생물학적 영향에 대한 일곱 번째 보고서(BEIR Ⅶ: Biological Effects of Ionizing Radiation Report Ⅶ)’는 ‘선형 무역치(Linear Non-Threshold)모델’을 통해 건강에 미치는 방사선의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이 모델에 따르면 방사선 노출량과 암 발생 확률에는 ‘역치(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최소한의 값)’가 없다. 다시 말해 방사선 노출에 있어 최소한의 안전기준치란 존재하지 않고 노출량과 암 발생 확률은 비례관계에 있으므로, 방사선에는 최대한 노출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선형 무역치 모델이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100밀리시버트(mSv) 이상 노출된 핵폭탄 피해자와 과거 원전 종사자 집단을 대상으로 피폭량과 암 발생 확률을 연구한 결과 방사선피폭으로 인한 평균적 위험이 1000mSv당 5% 늘어나는 데 불과했다는 것이다. 피폭으로 암 발생 확률이 높아질 수 있지만 실제 증가율은 매우 미미하다는 주장이다.

기체와 액체폐기물 대거 방출해 공기·토양·수질 오염

원전에서는 어떤 경로를 거쳐 방사성 물질이 배출될까. 원자로를 돌리면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고체, 기체, 액체폐기물이 나온다. 이 중 고체폐기물은 아직까지 영구처분시설이 없어 원전 안에 임시 보관하지만 기체와 액체폐기물은 기준치 이하로 방사능을 줄여 대기와 바다에 배출한다. 이렇게 배출된 기체 및 액체 폐기물은 바람을 타고 퍼져나갈 수 있고 빗물에 섞여 지하수, 강, 토양을 오염시킬 수 있다. 오염원이 되는 방사성 물질은 리튬, 베릴륨, 붕소 등 100가지 이상인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삼중수소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기체 및 액체폐기물의 배출량이 공개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의원실에 따르면 2004~2013년까지 10년간 국내 원전에서 배출한 방사성폐기물은 기체 3514.6조 베크렐(Bq), 액체 2400.1조 Bq 등 약 6000조 Bq에 이른다. 이는 10억 밀리시버트(mSv)의 피폭량으로, 연간 인체 피폭기준치의 10억 배에 달하는 양이다.

▲ 지난 10년간 국내 원전에서 배출한 기체·액체폐기물 방류량. © 정호준 의원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기체 및 액체 폐기물이 일상적으로 배출되는 것은 배출기준이 허술한 탓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고시 제2012-29호 제6조의 배출관리기준에 따르면 폐기물 배출의 기준은 총량이 아닌 ‘농도’로 되어있다. 일정 농도 이하로 희석된 방사성폐기물이라면 전체량이 얼마나 많든 상관없이 버릴 수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정호준 의원은 지난 1월 배출총량규제를 골자로 하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 처리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19일 시민방사능감시센터 등 환경단체는 ‘국내 원전주변 수산물 및 토양의 방사능오염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부산 기장군의 고리원전 등 국내 4개 핵발전소 인근 5km 이내 수산물과 토양을 채취해 방사능 오염분석을 했고, 원전과 무관한 지역을 대조군으로 선정해 토양오염을 비교분석했다. 조사결과 원전 주변의 어류, 해조류, 토양 등 59개 시료 중 12개 시료에서 세슘137과 요오드131이 검출되는 등 일반 수산물과 토양에 비해 높은 검출률(20.3%)을 보였다. 방사성 물질의 평균 검출 농도는 토양 1.62킬로그램당베크렐(Bq/kg), 어류 4.42Bq/kg, 해조류 0.36Bq/kg로, 국내 식품 방사성물질 검출 허용 기준치인 100Bq/kg에는 크게 못 미쳤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인체에 축적될 경우 건강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환경운동연합 원전특별위원회 서토덕 공동위원장은 원전이 방사능 오염의 원인일 것으로 봤다.

“주목할 점은 고리원전 주변에서 요오드131이 나왔다는 것이죠. 세슘134, 세슘137은 후쿠시마 사고나 기존 핵실험의 결과라고 하면 이걸 밝혀내기 어려운데, 요오드131은 기체 방사성 폐기물에 포함돼 있고, 반감기(방사성 핵종의 원자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가 8일이기 때문에 최근에 발생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원전을 원인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원전이 아니라 갑상선암 치료에 사용되는 요오드131이 요양병원이나 대형병원에서 하수종말처리장을 통해 바다로 유출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슘137의 경우 반감기가 30년이다. 검출의 원인을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반감기가 8일인 요오드131이 검출됐다면, 비교적 최근에 발생했고 그 출처를 국내 원전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환경단체와 정부의 입장 차이는 민관합동조사단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민관합동조사단은 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수력원자력,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고리원전안전협의회가 선출한 운영위원회와 조사반으로 구성됐다. 조사단은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요오드131이 검출된 고리원전 주변에서 방사성 물질 현황을 파악했다. 조사결과는 원안위에서 아직 발표하지 않고 있다.

원전 주변 해수담수화 계획에 주민들 반발

환경단체들이 원전 주변의 방사능 오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의 정경화(45) 씨는 ‘해수담수화 수돗물이 공급된다’는 뉴스를 접했다. 고리원전이 있는 기장군 일대 약 5만 가구에 하루 4만5천 톤(t) 가량의 물을 바닷물 담수화처리를 통해 공급한다는 소식이었다. 해수담수화란 바닷물에서 염분과 유해물질을 제거한 후 생활용수와 공업용수 등을 만드는 과정이다.

