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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조롱하는 보도가 정치 망친다
[사회교양특강]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주제 ① 인간과 정치
2015년 09월 29일 (화) 18:57:05 문중현 박주현 함규원 기자 20moontom@gmail.com

정치란 무엇인가? 흔히 권력을 둘러싼 암투, 갈등, 음모, 시기, 전략, 질투 등을 떠올리기 쉽다. 박상훈 후마니타스(출판사) 대표가 생각하는 모습은 달랐다. 그는 정치란 개개인이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공동체적 과업이라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라고 하면 누군가에게 강제력을 미치는 것 혹은 권력을 둘러싼 암투를 생각합니다. 사실 정치라는 말이 만들어진 데는 그것과 별 관계가 없습니다. 정치는 개개인이 좋은 삶을 살 가능성을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것입니다.”

   
▲ 박상훈 대표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에서 '인간과 정치'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서혜미

왜 옳음이 아니라 좋음인가

   
▲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치란 좋은 삶에 대한 관심이다. ©Flickr

정치라는 주제를 체계적으로 이론화한 최초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텥레스는 인간이 행복에 도달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치를 좋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정치란 좋은 삶에 대한 관심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왜 ‘옳음’이 아니라 ‘좋음’일까? 박 대표는 ‘옳은’ 정치보다 ‘좋은’ 정치를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은 형용사 가운데 뜨뜻미지근한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단어지요. 정치에서 윤리적 기준은 ‘좋음’이 되어야 합니다. 현실 정치에서 최선의 옳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옳음’은 옳거나 그르거나 하는 양극화한 기준뿐이지만, ‘좋음’은 조금 더 나은 것, 더 설득력 있는 것, 더 바람직한 것과 관련돼 있습니다.”

막스 베버는 근대국가를 정의하는 기준으로 ‘물리적 강제력’을 꼽았다. 강제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정치는 윤리적 기준으로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수단을 동반하게 된다. 개개인의 삶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는 복잡한 조건들 사이에서 일정한 기준을 적용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을 구현하는 활동이 정치다. 그래서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적용하기 힘들다. 박 대표는 ‘좋음’이라는 애매한 기준을 사용해 더 깊은 내용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이 정치의 매력이라 말한다.

미국과 유럽 여성은 왜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다를까

“정치에 무관심하면서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프랑스 수능시험 ‘바칼로레아’에 출제됐던 문제다. 현대사회는 고대 아테네처럼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의무를 지고 있지 않기에 정치에 무관심하고도 좋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박 대표는 개인의 삶과 정치공동체의 관계는 매우 가깝다고 설명한다.

그는 토머스 게이건의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에 나온 사례를 들며 개인의 행복에 정치가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의 젊은 남녀에게 누구와 결혼하고 싶은가 물었더니 대답이 달랐다. 미국 여성들은 배우자의 직업과 소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반면 유럽 여성들의 답은 키스를 잘하는 남자였다. 입을 맞췄을 때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으면 사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은 유머 있는 남자였고, 세 번째는 요리 잘하는 남자였다.

박 대표는 두 사회 여성이 매우 다른 태도를 보인 까닭을 정치에서 찾았다. 미국 사회는 제조업이 약하고 IT업과 금융업이 강해 사회통합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 사회는 공공 보험이 취약하기 때문에 대기업에 못 들어가면 보험 혜택을 받기 어렵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려면 보험을 제공할 만한 회사에 다니는지 주택대출을 갚을 수 있는지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차이가 타고난 건 아닐 거예요. 유럽은 하다못해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도 국가에서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해줍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결혼할 때 경제적인 조건을 따지는 대신 정말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정치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정치가 만들어내는 사회의 모양새 때문입니다. 정치에 따라 개개인의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민주정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

“인간의 활동에는 합리적으로 포착되지 않는 요소들이 있어요. 카리스마란 그 사람이 앞장서게 되면 집단에 이익이 될 것 같은 신뢰감을 갖게 만드는 힘 같은 거죠.”

   
▲ 마키아벨리는 정치의 불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를 정치의 신으로 표현했다. © Wikimedia

박 대표는 정치가가 활동하는 무대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곳임을 강조했다. 정치의 세계에 놓인 인간은 어느 순간 영웅이 되었다가도 다시 한 순간 사람들로부터 조롱받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운명의 여신을 의미하는 ‘포르투나(Fortuna)’를 정치의 신으로 표현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런 정치 영역의 중심에 논리적으로 규명하기 어려운 ‘카리스마’가 있다는 것이 정치학자 막스 베버의 통찰이다.

