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윤병선 건국대 교수 특강 ‘농(農)과 식(食)의 정치경제학’
초국적 농식품업체의 식탁 지배∙∙∙식량주권 회복 열쇠는 ‘종자’

‘우리 아기 불고 노는 하모니카는 옥수수를 가지고서 만들었어요~.’ 어릴 때 자주 듣던 동요 ‘옥수수 하모니카’다. 옥수수는 변신의 귀재일까? 요즘 옥수수는 자동차의 휘발유를 대체하는 바이오 에너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농업농촌문제세미나’에서 ‘농(農)과 식(食)의 정치경제학’이란 주제로 특강을 하면서 옥수수를 예로 들어 세계 식량 문제의 현실을 파고들었다. 지역농산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로컬푸드연구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옥수수 생산이 미국의 독무대”라며 “전 세계 옥수수 생산량의 40%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역시 옥수수 수입에서 미국의 비중은 2008년 94.0%, 2010년 85.1%를 기록했다. 미국이 우리나라 옥수수 수급과 가격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 미국 옥수수의 용도별 사용처. 가축 사료와 에탄올 생산에 가장 많이 쓰인다. ⓒ USDA Agric ultural Projections to 2019, February 2010

‘변신의 귀재’ 초국적 옥수수

"옥수수 없이는 현대 문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먹거리 옥수수가 미국에서는 가축 사료와 바이오 에탄올의 연료로 가장 많이 쓰입니다."

옥수수를 먹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건 옥수수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란다. ‘변신의 귀재’ 옥수수는 커피시럽, 플라스틱 등 다양한 영역에서 원재료로 사용된다. 2002년에 후지쓰는 옥수수 전분을 이용한 옥수수 플라스틱으로 노트북 몸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2008년에는 후지제록스가 옥수수 프린터를 내놓은 바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정부가 석유 대체연료로 주목받는 바이오 에탄올 개발에 많은 보조금을 준다. 미국의 옥수수 생산량 중 3분의 1 정도가 이런 에너지 개발에 사용되고 있다. 과거 사람이 먹던 옥수수가 소 먹이가 되는 것을 지나 이른바 ‘친환경’ 에너지를 만드는 원료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 윤 교수는 자본에 종속된 먹을거리가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 김동현

"곡물생산량이 변하고 곡물값이 비싸지는 것은 더는 자연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신이 아닌, 무엇이든 매개로 삼아 이익을 얻고자 하는 투기집단이 우리 식량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직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가 많은데도 옥수수의 대체수요처를 찾는 이유는 시장의 논리가 아닌 정치적 논리죠."

옥수수는 녹색혁명과 함께 생산량이 급증했지만 소비량은 더욱 늘어 값이 꾸준히 올랐다. 특히 2007~2008년에 가격이 급등했다. 자연재해와 같은 ‘신의 장난’이 아니라 거대 투기자본을 가진 소수집단의 조작 때문이었다. 시카고 옥수수 선물(先物)시장 거래기록에 드러난 지난 11년간 자료를 보면 옥수수 선물거래를 가장 많이 하는 주체는 농민도 아니고 곡물 식품업계도 아닌 투자회사였다. 이들의 거래량이 2007~2008년에 크게 늘어 옥수수값에 거품이 낀 것이다. 옥수수 사료를 쓰는 축산농가는 힘들어졌지만 투자회사와 투기자본가들이 ‘옥수수(식량) 위기’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 위기는 손해와 이익이 나는 쪽을 극명하게 갈라놓는 사례가 많다. 

열심히 일하는 농민이 가난한 이유

“옥수수를 키우는 소작농민들은 분산되어 있는데 농민을 상대하는 자본은 거대화한 몇 개 기업으로 뭉쳐있습니다.”

농민은 비싼 소매가로 비료를 사서 키운 작물을 싼 도매가에 판매한다. 이 도매가 역시 작물의 값어치를 제대로 반영한 값이 아니며 여러 단계 유통을 거치며 증가할 시작 단계의 저평가된 값어치이다. 이런 농산물 생산과 유통 구조 탓에 우리나라 농가소득은 2006년 3,230만원에서 2011년 3,015만원으로 5년간 오히려 감소했다. 농가소득은 크게 농업소득과 농외소득ㆍ이전소득ㆍ비경상소득으로 이루어지는데, 농가 전체소득에서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38.7%였던 것이 2011년 29%로 급감했다.

