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서울·제주 집중 벗어나 제천 등 전국 확산

지난달 10일 오후 2시 충북 제천시 용두동 주민센터 주차장. 주민센터의 박연대(48) 시민복지팀장이 연녹색 기아차 레이 이브이(Ray EV)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 옆의 동그란 버튼을 눌렀다. 일반 차와 달리 ‘부르릉’ 소리가 전혀 없이 조용하게 시동이 걸리고, 가속기를 밟자 차체가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주민센터에서 하소동의 제천종합사회복지관까지 가는 도중 좁은 골목을 지날 때는 보행자들이 차가 다가가는 것을 알아채지 못해 가볍게 경적을 울려야 했다. 반면 4차선 도로에서 시속 60킬로미터(km) 정도로 달릴 때는 가솔린(휘발유)이나 디젤(경유) 차와 다름없는 속도감,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고 크기가 비슷한 디젤 경차에 비해 승차감은 더 좋았다. 

▲ 주민센터에 보급된 전기차 레이가 하소동의 종합사회복지관 앞을 지나가고 있다. 차체에 진동이 적어 승차감이 좋다. ⓒ 김민지

독거노인 지원 등 복지 용도로 제천시 4대 운행

“용두동이 제천에서 복지급여 수급자 수가 가장 많아 업무비중이 높은 곳인데, 레이(전기차)가 들어오고 나서 업무효율이 높아지고 직원들 복리도 좋아졌습니다. 이전에 타고 다니던 1.5톤(t) 화물차보다 좁은 도로를 다니거나 골목 안쪽에 있는 가정을 찾아다니기에 적합하고, 운전이 서툰 직원들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거든요.”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전기 저장장치로도 쓰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기후변화시대의 ‘기대주’로 부상하고 있는 전기차. 그동안 충전시설 등 인프라(기반시설) 부족으로 서울과 제주 등에서만 주로 보급이 돼 왔던 전기차가 지난해부터 제천 등 각 지방으로 본격 확산되고 있다. 제천시의 경우 지난해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지원을 받아 기아자동차의 레이 이브이(Ray EV) 차량을 2대 구입한 데 이어 올해 2대를 추가해 사회복지 업무용으로 쓰고 있다. 현재 용두동, 송학면, 봉양읍에 각 1대씩 배치했고 나머지 1대는 시청에서 활용한다. 독거노인 가정에 쌀을 배달하거나 사회복지사들이 방문요양, 상담업무 등을 위해 움직일 때 발이 돼 준다. 

전기차를 쓰는 주민센터 등은 기름값의 약 10분의 1 정도 전기료 외엔 연료비가 들지 않아 예산상으로도 장점이 크다고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제천시 사회복지과 이제봉 통합관리팀장은 “시에서 매년 조금씩 전기차를 추가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엔진)이 없기 때문에 휘발유 등 화석연료를 태울 때 생기는 이산화탄소 등 지구온난화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특히 태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전기차를 충전한다면 기후변화 방지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 또 전기차가 장착한 리튬이온 배터리는 유휴전기를 저장했다가 수요가 높은 시간대에 전력망에 제공하는 전기저장장치(ESS)가 될 수 있어, 장차 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가 본격 가동되면 신재생에너지시대를 가속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은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은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제28회 세계 전기자동차 학술대회 및 전시회에서 “2020년까지 전기차가 세계 자동차 시장의 10%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 앤 설리번’에 따르면 같은 기간 세계 자동차판매 규모는 연간 1억 대로 커질 전망인데, 이 중 1000만 대를 전기차가 차지하게 된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는 2009년부터 산자부와 환경부가 전기차 산업을 본격 지원했는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 총 3044대가 보급됐고 올해 3090대를 추가 보급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전기차 총보급량을 1만 6000대까지 늘릴 예정이다. 지난해까지 국내 보급된 전기차 중 3분의 2 이상은 서울(1459대)과 제주(852대)에 몰려 있다. 

환경보호 등 장점 많지만 주행거리 짧고 충전 불편 

국내에서 전기차 보급이 아직 활발하지 못한 것은 한 번 충전으로 운행할 수 있는 거리가 짧은 것 등 불편한 점이 꽤 있기 때문이다. 레이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가 완전히 충전된 상태에서 주행할 수 있는 거리가 100km 남짓이다. 그래서 왕복 거리까지 고려하면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차가 멈춰 설까 봐 불안하다는 게 사용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현재 국내 기업이 생산한 순수전기차 중 주행거리가 가장 긴 차량은 기아자동차 쏘울EV로, 한 번 충전에 148km를 갈 수 있다. 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인 닛산 리프(Leaf)는 한 번에 178km를 달린다. 차량 배터리 충전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단점이다. 용두동 주민센터 정인현 주무관은 “한 번 충전하는데 3~5시간씩 걸려 급할 때 충전이 돼 있지 않으면 차량을 못 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차량 충전도 주민센터 내에 있는 전력 충전기로만 할 수 있다. 

▲ 박연대 팀장이 전력충전기 앞에서 전기차 충전 시범을 보이고 있다. ⓒ 김선기

우리 정부는 우선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전기차를 보급한 뒤 이를 대중교통, 렌터카, 민간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산자부가 지난해 1월 발표한 '공공기관 에너지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 개정 고시안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올해부터 차량의 25%를 전기차로 구매해야 한다. 전기차와 충전기 구매를 희망하는 공공기관은 환경부에서 전기차 구매 보조금 1500만 원과 개인충전시설 설치비 6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유럽에서는 전기차 보급을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 전기차 이용자에 대해 유료도로 통행료 등을 면제하고 공영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하게 한다. 전기차는 버스전용차로에도 진입할 수 있다. 인구가 500만여 명인 노르웨이는 2018년까지 전기차 누적 보급대수 5만 대를 목표로 삼았으나 이를 올해 중으로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개인도 정부 지원 받아 구매 가능 

전기차 구매를 희망하는 개인도 매우 제한된 규모이긴 하지만 지자체를 통해 구매보조금과 완속 충전기 설치를 지원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광주시의 경우 오는 24일까지 신청을 받아 100대를 보급할 예정이다. 광주시는 정부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을 합해 1대 당 1800만 원의 구매보조금을 지원하며 600만 원 이내의 완속 충전기 설치비용도 준다. 신청자는 충전기 설치를 위한 전용 주차장을 확보해야 하며(임차 가능), 공동주택에 설치를 희망할 경우 관리사무소에서 미리 동의를 얻어야 한다. 가정에서 완속 충전기를 사용할 경우 전기차 충전용 별도 계량기를 설치하고 1킬로와트시(㎾h)당 100원 정도인 '전기차 전용요금제'를 신청할 수 있다. 

전기차 이용자는 가정에 설치되는 완속 충전기 외에 비상용 공공급속충전기도 사용할 수 있다. 주요 공공건물, 공영주차장, 대형할인점(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과 관광지 등에 설치돼 있는데 충전 인프라 정보시스템(http://www.ev.or.kr)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카드를 받아 이용하면 된다. 공공급속충전시설은 현재 전국에 237기가 있으며 정부는 2017년 100기, 2020년 200기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현재는 무료로 이용 가능하지만 올해 하반기 중 유료로 전환될 예정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전기차 100만대를 보급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지만 보조금이 없으면 동급 승용차보다 2200만~2700만원 가량 비싼 가격, 제한된 충전시설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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