“정치란 대중과 정치가들 사이에 흐르는 상호작용의 어떤 분위기, 신뢰감, 그 조직 안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팀스피릿 같은 것에서 포착되는 세계라는 점을 꼭 알고 있어야 해요.”

박 대표는 그런 카리스마가 정치가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교육받은 사람들의 지식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집합적 지혜가 살아 숨 쉬는 것이 민주 정치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에겐 다른 그 무엇보다도 보통시민들을 한데 모아 변화를 이끌어내는 실천적 힘이 요청된다.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전제에 의해 정치 체제를 세운다면 진흙판에 집을 짓는 것이랑 뭐가 다를까 하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었어요.”

민중의 의견이 교환되는 과정은 시끄럽다. 정치 얘기를 하면 싸움이 난다고들 하는 것도 누구나 다 의견을 가질 수 있고, 자기 생각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플라톤이 그런 점에서 민주정을 비판했다고 말했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보았던 플라톤은 때로는 과도한 의견들이 정치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민주정 안에서 그나마 전쟁이 적었고, 경제 발전도 낳았고, 구성원의 평등과 평화를 낳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민주정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견이 존재할 수 있지만, 적어도 민주정 안에서 가장 의견이 잘 다뤄졌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에요.”

하지만 시끄럽고 다양한 의견은 민주 정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박 대표는 플라톤이 지적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정이, 누군가 답을 알고 있으며 목적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귀족정이나 군주정 등의 정치체제보다 재난적 결정이 덜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록 최선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민주정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한 민주정에서 좋은 정치가의 리더십이란 결국 민중의 의견을 한 덩어리로 잘 모을 수 있는 능력이 된다.

   
▲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는 일은 민주정치에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 Flickr

냉소와 조롱 대신 ‘변화의 정치학’을 익혀야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젠가 ‘좋은 사람이 좋은 정치가와 일치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의 답은 이상적인 정체에서라면 그럴 수 있겠으나 현실은 그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다시 ‘좋은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과 좋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정치가로서 좋은 역할을 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람의 좋음과는 무관하더라도 정치가로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 낫다고 답한다. 박 대표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일인 개인의 책무보다는 공동체를 잘 가꾸는 공동의 책무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가 인간됨이 나쁘더라도 실력이 있으면 좋은 의사라고 하지 않습니까? 정치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성이나 인품으로 모든 걸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 정치의 세계입니다. 정치의 세계에서 요청되는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충분히 묻고 판단하는 것이 우선인데, 우리나라 정치 기사들에는 이상하게 인성론이 너무 많습니다.”

박 대표는 상식화한 편견에 편승해 기사를 쓰는 잘못된 풍토를 지적했다. 대중에게 호소력 있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 가운데 하나는 지나친 특권을 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국회의원이 돈을 많이 받고 덜 받는 문제를 단순히 비판하는 것은 정치부 기자의 게으름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그는 정치는 돈을 버는 세계가 아니라 돈을 쓰는 세계라고 말한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위해 정치라는 세계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정치를 올바로 다루는 방법이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개혁이지, 국회의원 숫자 줄이고 정치가들이 공적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없애는 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거만 하면 돈이 많이 든다고 말하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치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경제에서 벌어들인 자원을 통해 사회를 좀 더 평등하고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돈을 쓰는 영역입니다.”

정치가가 추구하는 것은 이상적 최선이 아니라 현실적 최선이다. 그는 정치가를 비판하는 기준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적인 주장을 앞세워 하는 비판은 호소력이 없으며 정치에 대한 냉소와 조롱의 감정만을 불러일으킨다. 박 대표는 이런 정치부 기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의 세계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기에 직업적 소명을 저버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박 대표는 좋은 정치기사에는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여러 선택지를 다시 검토하고, 다른 가능성을 전망하는 ‘변화의 정치학’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더 좋은 삶과 더 좋은 사회를 꿈꾸게 하는, 즉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사다.

   
▲ 박상훈 대표는 정치에 대한 냉소와 조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사 대신 변화를 꿈꾸게 하는 정치 기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Flickr

정치란 가장 에로틱한 활동

좋은 정치에 대한 실천적 고민은 고대나 현대나 어느 시대든 늘 정치체제에 대한 핵심 담론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 예일대의 한 교수에 따르면 그런 지혜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고대 철학자들은 ‘에로스(Eros)’라고 불렀다. 박 교수는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주도적인 인간 활동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슴 뛰고 에로틱한 활동이라고 말했다.

“가장 아름다운 기사는 정치기사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빛나는 인간 정신을 드러내는 가장 에로틱한 활동이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조준상 박인수 홍기빈 김동춘 구갑우 전중환 박상훈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문중현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청년팀, 시사현안팀 문중현입니다.
수줍은 마음으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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