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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 이런 도서관이 있을까
[농촌불패] 홍성군 갓골 ‘밝맑도서관’
2013년 09월 20일 (금) 15:17:28 장경혜 박정헌 기자 jang_gaeng@hotmail.com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공부한다’는 고사성어 ‘주경야독’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오자서는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자 오나라로 도망가 임금인 합려와 손잡고 초나라 침공계획을 세운다. 오자서는 복수를 위해 그야말로 ‘주경야독’을 하며 전쟁을 준비한다.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은 대다수가 힘든 농사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지만 소수는 주경야독으로 생계와 자존심을 함께 유지했다. 그런 자존심을 아직도 이어가고 있는 농촌마을이 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 갓골이 바로 그곳이다. 주민들은 귀농자들과 함께 ‘밝맑도서관’을 세우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모여서 함께 공부한다. ‘밝맑’이라는 이름은 이곳 사람들 인사말에서 따왔다. 도서관 이용자들은 ‘안녕하세요’ 대신 ‘밝습니다’, ‘맑습니다’라고 인사한다.

   
▲ 마을 아이들이 밝맑도서관 앞마당에서 뛰놀고 있다. ⓒ 장경혜

‘주경야독’ 전통 잇는 시골마을

청명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들판에는 벼와 채소, 이름 모를 풀들이, 도서관 앞마당에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좁은 언덕길로 들어서자 주민과 귀농자가 만든 협동조합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건물들은 대부분 낮고 작아서 자라나는 풀·꽃들과 더욱 잘 어울린다.

홍동면에는 신용협동조합과 생활협동조합 등 서른 개가 넘는 각종 조합이 있다. 기업형 협동조합도 있지만 농민주도형 협동조합이 대다수다. 신용협동조합은 조합원이 2750여명인데, 홍동면에 1500여 가구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규모가 크다. 갓골 신용협동조합은 올해 홍성읍으로 진출했다. 읍에서 면으로 조합이 들어오는 게 보통인데, 거꾸로 세력을 넓힌 것이다.

   
▲ 도서관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서있는 마을 안내판, 홍동 갓골에는 여러가지 형태의 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 장경혜

밝맑도서관은 서류상 협동조합으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된다. 홍순명 도서관장은 “도서관의 이사회와 운영회가 모든 의사결정을 민주적으로 해 잡음이 없다”며 “회계내역도 도서관 신문을 통해 10원 단위까지 공개된다”고 말했다. 도서관은 조합비와 비슷한 회원비로 운영된다.

강의는 주로 저녁 시간대에 이뤄진다. 농사일을 마치고 올라온 농부들과 귀농자들이 주로 참여한다. 백승종 강사의 ‘논어강독’은 남녀노소에게 인기 있는 강좌다. 이영남 강사는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마을 역사 쓰기’, ‘나의 자서전 쓰기’ 등을 한다. 그 외 인문사회학자들을 강사로 초빙해 강의를 이어나간다.

   
▲  백승종 강사와 함께 논어를 공부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 ⓒ 장경혜

오전에는 도서관에서 어린이집과 초등학생 홈스쿨링이 운영된다. 오후에는 학생들이 주로 책을 읽거나 빌려가고, 밤에는 학생들과 함께 주민들이 강의를 듣는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 마을이지만 갓골은 도서관이 있어 미래가 밝아 보인다.

   
▲ 홈스쿨링을 받고 있는 아이가 밝맑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다. ⓒ 장경혜

공부도 농사도 협동조합으로

2009년 귀농을 결심하고 홍동면 풀무학교 전공부(대안대학)에서 2년간 농사짓는 법을 배운 조대성(37)씨는 낮에는 협업농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도서관에서 논어 강좌 등을 들으며 주경야독을 해왔다. 협업농장은 ‘농사협동조합’이다. 일반적인 농사는 생산은 개인 농가가 하고 유통을 협업으로 하지만, 협업농장은 농장을 협동조합으로 등록해 생산부터 유통까지 조합원들이 함께 운영한다. 조씨는 전공부 선생님과 동기 등 3명이 힘을 합쳐 협업농장을 시작했다. 나중에 협동조합으로 등록해 지금은 13명이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 협동농장을 운영중인 조대성씨. ⓒ 장경혜

“도시에서 귀농한 사람들은 농사에 서툴 수밖에 없습니다. 근데 일을 협업으로 하니 힘든 시련을 지혜롭게 넘기고 농장을 잘 정착시킬 수 있었지요. 하우스를 이용해 쌈채소를 재배하는데, 그 기술은 동네 고참 농부들도 어려워하는 겁니다. 다양한 방법을 공유하고 함께 자료를 찾아보면서 난관을 극복했습니다.”

협업의 장점은 그 밖에도 많다. 재능기부 형식으로 지역활동을 하면 자기 일이 많을 때 서로 일손이 되어주니 농사에 큰 차질이 없다. 강제력이 없는 것도 장점이다. 갓골에는 대학교 휴학생부터 변호사, 사진작가, 영화감독 등이 농장 조합원으로 일했거나 일하고 있다. 협업농장에서는 풀타임이 아닌 파트타임으로도 일을 할 수 있다. 농촌에 관심이 있을지라도 도시인들이 농촌에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갓골의 협업농장은 도시와 이미 관계 맺고 있어 귀농을 체험하기 쉽다.

갓골 어린이집에는 무려 88명이 등록돼 있다. 자녀를 이 어린이집으로 보내려고 멀리 천안에서도 홍동으로 이사한 집도 있다. 마을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유기농 음식을 먹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사는 대개 귀농자의 아내들이다.

특별한 날, 도서관은 지역문화의 산실이 된다

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한 조씨는 마을 합창단 ‘홍동뻐꾸기’의 지휘자이기도 하다. 그는 외부에서 음악인을 데려와 비용을 지불하고 공연하게 하는 식으로는 지속가능한 지역문화가 실현될 수 없다고 말한다. 지역사람들이 스스로 지역문화 컨텐츠를 생산하고, 그것들을 보여줄 무대와 같은 공간이 있어야 반쪽짜리가 아닌 온전한 지역예술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도 ‘밝맑도서관’은 지역민들이 문화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공간이다. 홍동뻐꾸기 합창단은 지난해 합창단 정기공연을 영상물로 제작해 지자체 UCC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았다.

   
▲ 홍성 홍동면의 마을합창단 '홍동뻐꾸기' 창단 3주년 정기공연. ⓒ 홍성군 공식 블로그

조씨는 “잘 자란 생명들이 하나의 가치로 인정받고 누군가에게 팔릴 때마다 계속해서 어떤 농법으로 더 나은 채소를 재배할지 고민한다”고 말한다. 생명이 싹트고 자라는 것을 볼 때의 경이로움, 땀 흘려 일하면 반드시 찾아오는 결실의 기쁨, 그리고 밤이면 머리를 채우는 보람이 있기에 조씨는 오늘도 ‘주경야독’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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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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