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박채린 기자

▲ 박채린 기자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고 있는데 삼성의 휴대폰 광고가 나왔다. 문득 <노예 12년>의 최우수상 수상에 박수를 치는 객석의 사람들에게 눈길이 갔다. 저들은 삼성 휴대폰을 만드는 한국에서 여전히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논란’중이라는 사실을 알까?

영화 <노예 12년>은 실화를 바탕으로 죽음을 ‘자비’로 여길 만큼 끔찍했던 흑인 노예들의 처절한 삶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주인공 노섭이 나무에 목 매달린 채 까치발로 서 간신히 숨을 붙들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도와줄 수 없던 안타까운 장면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편집을 최소화하고 롱테이크로 처리한 기법도 좋았다. <노예 12년>을 보며사람들은 흑인노예제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반인권적인 역사라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영화 속의 ‘흑인노예’의 모습을 보며 일본군 성노예를 떠올렸다. 우리나라에선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여전히 논란거리다. 사람들이 일본군 성노예의 고통이 흑인노예보다 가볍다고 생각해서 일까? 성노예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을 비판하고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수요 집회가 22년 째 열리고 있지만, 정부나 정치인들에게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부산·경남 지역의 유일한 위안부 역사관이 최근 폐관 위기에 처했고, 교학사 교과서는 ‘위안부가 일본군 부대를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술된 상태로 정부의 검정을 통과하기도 했다. 역사관은 뒤늦게 부산시가 운영비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고, 교과서도 수정됐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다.

할머니들에게 상처 주는 행동은 반복돼 왔다. 잘못된 역사는 한 번도 반성되지 않았다. 196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일협정 체결당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보상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2011년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일본국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국민권리 보호에 대한 정부의 헌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작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2005년에는 지만원이 ‘위안부 가짜설’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수요 집회에 참여한 할머니를 향해 진짜 위안부라면 ‘건강이 너무 상해 거동이 불편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한일협정이 체결된 1965년, 지만원의 망언이 나온 2005년 그리고 현재, 더 나아진 건 없다.

<노예 12년>에 제작자이자 배우로 참여한 브래드 피트는 “역사를 알아야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며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런 고민을 던지는 영화가 한국에서도 준비 중이다. 위안부 할머니에게 바치는 영화 <수요일>(가제)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6일 영화사 '가우자리'는 제작비 모금을 위해 '국민제작위원회'를 발족, 전국 토크콘서트를 시작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모금은 현재 전체 목표액 20억의 1%인 2천만원이 모였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이 모인다면 <수요일>도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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