“농가는 땅을 가진 경영자입니다. 근로 임금이 주된 수입인 도시가구보다 농가가 부자여야 합니다. 경쟁에서 뒤처져 삶의 수준이 계속 낮아지는데도 농사를 짓는 소농들의 행위는 자기 착취나 다름없습니다.”

농가소득이 줄어드는 동안 도농간 소득격차는 점차 확대됐다. 1994년 도농간 소득격차는 99.5%로 거의 대등했지만 2011년에는 59.1%에 이르렀다. 산업혁명은 면방직업 등과 같이 농업이 만들어낸 원료를 가공하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농업을 배신했다. 윤 교수는 이를 두고 ‘공업화의 문제’로 진단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농업은 공업에 선천적으로 불리하다는 얘기다. 불리한 산업에 종사하는 어려운 다수 농민들은 먹을 것 안 먹고 돈 아끼려 방독면도 쓰지 않은 채 농약을 친다. 아파도 병원비를 아끼려 병원에도 가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착취한다. 거대자본에 기반을 둔 공업에 패한 농업이 열심히 일하는 그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종자의 보고’였던 한국이 씨앗 수입 대국이 된 사연

“농민들 자기착취의 핵심에 ‘종자’가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신부가 시집갈 때 타는 가마에 가져가는 두 가지가 있었어요. 먼 길 가는 신부가 얼굴 붉히지 말라고 넣어준 요강과 고이 모신 '종자(씨앗)'입니다. 신랑 마을에 가서도 훌륭한 작물을 키우는 것을 자녀를 낳는 것만큼이나 소중히 생각했던 게지요. 우리나라는 원래 ‘종자의 보고’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옥수수의 85%를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리 땅에서 재배하는 옥수수의 50% 이상은 외국 종자를 씁니다. 미국산 종자는 일 년에 한 번밖에 못 써요. 재사용하면 규정 위반으로 어마어마한 범칙금을 내야 합니다."

자본의 농업 지배는 여러 각도에서 심화되었다. 곡물값 상승과 식량 부족을 이용한 투기 자본은 농업의 근본인 '종자'의 지배로 눈을 돌렸다. 1970년대에 소련이 곡물을 대량으로 수입할 때  5대 곡물 메이저는 미국 곡물수출의 75%, 세계 곡물무역량의 40%를 차지하는 과점체계를 형성했다. 이후 중앙정보국(CIA)을 앞세운 정보력으로 적극적인 세계 진출을 꾀했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고환율 정책 때문에 미국 농산물 수출 부진이라는 또 한 번의 위기가 왔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식물을 육종한 사람에게 지적소유권을 인정하는 식물육종자권(Breeder’s Right) 보호제도를 확대했다. 이것이 무생물만 대상으로 했던 특허권이 '생물'에 이전되는 계기가 됐다고 윤 교수는 설명했다. 이후 카길, 몬산토, 붕게 등 곡물 메이저는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국가 연구기관 13개의 연구비를 합친 것보다 더 큰 돈을 연구에 투자해 종자 특허를 독점했다.

▲ 윤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 김동현

종의 경계를 넘은 유전자변형농산물(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은 미국에 본사를 둔 몬산토가 1995년 유전자변형 콩을 상품화하면서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곡물 메이저는 원래 합성비료 등을 생산하던 화공업체였는데 종자사업을 시작하며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로 탈바꿈했다. 전 세계 27%의 종자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몬산토의 첫 식용 GMO 옥수수가 2008년 울산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이때 들어온 ‘Bt 옥수수'는 나방이 먹으면 배고픈 걸 못 느껴서 굶어 죽게 만드는 살충성 형질이 든 것이다. 당시 몬산토는 나방의 신경을 마비시켜 죽게 만들 뿐 인체에 해가 없다고 했다. Bt옥수수가 우리나라에 정식 수입된 계기는 국제 곡물가격 폭등 때문이었다.

