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선물’

▲ 이청초 기자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에 스승의날까지 끼어 모두들 선물을 고르느라 분주하다. 연인이 있다면 거의 일년 내내 선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생일 챙기기도 벅찬데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를 비롯해 매월 14일이 되면 생소한 ‘데이(day)’가 등장한다. 만나온 날짜 수까지 챙기며 선물을 주고받는 연인들도 많다. 그럴 때마다 부담은 되지만 기대 또한 작지 않으리라.

선물을 생각해본다. 종이학은 구시대 유물이다. 꽃 선물은 한두 번으로 족하다. 곰돌이 인형은 나이든 연인에게는 주저된다. 구체적인 건 상대방이 결정하겠지만 지난번 내가 한 선물이 10만 원 정도니 나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선물이 올 거라 기대해 본다. 기왕이면 친구들 앞에서 자랑할 만하고, 실생활에도 유용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보드리야르는 산업자본의 음모를 끊임없이 파헤친 철학자다. 그는 산업자본이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생각했다. 산업자본이 소비의 논리로 사용가치(기능적 논리), 교환가치(거래의 논리), 기호가치(차이의 논리)라는 덫을 놓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꽃 선물은 사용가치 면에서 효용이 매우 짧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니 어쩌랴. 주고받은 선물의 화폐가치가 대등하길 바라는 점은 교환가치, 곧 거래의 논리가 작동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선물보다 뇌물에 가깝다. 친구들 앞에서 내 위신을 찾는 행위에는 기호가치가 담겨있다. 선물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는 차이의 논리가 엿보인다.

▲ 우리는 보드리야르가 말한 욕망과 목적이 배제된 ‘완전한 의미의 선물’을 주고받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 picjumbo

보드리야르는 선물이 완전한 의미를 가지려면, 기호가치, 교환가치, 사용가치라는 산업자본의 논리를 넘어서서 ‘상징적 가치’의 세계로 이행해야 한다고 했다. 선물은 두 사람의 마음이나 관계를 확인하는 정도에 그쳐야 하고, ‘불가능한 교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상품권이나 다이아몬드를 선물로 줄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선물로 받은 상품권이나 다이아몬드를 다른 어떤 것으로 교환하거나 자신의 위세를 자랑하는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진정한 선물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보드리야르가 말한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축의금·찬조금·부의금 등이 일상적으로 오가고, 청렴해야 할 공공기관의 공적 업무에도 향응·접대·금품제공 등이 관행으로 굳어져 왔다. ‘떡값’에서 ‘벤츠’까지 선물이 오갔는데, 그 속에는 자신의 명예나 지위도 교환할 수 있다는 인식이 교묘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등을 금지하는 ‘김영란법’의 등장은 그간 우리 사회가 산업자본주의 논리를 충실히 수행했다는 반증인 동시에 그에 대한 반성이다.

김영란법은 공공분야 종사자의 부정부패를 청산해 투명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데만 도움을 주는 게 아니다. 특정 직위가 ‘교환 상품’이 되지 않게 만들어 산업자본 논리까지 벗어나보려는 시도가 담겨있다. 김영란법은 선물 자체의 ‘상징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선물에 가격 한도를 정하고, 직무 연관성이나 대가성이 없어도 100만원 이상 금품 수수나 향응 등은 처벌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는 일정 금액 이상 선물에는 ‘교환가치’가 담길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음을 말해준다. 뇌물거래가 관행이 될 만큼 산업자본의 논리를 맹신해오던 터라 하루아침에 바뀔 리 만무하니 현실적 선택을 한 것이다.

우리가 과연 보드리야르가 말한 것처럼 욕망과 목적이 배제된 ‘완전한 의미의 선물’을 주고받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멀고 어려운 길이지만 김영란법은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검찰권 남용 우려, 평등권 침해 등 논란은 많지만, 김영란법이 안착한다면 대가성 없는 선물도 받지 않는, 산업자본이 내민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진짜 ‘선물의 시대’가 열릴 것 같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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