“문제는 해수담수화 시설이 원전하고 너무 가깝다는 거죠. 원전에서는 온배수가 엄청나게 나오잖아요. 삼중수소라든지 유전자 변이를 일으킬만한 방사능 물질들이 포함돼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방사능이 섞인 물이 몸속에 누적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않습니까.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실험대상이 아닙니다.”

기장군 주민들은 담수화 시설에서 불과 11.3km 떨어진 거리에 고리원전이 있는데 어떻게 그 물을 먹겠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정씨는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인 자녀들에게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물을 먹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해수담수화반대주민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위원장까지 맡게 됐다. 반면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지난 4월 미국국제위생재단(NSF) 수질검사를 거쳐 “검사항목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 58종이 모두 검출되지 않았다”며 안전성 논란을 일축했다.

▲ 김익중 교수는 원자로에서 핵반응이 일어나면 백여 종의 방사성 물질이 발생하는 만큼 몇 가지 샘플검사만으로 원전 주변의 바닷물이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구은모

동국대 의대 김익중(55) 교수는 이같은 부산시상수도사업본부 발표에 대해 “원자로에서 핵반응이 일어나면 백여 종의 방사성 물질이 발생하는데, 몇 가지 샘플검사만 가지고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방사성 물질 전체에 대한 상시적인 검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어떠한 단정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의 방사성 물질 검사는 세슘처럼 측정하기 쉬운 물질 위주로 이뤄지고 있어 위험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너무 높은 방사능 허용치 ‘알라라 원칙’ 따라 낮춰야 

김 교수는 국내 방사선 허용 기준치가 ‘알라라(ALARA)’ 원칙에 입각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라라 원칙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제시한 기준으로,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가장 낮은 값(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방사능 기준치는 너무 높아서 알라라 원칙에 맞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세슘 기준으로 100Bq/kg입니다. 근데 일본산 수산물 중에서도 이 기준치 이상으로 오염된 것이 발견된 적이 없어요. 위반이 불가능할 정도로 기준이 높기 때문이죠. 기준치를 100이 아니라 4베크렐로 낮춰야 합니다. 4이상 오염된 게 극히 드뭅니다. 이렇게 황당하게 기준치를 높여놓고 기준치 이하니까 안전하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김 교수는 이십여 년 전 동국대 경주 캠퍼스에 부임하면서 경주 시민이 됐다고 한다. 그는 공기 좋고 산 좋은 경주가 좋았고 평생 살아갈 터전이라 여겼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까지는 그랬다. 사고 이후 그의 삶은 바뀌었다. 우선 경주 시내에 있던 집을 옮겼다. 원전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30km 밖으로 이사했다. 일상도 변했다. 후쿠시마 사고 전에는 경주에 건설 중이던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 남은 인생을 모두 ‘탈원전’에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는 월성원자력발전소. © 구은모

“국민이 알고 여론이 바뀌어야 정책이 바뀝니다. 국민이 모르고 정책이 바뀌면 다시 뒤집어지죠.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게 국민이 아는 겁니다. 국민이 알고 여론이 바뀌어서 정책이 바뀌면 되돌아가기 힘들죠. 탈핵은 이런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용어설명>

삼중수소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돼 있다. 원자는 중심에 자리한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로 구성된다.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눠지는데, 양성자와 중성자의 비율에 따라 안정된 원자핵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불안정한 원자핵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중 상태가 불안정한 원자핵을 ‘방사성 핵종’이라고 부른다. 방사성 핵종은 안정된 원자핵으로 변환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방사선을 방출한다. 이런 방사성 핵종을 일정한 비율 이상 함유하고 있는 물질이 ‘방사성 물질’이다. 방사성 물질은 방사선을 낼 수 있는 물질인 셈이다. 방사선에는 알파(α)선, 베타(β)선, 감마(γ)선, 엑스(X)선, 중성자선 등이 있다.

삼중수소는 대표적인 방사성 물질이다. ‘수소(H)’는 모든 물질 가운데 가장 가벼운 원소로, 원자핵에 양성자 하나만 가지고 있다. 이런 수소 원자핵에 중성자 하나가 더해진 게 ‘중수소(²H)’이고, 두 개가 더해진 것이 ‘삼중수소(³H)’다. 중수소는 방사선을 내지 않지만 삼중수소는 주로 베타선을 방출하는 방사성 물질이다. 자연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주로 원자로에서 리튬6에 중성자를 쪼였을 때 일어나는 핵반응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물(H2O)은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결합돼 생성된다. 삼중수소는 수소와 질량만 다른 동위원소이기 때문에 물 분자를 형성하는데 있어 수소원자와 구별되지 않는다. 따라서 삼중수소로 구성된 물이 우리 몸속에 들어오면 수소로 구성된 물과 동일하게 반응한다. 삼중수소는 주로 물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식수를 통해 섭취돼 내부피폭을 일으킨다. 또한 공기 중의 삼중수소 원자가 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유입돼 피폭을 일으키기도 한다.

베크렐(Bq)과 시버트(Sv)

방사선의 기준치 단위에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베크렐(Bq)은 방사능의 강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1초에 원자핵이 붕괴하는 수를 나타낸다. 우리나라에서 식품에 허용되는 세슘 기준치는 100Bq/kg이다. 예를 들어, 100베크렐로 오염된 생선 1킬로그램을 먹었다면 1초에 100개의 세슘원자핵이 몸속에서 붕괴하며 방사선을 내뿜는 것이다.

방사능 기준치의 두 번째 단위는 시버트(Sv)다. 시버트는 인체에 노출된 방사선의 양을 의미한다. 즉 방사선에 의해 신체가 받는 피폭량이다. 우리나라는 1mSv/y(일인당 연간 1밀리시버트)를 피폭기준치로 삼고 있다. 밀리시버트는 시버트의 1000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편집 : 이명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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