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노동개혁’을 둘러싼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보도 프레임 전쟁

"여러분을 세금으로부터 구제하겠습니다!" 

2001년,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백악관은 연일 ‘세금구제’라는 말을 흘리기 시작했다. 언론도, 시민도, 심지어 야당인 민주당도 ‘세금구제’라는 단어를 습관처럼 사용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누군가를 구해낸다’는 뜻의 ‘구제’가 결합되면서 ‘세금’은 우리를 못살게 구는 존재, 대가 없는 납세라는 부정적인 편견이 미국시민들의 무의식 속에 자라났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2004년 ‘종합부동산세’, 올해 연초 ‘소득세제 개편’을 두고 언론과 정치권이 ‘세금폭탄’이라고 비판하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조세저항’의 역풍이 불었다.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건이나 상황은 다르게 인식된다. 언어를 조작하면 대중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도 조종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이를 ‘프레임 효과’라고 정의했다. 언어는 현대인들이 정치-사회적 의제를 수용하는 인식의 프레임을 규정한다. 따라서 정치권과 언론은 새로운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담은 단어들을 쏟아낸다는 것이다.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레이코프는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한다. 따라서 상대가 제시한 언어를 반박하는 수준이라면 상대가 파놓은 프레임의 늪에서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다. 상대가 ‘종부세는 세금폭탄’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종부세는 세율이 낮아 세금폭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변명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세금=서민의 적’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차라리 "종부세는 자산상위 2% 부자만 낸다"라든가 "종부세는 서민복지확대를 위한 토대"라는 식으로 ‘세금=부자의 적’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설계하는 것이 유리하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가 갈등과 대립을 반복하는 우리 사회에서 ‘프레임’ 이론을 적용할 사례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 예로 지난 9월 13일 시민사회와 야권의 거센 반발 속에 정부, 노동계, 경영계 등 10인으로 구성된 노사정위원회가 발표한 이른바 ‘노동개혁을 위한 대타협’이다.

여당의 노동개혁 명분, [분배] 프레임

이번 노동개혁은 ‘쉬운 해고, 쉬운 임금삭감, 쉬운 비정규 일자리 창출’로 인건비를 절감하고, 대신 ‘청년일자리 창출’을 약속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합의안에 따르면 기존 근로기준법에서는 용납하지 않던 ‘저성과자 및 근로불량자’ 해고가 가능해진다. 임금삭감, 노동시간 연장 등 근로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경우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했지만, 이번 ‘취업규칙 변경’ 합의안에 따르면 노사 간 ‘협의’만으로도 가능하다. 35세 이상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55세 이상 노동자를 파견직 형태로 고용할 수 있는 직종을 확대하기도 했다.

노사정 대화가 한창이던 7월부터 여당과 야당은 타협안을 두고 ‘현수막 전쟁’을 벌였다. 새누리당은 ‘정규직이 과보호 받는다’, ‘대기업 노조가 쇠파이프를 안 휘둘렀으면 국민소득 3만불을 벌써 달성했을 것이다’, ‘임금피크제로 청년고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발언과 현수막을 내놓았다. 정규직의 임금을 덜어 청년일자리를 만들자는 [분배] 프레임, 노조의 저항 탓에 경제성장이 멈췄다는 [성장] 프레임을 발견할 수 있다.

야당도 현수막을 걸었지만, 여당이 주요 전략으로 내놓은 [분배] 프레임 안에 갇혔다. ‘청년일자리 만드는 것은 재벌개혁’, ‘노동개혁은 아버지 임금 깎아 아들을 고용하자는 것’이라고 야당은 외쳤다. 결국 야당도 ‘노동개혁의 목적은 청년고용’이라는 프레임에 동의한 셈이 됐고, 이슈를 선점한 여당이 주도권 다툼에서 앞섰다. 물론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다. 같은 [분배]라도 여당은 ‘정규직-비정규직’, ‘장년-청년세대’라는 대립구도를 설정하여 노-노간 분배구조를 주장하는 한편, 야당은 ‘재벌-노동자’ 분배를 내세웠다. 하지만 ‘노동개혁=청년고용’이라는 여당이 파놓은 프레임을 깨지 못했기 때문에 야당의 주장은 오히려 여당의 주장을 확대재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 지난 7월부터 등장한 여야의 노동개혁 현수막. 여당이 ‘노동개혁=청년고용’이라는 [분배]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야당도 뒤늦게 현수막 대응에 나섰지만, 상대의 청년고용 프레임에 갇혀 주도권을 빼앗겼다. ⓒ 새누리당 홈페이지, 디자이너 손혜원 페이스북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노동개혁 프레임 분석

