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학교폭력 대책 ③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

“그냥 친절하게만 대해주세요. 인성지도는 집에서 하고, 공부는 학원에서 하니까요. 우리 애 스트레스만 안 받게 해주시면 돼요.”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정미경(37·여·가명)교사는 지난해 말 퇴근 후 밤 10시 쯤 한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날 낮에 교실에서 심한 욕설을 하며 싸우는 것을 보고 주의를 줬던 두 학생 중 한 명의 어머니였다. 정 교사는 당시 통화가 “한마디로 ‘담임선생이 뭔데 그렇게 설치냐’는 것이었다”며 “몹시 불쾌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잘못 대꾸하면 다음날 교장실로 전화하거나 교육청에 민원이라도 넣을 기세였던 그 학부모는 “학교에는 바라는 것이 없다”는 말을 거듭했다고 한다.

▲ 이른 아침, 고등학생들이 줄지어 등교하고 있다. 정미경(가명) 교사는 "학생이든 학부모든 이제 더이상 학교 교육에 기대하는 점이 없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 조수진

학부모도 학교폭력 예방교육에 포함시켜야

문제가 있는 교우관계 등을 교사가 적극 지도하려 할 때 일부 ‘극성 학부모’의 개입은 교사를 위축시킨다. 사고를 일으킨 자기 자녀를 꾸짖는 대신 ‘반을 바꿔달라’는 등 비상식적인 요구를 하는 학부모도 있는데, 교사들은 시끄러운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런 요구를 그냥 수용하기도 한다. 정 교사는 “인성교육이나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시도하려 해도 ‘그런 거 하다가 우리 애 성적 떨어지면 선생님이 책임질거냐’고 전화하는 학부모가 있다”며 “따돌림이나 폭력 사건이 생기면 교사의 책임을 물으면서, 뭔가 해보려 하면 간섭하는 학부모가 늘어나는 추세여서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와 관련, 학교폭력 예방교육 대상에 학부모를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학교폭력 예방과 치료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공익법인인 푸른나무청예단 화해분쟁조정센터의 최희영 팀장은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법적 소송이나 사후 처리가 학부모 주도 하에 이뤄지는 학교폭력의 특성상 학부모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며 “학교생활과 교우관계 등에 관해 자녀와 대화하는 법 등을 배울 수 있게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널리 보급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일부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예방교육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UCC제작, 역할극 등의 방법을 제안한다. ⓒ 문화체육관광부

학생들에 대해서는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폭력예방 교육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 팀장은 ”뮤지컬, 역할극, UCC(사용자제작물) 등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교육을 구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역할극의 경우 가해자, 피해자, 조력자, 방관자 등의 역할을 학생들끼리 재연하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때리는 애든, 맞는 애든 선생님이 관심 가져주는 걸 싫어 할 아이들은 없어요.”

청소년 전문상담사 자격을 얻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대구의 한 중학교 지승연(33·여·가명)교사는 폭력예방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관심과 애정’이라고 지적했다. 지 교사는 그동안 만났던 폭력 가해학생 등 ‘문제아’의 대부분이 가정불화의 희생자였다며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학생일수록 교사의 작은 관심으로 크게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피해자가족협의회의 조정실 회장도 “아이들 세계를 조금만 알아도 지금처럼 (눈길을 끌지 못하는)비디오를 틀어주거나 뒤에서 친구들이 걷어오게 하는 학교폭력 실태 설문조사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교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피해를 조기 발견하고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학생 자녀를 둔 정인순(45)씨는 “학교폭력 예방은 (어른들의) 관심과 애정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며 “경찰이 학교폭력 가해 학생들의 멘토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꼭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문제 학생에게 관심을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 대부분의 교사와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점으로 인성교육을 꼽았다. ⓒ KBS뉴스 화면 갈무리

근본 대책은 인성과 인권교육에 있어 

보다 근본적인 학교폭력 대책은 ‘입시 중심 교육’에서 ‘인성과 인권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시민단체인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의 송문용 운영본부장은 “학교폭력은 또래간 경쟁과 이기심을 부추기는 입시 위주의 현 교육제도와 무관하지 않다”며 “배려와 우애를 가르치는 인성교육이 학교만이 아닌 가정, 사회, 국가 전반에 걸쳐 널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건국대학교 박종효(교육학과) 교수는 “집단 문화로서 자리잡고 있는 따돌림 같은 유형의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중심이 돼서 학생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이해하는 친사회적 성향을 갖도록 학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초·중·고등학교 교실 안팎에서 벌어지는 주먹질과 집단따돌림 등 학교폭력은 아이들의 영혼에까지 상처를 내고 때로는 탈선이나 자살 등의 비극으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일찍부터 입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대다수 교육현장에서는 인성과 인권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교육당국의 대책도 실효성 없이 겉돌고 있다. 아이들이 폭력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담았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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