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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예사 실무경력 위해 허드렛일 감수
청년인턴의 현실 ① 돈도 경험도 못 얻는 일
2014년 01월 20일 (월) 10:25:34 김혜영 박채린 기자 firstjournal@naver.com

극심한 취업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장차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인턴경험을 쌓는 일은 필수적인 진로준비과정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절박한 처지를 이용, 제대로 된 직무교육이나 보수도 없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기업과 기관도 적지 않다. 취업지망생들을 울리는 인턴 운용의 현실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했다.(편집자)

한 지방대 예술관련 학과 졸업반인 김은성(23․가명)씨는 예술작품 수집과 기획 등을 담당하는 학예사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지난해 지방의 한 사립미술관 인턴모집에 지원했다. 김씨가 희망하는 3급 정학예사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인정하는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실무경력 2년(전일제근무) 혹은 4000시간(시간제근무)의 조건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인턴을 하면서 미술관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안고 출근했던 김씨는 그러나 첫날부터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 업무 대신 강아지 배설물과 쓰레기 치우기
 
“(미술관 고유업무 대신) 화장실 청소, 미술관 강아지 배설물 치우기,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저한테 시키셨어요.  실무경력을 쌓아야 하니까 이런 일을 겪고도 아무 말도 못했죠.”
 
해당 미술관은 채용공고에 '중식 제공'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김씨는 도시락을 싸가거나 점심을 굶기도 했다. 인턴 보수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에 교통비 포함 월 10만원에 불과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청소년교육 보조요원으로 투입됐지만 별도의 보수는 없었다.

   
▲ 학예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미술관, 박물관에서의 실무경력을 갖춰야 하지만 내실있는 인턴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 김혜영

학예사 업무와 관련해 딱히 배우는 것도 없고 부당한 처우도 적지 않아 불만이었지만 김씨는 3개월 동안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했다. 어쨌든 서류상 인정받을 수 있는 실무경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허드렛일만 하고 보수도 제대로 못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의 성화로 김씨는 미술관을 그만 두었다. 김씨는 “사실 보수가 적어도 전시기획이나 작품 관리 등 실무를 배울 기회만 있었다면 열심히 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취업을 위해 실무경력이 필요한 지원자들의 처지를 이용해 인턴을 ‘무급자원봉사’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무급자원봉사자를 뽑으면서 ‘관련학과의 석사학위 이상 취득자, 학사학위 취득 이후 관련 분야 2년 6개월 이상 경력자’등을 자격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태년 민주당 의원이 문체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일반 자원봉사자와 전시해설 자원봉사자로 274명을 활용했고 현대미술관 143명, 국립민속박물관 99명, 대한민국역사박물관도 49명을 자원봉사자로 썼다. 상수도관련 기술을 전시하는 성동구의 서울수도박물관은 인턴을 모집하면서 ‘하루 교통비 3천원 이내, 급식비 5000원 이내’라는 서울시 자원봉사자 경비지급규정에 맞춰 일당 8천원을 지급한다고 공고하기도 했다. 

   
▲ 사상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청년 고용률을 반영하듯 채용공고에 쏠리는 관심이 뜨겁다. 취업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열악한 조건을 무릅쓰고 인턴 경험을 쌓으려는 청년들도 늘어나고 있다. ⓒ KBS 화면 갈무리

학예사 자격증 지원자는 매년 600여명인데, 2013년의 경우 1~3급정학예사와 준학예사 포함 630여명이 지원해 400여명이 합격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실무경험’을 채우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이런 식의 저임금 인턴이나 무급자원봉사를 감수하는 것이다.

교육프로그램 갖추고 처우 현실화해야

학예사 준비생 등 2만3천여 명의 회원이 모이는 네이버카페 ‘큐레이터 세상’에는 ‘인턴 착취’를 성토하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급여라곤 중식제공, 무료전시관람권, 무료주차, 상해보험밖에 없는데 무급 인턴이 차를 갖고 다닐 수 있을까요?” 등 비현실적인 처우를 성토하는 의견이 많다. 학예사 지망생들은 박물관, 미술관들이 인턴 프로그램을 내실 있게 운영하도록 문체부가 좀 더 체계적으로 실무경력인정대상기관을 선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전국의 박물관, 미술관 중 구체적인 인턴 교육프로그램을 갖춘 곳은 국립중앙박물관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 박물관의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인턴.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 수원박물관 홈페이지

최근 인턴 채용공고를 낸 대구의 한 박물관 관계자는 “6개월 정도의 단기 인턴이기 때문에 어린이 도서실이나 체험실 등의 관리를 맡기게 될 것”이라며 “전반적인 학예 업무를 맡기기엔 (경험 부족 등) 애로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현장교육을 통해 학예사로서의 실무를 익힐 기회를 주기보다 박물관의 일손을 덜어줄 단순인력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지낸 정준모 전 덕수궁미술관장은 “(관련기관들이) 학예 업무에 대해 전반적으로 무지하고 인턴을 가르칠 제도와 인력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런 지적은 당국도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다. 학예사 인턴 제도를 담당하는 문체부 박물관정책과의 배영일 학예연구사는 “인턴프로그램에 내실을 기하기 위해 우선 시립 박물관을 대상으로 평가인증제를 도입하고 실무경력기간을 단축하는 방안 등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체부는 한국박물관협회와 공동으로 20일 학예사 실무경력과 학력 요건의 합리적 조정 등을 위한 공청회를 연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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