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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도 함께 키우는 게 바른 농사법”
[농촌불패] 다큐멘터리 <자연농> 만드는 감독들
2013년 05월 09일 (목) 16:23:12 김연지 기자 yeonji@danbinews.com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웠다. 높은 봉급도, 여유로운 시간도 포기했다. 대신 선택한 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고된 작업. 남들은 의아해할 선택을 기쁘게 결정한 두 사람은 다큐멘터리 <자연농>(The Final Straw)을 제작중인 패트릭 라이든(31)과 강수희(29) 감독이다.

“‘지속 가능한 세상’에 대한 고민이 이 작업을 함께하게 만들었죠.”

다큐 <자연농>은 ‘국적을 초월한 고민’이 낳은 프로젝트다. 국적도, 성별도, 살아온 삶도 다른 두 사람을 의기투합하게 만든 것은 환경, 생명, 지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었다. 서울 시청역 근처 작업공간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 패트릭 라이든 감독과 강수희 감독. ⓒ 김연지 

그들을 하나로 묶은 그 무엇

강 감독은 지지난해까지만 해도 생태∙환경전문출판사에 다니는 회사원이었다. 2011년 여름, 라이든 감독을 처음 만났다. 한국을 여행중이던 라이든 감독이 그녀가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고 감동해 메시지를 보낸 것이 계기였다. 농촌과 환경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두고 시민운동단체 등에서 활동해온 강 감독과 도시의 삶 속에서 항상 결여된 무언가를 느껴온 라이든 감독 사이에 공감이 있었다. 두 사람은 식량과 환경 문제에 대한 고민과 아이디어를 나눴다.

자연농을 알게 된 건 그해 가을이다. 두 사람은 라이든 감독이 운영하는 웹진의 인터뷰를 위해 함께 최성현씨를 찾아갔다. 최씨는 한국에 자연농을 처음 알린 저술가이자 농부다. 자연농을 직접 실천하며 자신의 삶과 철학을 <바보이반의 산 이야기> <산에서 살다> 등 책으로 펴냈다. 이 만남은 두 사람에게 큰 영감을 줬다. 웹진의 작은 인터뷰로 끝내기엔 너무 크고 아까운 이야기였다.

   
▲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자연농을 실천한 최성현씨. ⓒ 패트릭 라이든

“최성현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민에 대한 열쇠를 얻은 기분이었어요. 인생의 전환점이었달까,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이로운 길,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세상을 위한 길을 알리는 작업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농법

두 사람은 기존 농업체계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대규모로 단일작물을 재배하고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는 산업농법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여겼다. 실제로 산업농법의 폐해는 사막화, 기후 변화, 에너지 고갈 등 전지구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연농은 이러한 관행농법과 정면으로 맞선다. 자연농 개념을 창시한 ‘현대의 노자’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서양철학의 인간 중심적 자연관이 지금과 같은 환경파괴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자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오만함을 꼬집은 것이다. 자연농은 서양철학과 달리 자연을 완전한 존재, 공경해야 할 존재로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 강원도 홍천에 있는 최성현씨 자연농 농장. ⓒ 패트릭 라이든

‘4無 원칙‘도 같은 맥락이다. 자연농은 ‘무경운,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라는 ‘4無 원칙’이 전제가 된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가하는 많은 것들이 때로는 자연에 폭력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농은 자연의 자체적인 힘과 질서를 중시해, 농사의 모든 과정을 최대한 자연의 이치에 맡긴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농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농약, 비료, 제초제를 쓰지 않고 심지어 땅을 갈지도 않는 농법이 정말 실현 가능한 것일까? 두 감독은 자연농법의 밭을 ‘완전한 작은 생태계’로 비유하며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과학기술로 자연을 제어하고 생산량을 증가시키려는 관행농법과 달리 자연농은 자연의 자체적인 체계를 존중한다. 농약과 살충제를 쓰고 기계로 추수하는 관행농법의 밭과 최성현씨의 밭은 한눈에도 확연히 다르다. 생명력 넘치는 그의 밭에서 작물들은 야생 풀과 어울려 조화롭게 자란다.

   
▲ 자연농 논밭은 추수 후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 패트릭 라이든

농부들의 이야기

두 감독은 다큐 <자연농>을 위해 한국, 일본, 미국 등을 누비며 자연농 농부들을 취재했다. 한국에서 자연농은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일본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농 선구자는 가와구치 요시카츠다. 그가 1991년에 세운 ‘아카메 자연농 학교’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누구나 와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작은 밭을 받아 농사도 지어볼 수 있는 ‘열린 학교’다.

