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교장도 못 뽑는 서울로봇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서울시교육청 장학관 ‘내정설’ 등으로 공모 중단…학교경영계획서 표절 논란도

서울로봇고 교장 공모에 지원한 서울시교육청 장학관이 ‘내정된 인물’이라는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는 등 불협화음이 일자 시교육청이 공모 일정 자체를 중단시켰다. 한 로봇고 교사는 “ㅅ 장학관이 서울교육청의 마이스터고 예산 관련 분야를 담당하기 때문에 내정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또 “그 장학관이 학교경영계획서를 표절했다”며 의혹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당사자인 ㅅ 장학관은 로봇고 교장 내정설과 표절 의혹을 부인하면서 교육청의 불편한 입장을 고려해 29일 오전 사퇴했다고 밝혔다.

▲ 서울로봇고의 교장 공모에 서울시교육청 직업교육과 장학관이 지원했다. 장학관은 개인 자격으로 지원했다고 말했다. ⓒ 전광준

한 로봇고 교사는 “ㅅ 장학관이 교육부에서 마이스터고에 지원한 예산을 전액 학교에 지급하지 않고 20~30% 삭감해 지급되도록 방치해 학생들을 어려움에 처하게 했다”는 지적도 했다. 마이스터고 지원금은 교육청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일반교부금으로 내려오기에 교육청 재량에 따라 교육부에서 배정한 것보다 적은 예산을 일선학교에 내려보낼 수 있다. 그러나 ㅅ 장학관은 “시의원에게 찾아가 마이스터고 예산을 달라고 설득했다”며 “마이스터고 담당이고 전공도 기계공학이라 애정이 있어 로봇고에 지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고는 지난 11일, 교장자격증을 가진 교육공무원과 해당 교육과정 관련 기관 또는 단체에서 3년 이상 종사한 경력이 있는 외부 인사를 대상으로 개방형 교장 공모에 들어갔다. 산업체와 협력이 중요한 마이스터고의 특성상 산업체 인사 등 외부인사 영입이 용이한 개방형 공모제가 적용된 것이다. 지원자 6명 중 한 명은 서울시교육청 진로직업교육과 장학관이었다.

표절 시비가 일고 있는 ㅅ 장학관의 학교경영계획서는 A4 용지로 17쪽에 이른다. 나머지 지원자 다섯 명의 경영계획서 전부를 합친 것과 동일한 양이다. ㅅ 장학관은 “다른 지원자의 경영계획서를 보면 알겠지만 내 것에서 훨씬 더 고민한 흔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4쪽의 ‘학교 현황 분석 및 발전 방안’이다. ㅅ 장학관은 ‘교육여건 SWOT 분석’과 ‘SWOT 대응 전략’을 도표로 상세하게 그렸다. SWOT 분석은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위협(threat) 요인을 규정해 이를 토대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로봇고 교사는 상당 내용이 자체 작성한 ‘2015 서울로봇고 학교교육계획서’ 79쪽의 ‘SWOT 분석’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많이 겹치는 ‘약점’에는 로봇고의 ‘약점’에 있는 문장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순서는 물론 단어도 동일하다.

▲ 윗 사진은 ㅅ 장학관의 학교경영계획서이며, 아래 사진이 로봇고의 학교교육계획서다. 형광펜으로 동일한 문장을 표시해놓았다. ⓒ 서울로봇고

그 밖에도 ‘강점’에는 다섯 문장 중 하나가, ‘기회’에는 다섯 문장 중 두 개가, ‘S-O 전략’에는 세 문장 중 하나가, ‘W-O 전력’에는 세 문장 중 한 문장이 동일하다. ‘S-T 전략’에서는 세 문장 중 하나가 유사하고, ‘W-T 전략’에서는 세 문장 중 두 개가 유사하며, ‘장기적인 전문교과 교원 지원 전략 수립’이라는 대목은 그대로 쓰여 있다.

해당 문장은 6어절로 서울시가 ‘교장공모제 시행계획’에서 밝힌 표절 기준인 ‘연속 동일 6어절 이상 일치’에 부합한다. 시행계획은 출처 표시를 하지 않아도 표절이라 명시해놓고 있다. ㅅ 장학관의 해당 도표에는 출처가 없다.

ㅅ 장학관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처음에는 “충실하게 창의적으로 썼다”고 말했으나 통화 후반에는 “학교교육계획서를 참고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의도적으로 표절하지는 않았다”며 “실수라면 실수고 소홀했다면 소홀했다”고 말했다.

교장 공모 지원자는 ‘표절 사실 여부 확인 및 서약서’에 서명해야 한다. 서약서에는 ‘표절 및 대필로 인정될 경우 공모 교장 추천 또는 임용 취소는 물론 민•형사상의 모든 법적 책임을 질 것’이라 쓰여있다. 표절심사위원회 판정 결과, 표절이 드러나면 징계위원회에 징계도 의뢰할 수 있다.