"GMO 농산물은 위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분분석과 실험만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쏘가리와 붕어는 인체에 해가 없습니다. 쏘가리는 생으로 먹어도 되지만 붕어는 날것으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오랜 지혜에서 나오듯 말이에요. 우리나라 소비량의 85% 이상이 수입 옥수수인데 GMO인지 아닌지 구분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어 윤 교수는 해충 저항성 면화를 예로 들며 GMO종자의 유해성 논란보다 더 심각한 것은 농민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도 마하라슈트라의 비다르바에서 몬산토사 해충 저항성 면화 GMO 종자 때문에 지난 16년간 농민 25만명이 자살했다. 해충 저항성 면화를 인도 전역에 독점 공급하는 몬산토는 하루 100회 이상 “이 면화를 심으면 농약을 안 뿌려도 되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TV광고를 했다. 거금을 들여 GMO 면화 종자를 산 농민들은 처음에는 농약을 안 치고 수확량이 늘었다. 하지만 한 해 뒤 더 강한 해충이 등장해 농민들은 몬산토의 농약을 사야만 했다. 결국 비싼 농약값을 감당하지 못했고 면화 종잣값마저 빚이 되어 농민들의 삶을 파괴했다.

초국적 농식품업체의 특허권이 농민의 생산권까지 규제

초국적 농식품복합체 상위 10개사는 2009년 기준 세계 종자∙농약산업 매출의 89%를 차지한다. 이들은 특허권을 공유하고 이를 앞세워 농민의 생산권을 법으로 제약한다. 여기서 윤 교수가 질문을 던졌다.

“농민들이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종자를 쓰지 않으면 이들의 밥상 지배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 곡물 자급률 국제비교(2005)와 한국 곡물자급률 추이(2010) ⓒ 윤병선

“그게 가능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겠죠. 초국적 기업의 종자 생산은 그 나라의 정치∙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 농민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다른 나라 농민이 아닙니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식량안보, 식량보장’이라는 말이 주로 쓰였던 과거와 달리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게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과제가 되었다. 필리핀은 1970년대에 쌀을 수출했지만 2000년대에는 총으로 무장한 군인이 쌀 배급소를 지키고 서서 국민에게 쌀을 나줘 줄 정도로 식량난을 겪었다. 필리핀은 1980년대 국제통화기금(IMF) 자금을 받을 때 농업부문 구조조정과 공업부문 집중양성 전략을 택했다.

지속적인 개방농정의 결과 필리핀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은 몰락했고, 몬산토와 같은 국제식량무역상들이 필리핀 식량공급을 틀어쥐고 있어 점차 쌀 가격을 인상했기 때문이다. 쌀뿐 아니라 필리핀 정부는 몬산토의 GMO 옥수수 재배계약의 연장을 계속 승인해주고 있다. 대형할인점 가공식품의 90%가 옥수수전분, 옥수수당 등 옥수수를 원료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초국적 농식품복합체가 한 나라의 곡물 생산과 공급체계를 지배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만 원으로 찾는 농촌 행복

“농림축산식품부에서 '희망찬 농업, 활기찬 농촌, 행복한 국민'을 올해 비전으로 발표했어요. 하지만 주류 경제학이 자본과 이윤에만 집중하듯 구체적 실행 방안에 농업∙농촌∙농민이 없어요. 수십억 예산이 전시행정에 사용되면 안 됩니다. 2009년 기준 전 세계 시장의 89%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10대 종자회사의 거대한 자본에 식량주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요? 자본의 지배에 당할 것만 같던 소농들이 ‘만 원’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에서 지역사회식량보장연합(CFSC)이 수여하는 ‘세계식량주권상’을 받았다. 박점옥 회장은 수상소감에서 "우리가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 결정하고, 안전한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생산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농민회는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우리 종자를 만 원에 나눠주는 ‘만원의 행복’ 사업을 진행했다. 윤 교수는 정치와 경제가 농업을 자본의 영역으로 끌어들였고, 농업의 근본 종자를 시작으로 식량 주권까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에게 내주었지만 희망이 있다고 했다. 여성농민회에 따르면 옥수수도 토종 종자를 보급했더니 외국 종자와 달리 알이 작고 차진 맛이 나는 옥수수가 생산돼 우리 소비자들 기호에 더 맞았다고 한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윤 교수는 모두들 자신이 영화관에서 먹는 옥수수 팝콘이 GMO는 아닌지, 옥수수에서 에탄올을 추출하는 것 같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관심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이 길들이지 못하는 영역에 행복이 있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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