언론은 어떤 프레임에서 노동개혁을 다루었을까? 노동개혁 보도 프레임을 분석하기 위해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선정했다. <조선>과 <한겨레>는 지난달 한국ABC협회가 발표한 전국일간지 발행부수에서 각각 1위(167만 부), 5위(24만 부)를 차지한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진보언론이며, 노동개혁을 다루는 두 신문의 프레임 또한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분석기간은 노사정 타협이 이루어진 9월 13일(일요일)을 기준으로 전후 1주일, 총 2주일을 책정했다. 해당 기간 <조선>은 27건, <한겨레>는 28건의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분석을 위해 [대치], [분배], [소통], [경쟁], [성장], [기타]의 6개 프레임을 설정했고, 기사 각각의 제목과 본문을 대상으로 했다. [대치]는 주로 ‘대립’, ‘파행’, ‘갈등’, ‘결렬’, ‘강경’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노동개혁 찬반 양측의 의견과 협상결렬 과정을 기계적으로 보도하는 방식이다. [분배]는 ‘대기업 강성노조’, 기성세대, 재벌 등을 특권계층으로 가정하고 이번 노동개혁을 통해 다수의 청년과 노동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나눠주자는 관점이다. [소통]은 이번 노사정위원회가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거쳤는지, 또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충분히 ‘대표’했는지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외에 [성장]은 노동개혁이 기업에 ‘고용유연성’을 제공하여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관점, [경쟁]은 노동자를 ‘성과’로 점수를 매겨서 ‘일반해고’를 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관점을 담았다.

▲ 9월 7일~19일간 <조선>과 <한겨레>의 노동개혁 보도 프레임. 그동안 <조선>은 ‘해고요건을 완화하면 기업의 노동유연성이 높아져 국가경제성장률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로 경영계 인사를 인터뷰해왔다. 노동개혁을 [성장]프레임에서 다룬 것이다. 하지만 이번 노동개혁 보도에는 [분배]프레임을 들고 나온 것이 눈에 띈다. ⓒ 이성훈

청년고용 프레임 지지한 <조선일보>

<조선>은 제목에서 노사정 합의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협상 초기는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충돌했지만, 결국 모두가 청년고용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노동개혁에 합의했다는 분석이다. 제목의 프레임은 노사정 타협이 발표된 9월 13일을 전후로 [대치]에서 [소통]으로 이동했다. <조선>의 노동개혁 관련 기사에서 [대치][소통] 프레임은 70%나 됐다.

9월 13일 이전에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에 가로막힌 노동개혁...정부, 정면돌파 의지’ (9월 12일자 3면), 야 “노동정책 일방적 발표”, 여 “국민에 호소한 것” (9월 12일자 4면) 등 찬반 측의 대치상황을 제시하는 [대치] 프레임이 11건(40%) 보도했다. 하지만 협상 타결 이후에는 “험난했던 1년 협상...합의 이끌어내 감개무량”(9월 14일자 3면), 노사정위 활동-경제적 큰 고비마다 '소방수 역할'(9월 15일자 4면) 등에서 ‘큰 틀에서 합의’, ‘동의’ 표현으로 노사정합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소통] 프레임을 8건(30%) 보도했다.

기사 본문에서는 노사정 합의의 명분인 ‘청년고용’을 강조했다. ‘임금피크제로 청년고용 확대’, ‘세대 간 상생 고용 생태계 조성’ 등 [분배] 프레임이 33% 등장했다. 한편, 여당은 이번 노동개혁이 ‘정규직 과보호’를 해체하여 ‘청년 일자리 창출’, ‘세대 간 상생’을 도모하는 취지임을 내세웠다. 노조를 적대적으로 다루고, 노동개혁의 명분으로 청년고용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여당과 <조선>의 [분배][대치] 프레임은 일치한다.

▲ 9월 7일~19일 동안 <조선일보>의 노동개혁 보도 기사를 분석한 결과표. 제목에는 [대치]에 이은 [소통] 프레임으로 노사정 합의가 민주적 합의라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본문에는 정부와 여당이 노동개혁의 명분으로 제시한 정규직 과보호, 청년고용이라는 [분배] 프레임을 발견할 수 있다. ⓒ 이성훈

소통의 비민주성 지적한 <한겨레>

<한겨레>는 제목에서 노사정 토론과정의 비민주성을 지적한다. 이번 노동개혁이 부당하다고 분석한 [소통] 프레임이 제목과 내용 모두 30%를 넘는다. '쉬운 해고' 정부안 사실상 수용...'들러리 한국노총' (9월 14일자 5면) 등 협상과정에서 노동자 측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으며, ‘노사정 합의조차 무시, 여, 기간제‧파견법 강행’ (9월 17일자 1면) 등 여당이 노사정위원회가 합의한 내용마저 무시하고 노동개혁을 독단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기사 본문에는 ‘노동자 90%가 무노조’ (9월 15일자 2면), ‘청년-비정규직 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노사정위에 참여해야’ (9월 7일자 1면) 등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한 명 뿐인 노사정위에 더 많은 노동자 대표를 진입시켜 노동자의 발언권을 높이자고 주장한다.