그러나 ㅅ 장학관은 처벌과 징계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9일 오전 후보 사퇴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 자격으로 지원했다 사퇴했고 교육청 차원의 지원은 서운할 정도로 전혀 없었다”며 “교육청과 로봇고의 불협화음 때문에 현직 공무원인 자신의 입장이 불편해 사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교육청과 로봇고는 교장 공모 진행 여부를 놓고 ‘불협화음’을 낳고 있다.

서울시교육청과 로봇고의 충돌

29일 로봇고는 예정된 ‘학교경영계획서 설명회’와 심층면접까지 마무리했다. 면접은 ㅅ 장학관과 다른 후보 등 2명이 사퇴해 4명만으로 실시됐다. 하지만 로봇고의 1차 심사가 효력을 가질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서울시교육청이 24일 교장 공모제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공문에는 내년 3월 1일 이후 교장공모제를 다시 시작하고, 새 교장 임명이 3월 1일 불가능하다면 교감을 교장직무대행으로 임용하라고 돼있다.

교육청이 공모 중단을 지시한 것은 공모제의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12월 17~21일 서울교육청의 감사가 이뤄졌고 한 로봇고 교사가 교장공모제에 관해 왜곡된 글을 네이버 ‘밴드’에 썼다는 이유에서다. 교육청은 그 교사가 감사가 시작된 후 갑자기 운영자를 교체했으며 글이 삭제된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교사는 학부모가 만든 밴드이기에 교사가 운영자를 다른 이로 교체할 수 없을뿐더러, 그런 글도 올린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교육청 민원조사에 이의제기도 했다”며 “표절 사실이 적발될 경우 받게 될 불이익을 걱정해 장학관을 보호하려고 교장 공모 절차를 중단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상당수 교사들은 "현 교장을 지지하는 해당 교사가 밴드를 운영한 것이 맞다"고 주장하며 "교장 공모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교육청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교육부의 공모 중단 요청에도 불구하고 로봇고가 교장 공모를 진행하는 데 대해 반대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은 “아직 감사가 진행중이어서 무엇이 사실인지 정확하게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서울로봇고 일부 교사는 서울시교육청이 부당하게 교장 공모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문중현

교육청과 로봇고의 의견이 갈리는 지점이 또 있다. 바로 ‘학교 교장공모 심사위원회’ 공개 여부다. 교장 심사는 크게 두 단계로 이뤄진다. 학교가 자율적으로 꾸리는 심사위원회를 거친 뒤 교육청이 구성한 심사위원회가 심사하는 형식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심사위원 명단은 심사 시작 당일, 로봇고의 경우에는 심사가 처음 이뤄진 29일까지 공개돼서는 안 된다. 지원자 명단은 심사 당일 심사위원에게 공개하게 돼 있다. 지원자 명단을 비공개해 사전 담합과 로비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로봇고 교장 공모가 시작된 12월 11일, 교장 공모를 담당하는 장학사가 로봇고 교감에게 ‘심사위원회 명단’을 제출하라는 메일을 보냈다. 로봇고 쪽은 명단 비공개가 원칙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담당 장학사는 “교육청 심사위원을 뽑을 때 학교 심사위원과 중복을 피하기 위해 요청한 것”이라며 “교육청에 명단을 내는 걸 명단 공개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 담당 관계자는 “심사위원회 구성 비율만 받는다”고 말했으며, 경남도교육청 관계자는 “(명단 공개에 관해) 그건 안 되죠”라며 “구성 비율만 지키라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로봇고는 1차 심사 통과자 3명의 명단을 교육청에 올렸으나 교육청이 2차 심사를 진행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공모 담당 장학사는 “회의중이며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말하기 이른 단계”라고 말했다. 교육청 방침대로라면, 내년 3월 1일 이후에야 다시 공모가 시작되며 교장 자리는 교감이 임시로 맡게 된다”고 말했다. 로봇고 한 교사는 “내년 개학 이후까지 교장 없이 파행적으로 학교가 운영되면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업 출신이냐 교육관료나…마이스터고 교장 임용 툭하면 파행

지난 6월, 전북 군산기계공고의 교장 공고도 파행을 맞았다. 마이스터고 예산을 배분하는 전북교육청 직업교육팀 장학사가 교장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전북 시민단체들은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격”이라며 거세게 반대했다. 결국 공모는 한 달 만에 중단됐고 12월이 돼서야 교장 공모가 재개됐다. 7월 공모 당시 마이스터고 관련 부서 장학사의 지원으로 논란이 됐기 때문에 전북교육청은 이번부터 공모 학교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장학사와 장학관 등 교육전문직은 공모에 지원할 수 없도록 하는 제한 항목을 추가했다.

전북도교육청의 기준대로라면, 서울로봇고에 지원했다 사퇴한 ㅅ 장학관의 지원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현재 서울로봇고 교장은 KT 간부 출신이다. 전북도교육청 기준과 달리 서울시교육청은 교장 자격증이 있는 사람에 한해 관련 부서 교육공무원도 교장 응모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마이스터고 교장의 개방형 공모제가 현업에서 경험을 많이 쌓은 사람을 뽑는다는 취지에서 나온 제도라고 보면, 서울시교육청의 응모 자격 기준은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한 장치가 아니냐’는 논란을 계속 부를 것으로 보인다.


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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