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의 산수유꽃 축제

지난 5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산수유마을에는 부슬부슬 봄비가 내렸다. 봄 가뭄 끝에 찾아온 단비를 맞고 연노랑 산수유 꽃잎도 물기를 머금었다. 3일부터 시작된 ‘이천백사 산수유꽃 축제’의 마지막 날인 이날,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알록달록 우산을 펼쳐 들고 흐드러진 꽃과 다채로운 체험프로그램, 색다른 먹거리 등을 만끽했다. 백사면의 도립리, 경사리, 송마리 등을 아우르는 산수유마을은 올해로 16회를 맞는 이 축제를 위해 풍년기원제, 육현(六賢)추모제, 농악공연 등 풍성한 볼거리를 준비했다.

▲ 이천 백사 산수유축제 전경. 산수유꽃은 마을을 노랗게 물들이며, 어느새 봄이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다. ⓒ 김선기

축제는 이천산수유농악단이 길놀이에 이어 시춘목(始春木)앞에서 풍년기원제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시춘목은 기묘사화(1519) 때 낙향한 6명의 선비, 즉 육현(六賢)이 자신들이 심은 산수유나무에 붙인 이름이다. 봄에는 노란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향기 나는 잎을 돋우며, 가을에는 자수정 같은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마디마디 눈꽃을 선보이는 산수유의 고마움을 잊지 말라는 의미라고 한다.

여섯 문중이 함께 이어가는 육현 추모제

5일 오전 11시가 되자 산수유마을 한가운데, 도립1리에 자리한 사당(祠堂)에 옥색의 전통 제례복을 입은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이 사당은 조선 중종 14년 기묘사화 때 난을 피해 내려온 남당 엄용순이 세운 육괴정(六塊亭)이다. 엄용순과 함께 김안국, 강은, 오경, 임내신, 성담령 등 6명의 선비가 정자 앞에 각각 느티나무 한 그루씩을 심었다고 해서 육괴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들이 느티나무와 함께 심은 산수유나무는 훗날 마을 전체로 퍼져나갔다. 육괴정은 처음 지어질 당시엔 작은 초가 수준이었으나 1986년 이천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면서 증축을 거쳐 지금은 번듯한 사당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여섯 선비의 후손들은 백사면에 터를 잡고 교류를 이어간 선조들을 기리며 매년 추모제를 지낸다. 이를 위해 여섯 문중이 육성회(六姓會)라는 단체를 만들어 성금도 모으고 제례 준비도 함께 한다. 처음에는 각 문중이 돌아가면서 한식(4월 5일 즈음, 성묘를 하는 절기) 무렵에 제례를 지냈지만 산수유축제가 시작되면서 이 기간 동안 육괴정에서 함께 추모제를 올리는 것으로 뜻을 모았다. 12년째 추모제를 주도하고 있는 엄을용(85‧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육성회장은 “추모제도 축제행사 중 하나로 인정받아 지원도 갈수록 많이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례가 시작되자 각 문중 대표가 한 명 씩 앞으로 나와 술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엄숙하게 술잔과 명태포를 올리는 동안 20여명의 후손들은 진지하게 주시했다. 40여분에 걸친 추모제는 참석자들이 모두 큰 절을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행사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각자 조상에게 올린 술을 나눠 음복하며 서로의 수고를 치하했다. 육성회 총무를 맡고 있는 오정재(58‧이천시 증포동)씨의 아내 박상수(57))씨는 “사는 곳이 다르고 본가도 다르지만 1년에 한 번 큰 행사를 하면서 형제처럼 만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참석자의 4분의 1 정도는 서울 등 외지에서 일부러 내려왔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관광객 10여명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추모제를 지켜봤다.

▲ 40여분에 걸친 육현 추모제는 참석자들이 모두 큰 절을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 배지열

화폭에 풍경 담고 ‘빨간 술’도 마시고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나 연인과 함께 휴일 나들이를 온 관광객들은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꽃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이정연(55)·최정란(55)씨 부부는 “산수유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그 자체로도 무척 아름다운데 비까지 내려 운치가 있다”며 “다른 유명 꽃 축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에서 왔다는 최연경(38·여)씨는 “몇 년 만에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왔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온 것만으로도 좋은데 이렇게 노란 산수유꽃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정말 즐겁다”고 말했다.

▲ 산수유꽃과 흙집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취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노영옥(56)씨. ⓒ 이문예

한적한 곳에 자리를 펴고 그림을 그리는 나들이객도 많았다. 풍경화를 그리던 노영옥(56·여·서울 수유동)씨는 “아침 9시부터 그렸는데 벌써 점심때가 됐다”며 산수유꽃과 흙집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미소를 지었다. 노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사생을 다니는데 이번 주는 풍경이 좋을 것 같아 이천에 왔다“고 말했다.

산수유꽃 축제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먹거리로도 사람들의 오감을 즐겁게 했다. 전통놀이, 장작패기, 소원리본달기 같은 체험장에는 아이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산수유로 만든 빵, 한과, 막걸리 등 색다른 음식들도 인기를 모았다. 필리핀 블라칸에서 왔다는 이주노동자 크루즈(38)씨는 “쉬는 날에 친구들과 함께 꽃도 구경하고, 환상적인 빨간색 술(산수유막걸리)까지 마셨다”며 “흥겹게 놀고 나니 필리핀 집이 그리워진다”고 말했다.

 

▲ 4월 첫 주말에 열린 이천 산수유꽃 축제에는 가족단위 나들이객과 등산객들이 주를 이뤘다. 한 가족이 산수유꽃 아래 돌담길에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고 있다. ⓒ 김선기
▲ 가랑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주말나들이를 나온 관광객들은 산수유꽃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으며 휴일을 보내고 있다. ⓒ 김민지
▲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은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은 띠를 산수유나무에 걸었다. ⓒ 김민지
▲ 산수유축제에서는 관광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있었다. 한 시민의 도끼질에 관광객들이 즐거워하며 구경하고 있다. 장작패기 행사는 백사면 이장단이 진행했다. ⓒ 김선기
▲ 산수유 꽃 축제에서는 산수유와 황기를 빚어 만든 막걸리를 판매한다. 빨간색 막걸리는 산수유(오른쪽), 노란색 막걸리는 황기(왼쪽)로 만들었다. 가격은 1병에 3,000원 ⓒ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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