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우는 방’으로 감독 데뷔한 배우 김예나

“우연히 중국 베이징에 ‘우는 방’이란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방문하며 어떤 이유로 우는 것인가 등에 대해 머릿속에 떠올리기 시작했고, 2013년 봄부터 이걸 영화로 표현하겠다고 결심했죠.”

지난 5월 21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종로3가 피카디리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인디포럼 독립영화제2015에서 20분짜리 단편영화 <우는 방>으로 감독 데뷔한 배우 김예나(28)씨의 말이다. 다큐와 극영화 등 75편의 사회성 짙은 작품들이 영화제를 통해 선보인 가운데 ‘슬프다면 충분히 슬퍼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김 감독의 작품도 관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았다.  지난 5월 28일 피카디리 롯데시네마 부근의 카페에이치에서 <단비뉴스>와 만난 김 감독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 혹은 표현하고픈 욕구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기 위해’ 영화 연출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 2015년 제20주년 인디포럼 영화제 포스터. ⓒ인디포럼

김기덕 영화의 여주인공에서 초짜 감독으로 변신

베이징의 우는 방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된 뒤 ‘운명처럼’ 영화제작을 결심했다는 김 감독은 그러나 준비 단계에 들어선 이후 많은 어려움에 부닥쳤다고 한다. 제작비 마련, 배우 섭외, 장소 협조 등 어느 하나도 쉽지 않았다. 포스트 프로덕션(후반작업)을 제외한 제작비만 700만 원이 들어갔고, 배우들의 행위예술 안무, ‘우는 방’으로 사용된 컨테이너 디자인 등은 자신이 직접 했다. 영화 일을 같이 했던 배우들을 섭외하고 함께 작업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으나 촬영 등 제작을 지원하는 스탭들과의 소통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 영화제 폐막식을 앞두고 <단비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예나 감독. ⓒ 정교진

“배우들의 역할과 입장을 이해하는 것만큼 스탭들의 역할과 입장을 완벽히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들 영화가 마무리 될 때까지 한마디 불만도 말하지 않았어요. 덕분에 성공적으로 영화를 마무리 했으니 감사한 일이죠.”

김 감독은 동덕여대 무용학과 시절 같은 과 친구의 추천으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공식적인 첫 작품은 코미디 장르의 독립영화 <텐트안에서>인데, 주연인 ‘세실’ 역을 맡았다. 이 영화를 디딤돌로 전재홍 감독의 <풍산개>에 단역인 북한여성으로 출연했고, 여기서 독립영화계의 거장 김기덕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 <아멘>의 주연배우로 캐스팅됐다. 이밖에 독립영화 <하얀색은 더럽다>, <십이야 : 깊고 붉은 열두 개의 밤 Chapter 1>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실컷 눈물 흘린 뒤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방

그가 감독으로서 만든 영화 <우는 방>은 현재의 삶에 대해 지쳐있는 사람,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진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 경제력이 없는 사람 등이 우는 방을 찾는 과정과 여기서 목 놓아 우는 모습을 담았다. 각자 우는 방에서 마음껏 눈물을 흘린 이들은 나중에 한 곳에 모여 팔다리를 흔들고 뛰어오르는 등 ‘치유의 동작’을 함께 한다. 충분히 울고 치유의 과정을 밟은 사람들은 삶을 변화시킬 용기를 찾는다. 김 감독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데이비드 케슬러와 함께 쓴 책 <상실수업>에서 한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도를 설명했다.

▲ 지하철역에서 노숙을 하는 중년남성이 우는 방을 찾았다. ⓒ 영화<우는 방> 화면 갈무리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라. 눈물이 전부 빠져 나오게 두라. 그러면 스스로 멈출 것이다.”

김 감독은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거 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표현하는 것이 인간답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며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이 충분히 눈물을 흘릴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여성이 우는 방에서 목 놓아 울고 있다. ⓒ 영화<우는 방> 화면 갈무리

김 감독은 원래 이 작품을 장편으로 제작하려다 중간에 단편을 먼저 편집하기로 하고 <우는 방>을 발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는 방에서 일어나는 남녀 간의 이야기까지 포함한 장편은 <판도라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내년 중 개봉할 예정이다. 장편에는 <우는 방>에서 생략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상세하게 담겨, 관객들이 이해하기 좀 더 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배우 김예나는 연기에 대한 열정도 여전했다.

“영화라는 작업 자체를 좋아해요. 분명 배우와 감독이 하는 일은 다르지만 저에게 있어 배우와 감독은 둘 다 너무 즐거운 일이에요. 앞으로도 배우와 감독간의 경계를 허물없이 오가며 영화 일을 즐길 생각입니다.”

▲ 충분한 눈물을 흘리고 삶의 의욕을 찾은 사람들이 마음껏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 영화<우는 방>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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