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정성수 기자

▲ 정성수 기자

“서로 간에 보유한 정보량에 큰 차이가 날 때 그 기업이나 산업이 효율성을 잃게 돼 시장의 실패가 일어난다.” 199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비크리와 미얼리즈가 전개한 ‘비대칭적 정보이론’의 내용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의 불균형은 비효율과 권력이동을 초래한다는 점을 잘 정리한 것이다. 정보는 산업사회의 자원과 달리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므로 처음에는 공유의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정보가 권력이라는 점을 알게 되자 지배세력은 정보를 독점하기 시작했다. 비대칭적 정보이론이 예견한 그대로였다. 오늘날에는 정보 격차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정보의 독점화 과정은 19세기 프랑스혁명 이후 대중의 탄생·몰락 과정과 비슷하다. 스웨덴 린셰핑 대학의 스테판 욘손 교수는 주권이 인민에게 전달되는 순간, 인민은 산수의 원칙에 따라 측정되는 추상적 단위, 즉 대중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대중의 힘으로 대의적 민주주의 체제가 도입됐지만 빈곤과 무지로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인민은 그저 ‘다수’로 전락해버린다는 것이다. 정보에 대한 접근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 같지만 정보격차가 존재한다. 1인 1표의 정치적 권한 역시 겉보기만 동등할 뿐 대중은 정치에서 소외된 존재다. 빈곤은 무지를, 무지는 빈곤을 낳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프랑스 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근대가 ‘군중의 시대’임을 알리며 “군중의 힘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위협받지 않고 그 위세가 계속 증가하는 유일한 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강력한 힘을 가진 대중은 지배세력에 의해 무력화했다. 지배세력들은 경제적 자유주의라는 시장논리를 대중들에게 침투시켰다. 대중은 점차 가난해졌고, 일부 소수만이 부를 축적했다. 경제적 양극화는 인민이란 계급을 깨고 나온 대중을 다시 경제적 계층으로 분화시켰다. ‘경제적 인민’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대중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선택은 교육이었다. 교육을 통해 신분 상승을 꾀하는 방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에는 교육은 일부 계층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농민과 여성들은 공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쇄술 등 기술의 발달로 책을 찍어내면서 교육에 대한 접근권이 높아졌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서면서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로 교육의 질이 경제적 형편에 따라 분화되었다. 다시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끊긴 상황에서 대중이 또 한번 일어설 기회가 찾아온 것이 인터넷의 등장이다. 인터넷에서 정보는 무료로 공유되었다.

▲ '온라인 대중'은 사회문제 일으키는 맹목적 대중에 머무를 것인가,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 flickr

네티즌이라고 불리는 ‘온라인 대중’은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됐다. 인터넷 상에서 의견이 모이면 여론이 된다. 그들의 활동공간은 가상공간(온라인)에만 그치지 않고 현실세계(오프라인)로 확장됐다. 전국적으로 수십만 시민이 거리로 나왔던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도 시작은 인터넷이었다. 최근 대한항공의 ‘땅콩리턴’ 사건도 온라인 대중이 기존 지배세력에 대항한 사건이라 볼 수 있다. 프랑스혁명 이후 참정권을 얻은 대중이 실제로 정치적 결정권을 상실한 다수가 되었듯이, 온라인 대중도 지배세력의 끊임없는 공격과 회유를 받고 있다.

대중에 대한 지배세력의 공격과 회유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파시즘의 광기를 만들어낸 자양분은 파시스트에 의해 동요한 ‘맹목적 대중’이었다. 하지만 그 광기를 끝장낸 것도 ‘각성한 대중’이었다. 오늘날 대중은 ‘일베’가 되기도 하고, 공유와 소통에 기반한 ‘집단지성’이 되기도 한다. 대중은 이처럼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대중의 속성에 대해 독일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라는 비극에 대한 책임은 국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견제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대중으로서 시민들에게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의 책임은 개인환원론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역할을 다하는 개인들의 집합체를 촉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1인 1표라는 참정권은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다. 4, 5년마다 열리는 선거는 민의를 제때 반영하지 못한다. 선거공약은 국민들을 현혹하고 결국 민의를 배신한다. 대중은 다수로만 존재하고 세상을 지배하는 힘은 소수인 지배세력이 쥐고 있다. 온라인 대중의 정치 참여는 시공간적 제약이 없다. 올바른 방향으로 대중의 힘을 모을 수만 있다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지배세력에 대항할 수 있다. 온라인에 기반한 인터넷의 설립취지였던 정보의 공유와 소통이라는 가치가 실현되어 국민 간 정보격차가 줄어든다면 경제적 양극화도 완화할 수 있다. 대중은 잃어버렸던 힘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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