한겨레는 "청년 일자리 위해 노사정이 공정하게 책임‧비용 분담해야" (9월 7일자 6면), "대기업 횡포근절 빠져" (9월 15일자 3면), '노조 울타리 밖' 노동자 1800만 명 '고용불안' 내몰릴판 (9월 15일자 3면) 등 청년 고용을 위한 [분배]의 책임을 정부, 대기업에 요구했다. '정규직 과보호론'을 제시한 <조선>의 [분배] 프레임과 대비된다. 아울러 '임금피크제로 일자리 13만개 창출' 16배 뻥튀기 (9월 11일자 4면), '임금피크제 실제효과는 미지수' (9월 15일자 5면) 등을 내세워서 <조선>과 정부가 노동개혁의 근거로 내놓은 '청년고용창출'의 진정성이 없다고 반박한다.

▲ <한겨레>의 노동개혁 보도 프레임. 노사정위에서 노동자가 과소대표 된다는 [소통]의 부당함, 노동자 처우를 악화시키지 말고 정부와 대기업이 고용창출에 나서라는 [분배] 프레임이 두드러진다. ⓒ 이성훈

제목으로 노동개혁 정당화한 <조선일보>

<조선>은 <한겨레>에 비해 제목과 기사의 내용이 다른 경우가 많다. 특히 [소통] 프레임의 경우, 기사 본문에는 11%만 담았지만, 제목에는 29%나 적용했다. 9월 15일자 기사 "靑年 고용·비정규직 문제 외면할 수 없었다"를 살펴보자. 제목만 보면 노사정 대표자들이 ‘청년고용창출’ 명분 아래 무난하게 합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사 본문에서는 "이제부터가 시작",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합의해 준 적이 없다", "공동실태 조사와 전문가 의견 수렴을 통해 대안을 마련할 것" 등을 담았다.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둘러싼 노사정 대표자 간 대립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조선>이 본문내용과 관계없는 [소통] 프레임의 제목을 많이 단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인터넷 뉴스 독자들이 기사 제목을 중심으로 소비하는 성향을 이용한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2014년 인터넷 기사 건당 평균 접속시간은 24초에 불과하다. 독자 대부분이 기사의 제목만 읽는다는 뜻이다. <조선>의 기사제목만 읽은 독자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개혁이 무난하게 진행된다고 오해할 우려가 크다.

<한겨레>의 [소통] 프레임에 따르면 이번 노사정 합의는 부당하다. 노동자가 과소대표되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노사정위원 총 10인 중 노동자 대표는 고작 1명인데다, 그 1명마저 전체 노동자의 5%에도 못 미치는 일부 정규직을 대표하는 한국노총의 위원장일 뿐임을 지적한다. 따라서 이번 노사정위원회는 자본-노동간 교섭력이 불균형을 이루어 ‘재벌개혁’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핵심논제를 다루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이번 합의를 정규직-비정규직, 청-장년간의 일자리 양극화를 완화하는 민주적 성과로 평가한 <조선>의 [소통] 프레임과는 정반대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제목이 프레임 설정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왜곡된 [소통] 프레임의 제목을 달아 ‘여론몰이’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제목과 본문의 프레임이 비교적 균일한 <한겨레>는 정보와 사실을 충실하게 전달하려 노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레임을 맹신하지 말라

조지 레이코프는 "모든 것들의 배후에 놓인 가치를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겉으로 볼 때는 객관적이고 진실되게 보이지만, 정치와 언론의 언어에는 발화자가 의도하는 가치관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노동개혁=청년고용 창출’이라는 [분배]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이에 야당은 ‘청년고용창출=재벌개혁’이라는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여당의 ‘정규직 과보호’를 반박하고 ‘재벌개혁’을 내세웠지만 큰 틀에서는 ‘청년고용’이라는 프레임을 차용함으로써 여당의 [분배] 프레임에 말려들었다. 프레임 대결에서 패배한 것이다. <한겨레> 또한 여당과 보수언론이 내세운 [분배][대립] 프레임으로 작성한 기사가 50%를 넘어서면서 야당과 유사한 실수를 했다.

청년고용창출은 중요하다. 노사정 협상과정을 사실 위주로 전달하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상대가 짜놓은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는 그 너머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정규직을 하향 평준화하는 노동개혁=청년고용창출’이라는 도식을 깨야 한다. 노동자가 과소 대표되는 현실, 합의를 깨면서까지 노동 시스템 변경을 추진하는 여당과 정부의 강압적인 태도를 비판한 <한겨레>의 [소통] 프레임은 적절했다. 아쉬운 점은 ‘청년고용창출’이라는 프레임에 말려들었다는 사실이다.

▲ 지난 9월 7일 미국 노동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노조가 없는 나라에서는 노동자들이 늘 착취당하고 보호받지 못한다"고 연설했다. ⓒ 노컷V

여당과 정부의 주장처럼 정규직은 ‘과보호’되고 있는가? 노사정위원회에서 대표되지도 못하는 나머지 1800만 노동자의 처우를 악화시키는 것은 정당한가? 정부와 여당,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분배][소통] 프레임은 허점이 많다. 프레임은 현실을 과장, 축소, 왜곡하므로 맹신은 금물이다. 프레임, 그 너머를 파헤쳐야 한다.


편집 : 박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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