“매달 약 300명이 일본 각지, 세계 각지에서 찾아와 자연농을 배워요. 이들은 다시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가 배운 것을 실천합니다. 자연농의 씨앗이 널리 퍼지고 있는 셈이죠. 특히 후쿠시마 이후, 젊은 청년들의 참여율이 높아졌다고 해요.”

환경, 귀농에 대한 일본 청년층의 관심이 커진 것이다. 일본과 비교해 한국에는 이런 움직임이 아직 낯선 이유가 무엇일까? 라이든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시차’를 이유로 들었다.

“일본은 한국보다 근대화가 더 빨리 진행되었잖아요? 환경 문제나 ‘자연농’에 대한 관심은 산업화에 따른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니까 여기에도 시차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자연농이 점차 알려지고 있어요.”

두 감독은 최성현씨 말고도 경기도 연천의 홍려석씨를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홍씨는 2006년부터 자연농을 시작한 농부다. 그가 처음 자연농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농약, 비료 등 인위적인 방법에 길들여진 땅을 다시 자연으로 되돌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채소를 재배하겠다’는 마음으로 수년 간 고생을 견뎠고,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확을 거두고 있다.

   
▲ 일본 아카메 자연농학교. ⓒ 아카메 자연농학교 공식 웹사이트

‘농법’ 아닌 ‘철학’,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연농

하지만 과연 자연농이 ‘주류’가 될 수 있을까? 지금처럼 거대한 산업논리가 중심이 되는 세상에서 자연농은 일견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문명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자연농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물론 지금 같은 생활방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자연농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채워줄 수 없으니까요. 거대하고 복잡한 식량구조의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사막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고, 시간이 흐르면 지구의 생명력이 고갈될 겁니다. 결국 생존을 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겠죠.”

두 사람은 식량과 환경에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규모 산업농의 효율성이나 인위적인 기술을 배제하고도 우리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두 사람은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자신들의 최종목표라고 했다.

“우리는 ‘농사를 지으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게 아니에요. 다큐 <자연농>이 주목하는 건 ‘농법’이 아닌 ‘철학’으로서 자연농이죠.”

두 감독이 생각하는 자연농은 단순한 ‘농법’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태도, 삶의 방식, 철학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라이든 감독은 ‘농법’과 ‘농사’는 자연농을 설명하는 방식 중 일부일 뿐이라고 했다. 자연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바꾼다면 누구나 자연농을 실천하는 게 가능하다. 자연농은 자연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삶의 철학과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연농의 철학과 발상을 알리고 그것을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다큐 <자연농>의 목표다.

계속되는 프로젝트 <자연농>

다큐 <자연농>은 8, 9월쯤 완성될 예정이다. 2011년 겨울에 시작한 프로젝트가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뛰어든 일이다. 그런데 두 감독은 이 작업으로 영리를 취할 생각이 없다.

“이 일을 하며 저희가 합의한 게 있어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수집한 정보들을 대중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거예요. 저희는 이 정보들이 돈으로 지불되길 바라지 않아요. 따져보면, 거의 2년 가까이 이 작업을 대가 없이 하는 셈이지만, <자연농>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이 작업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어요.”

   
▲ 다큐멘터리 자연농. ⓒ 다큐멘터리 자연농 홈페이지

두 감독은 <자연농>에 삽입되는 모든 인터뷰 영상을 온라인(http://finalstraw.org/)에 무료로 공개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는 영화제 등을 통해 선보이더라도, 정보 자체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두 사람 생각이다. <자연농>은 한국어, 일본어, 영어 세 국어로 제작이 진행중이다. 번역, 홍보, 제작비 모금 활동 등 앞으로 할 일이 까마득하다. 그런데 이 두 사람, 다큐멘터리가 끝이 아니라 한다.

중앙화, 대규모화한 농업구조에서 자연농법의 농산물이 살아남으려면 유통망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강 감독은 여성농민회의 ‘제철 꾸러미’, 불교생협의 ‘인드라망 꾸러미’ 등을 모델로 여러 가지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좋은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요즘, 유통망이 확보된다면 자연농법으로도 수익창출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다.

자연농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연결할 방법을 찾는 것도 목표다. 두 감독은 자연농을 하려는 사람, 하고 있는 사람, 자연농작물을 소비하고 싶어 하는 사람 등이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한다.

“아직 갈 길이 멀죠. 다큐 완성 이후가 더 문제예요(웃음). 피곤하고 지칠 때도 있지만, 저희는 이 작업이 참 행복해요.”

강 감독과 라이든 감독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할수록 자연농의 가치와 가능성을 더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농의 철학은 아직 우리의 일상적 삶과 멀리 떨어져 있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두 감독의 작업이 더 소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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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지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팀장, 시사용어팀과 영상부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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