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로 일손 부족하고 행정당국 지원도 미흡해 방치

전국의 농촌이 쓰다버린 폐비닐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방치된 비닐이 바람에 날려 하천을 오염시키고, 들판 곳곳을 폐허처럼 만든다. 불법적인 소각처리는 발암물질인 다이옥신과 분진 등 공해물질을 퍼뜨린다. 하지만 행정당국은 일손과 예산 부족을 이유로 폐비닐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국에서 수거 안 된 비닐 매년 7만톤

밭에 비닐을 깔아주는 '멀칭(mulching·덮기)재배'는 김을 맬 사람이 부족한 농촌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햇빛을 차단해 잡초가 자라는 걸 막고 땅 온도를 높여 작물이 잘 자라게 해주기 때문이다. 충북 제천 도화리에서 옥수수 농사를 짓는 김순옥(66·여)씨는 지난 14일 “비닐을 안 쓰면 곡식이 빨리 안자라고 잡초 처리도 어렵다”며 “비닐 상태가 괜찮으면 1년 더 쓰지만, 보통은 해마다 비닐을 씌우고 걷는다”고 말했다. 같은 마을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이형직(61)씨는 “콩이든 팥이든 멀칭을 해야 한다”며 “열에 아홉은 비닐을 깐다”고 덧붙였다.

 

▲ 밭 이랑에 '멀칭 비닐'을 깔고 구멍을 내어 옥수수나 고추 등 작물을 심는다. ⓒ 이성제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멀칭과 비닐하우스 재배로 매년 전국에서 폐비닐 32만톤(t)이 발생한다. 이 중 22.7%인 7.2만t이 수거되지 않은 채 방치되거나 임의로 소각 또는 매립되고 있다. 농가에서 주로 쓰는 두께 0.012밀리미터(mm), 너비 90센티미터(cm), 길이 1000미터(m)의 멀칭비닐은 900제곱미터(㎡)를 덮을 수 있는 양으로 무게가 15킬로그램(kg)정도 나간다. 수거되지 않은 폐비닐 7만여t을 멀칭비닐로 가정해 어림짐작하면 축구장 60여개를 덮을 수 있는 양이다.

 

 ▲ 폐비닐 처리 과정 도식 그림. 농촌 폐비닐 문제는 그림에서 빨간 화살표로 표시된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발생한다. ⓒ 환경부

폐비닐 처리는 두 단계를 거친다. 농민이 직접 폐비닐을 수거해 마을 집하장에 갖다 놓으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정한 민간수거사업자가 한국환경공단 가공사업소까지 이를 운반한다. 제천시청 도시미화과 이해영 주무관은 “농촌 폐비닐 문제는 기본적으로 농민의 인식 문제”라며 “농민 스스로 자기 땅은 알아서 치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또 “폐비닐 수거에 제천시가 나서고 싶어도 인력 부족 등 여력이 없다”며 “다만 홍보 전단을 배포해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집하장에 모인 폐비닐도 장기간 방치

농민이 수거를 잘 하더라도 열악한 집하장 시설 탓에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2011년 기준 전국 11,943곳의 집하장 가운데 울타리조차 없는 빈 땅이 9,737곳이다. 울타리가 설치된 1731곳도 가림막이 없어 폐비닐이 바람에 날리기 일쑤다. 집하장이 차고 넘쳐야 민간수거사업자가 한꺼번에 싣고 가기 때문에 집하장에 모인 폐비닐 대부분이 장기간 방치되고 있다.

민간수거업자도 부족하다. 제천의 경우 민간수거업체 두 곳이 75개 집하장에서 폐비닐을 수거한다. 지난해 9월 환경부가 낸 ‘농촌폐기물 적정관리대책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전국 164개 시·군을 담당하는 수거업자가 124명뿐이어서 인력 부족으로 제때 수거가 이뤄지기 어려운 형편이다. 지자체에서 지불하는 운반비용이 지난해 기준 kg당 46원밖에 되지 않아 수거업자들은 접근이 어려운 오지나 소량 처리를 기피한다.

 

▲ 충북 제천시 도화리 마을 폐비닐 집하장. 제 때 수거가 안 된 비닐이 쌓이고 넘쳤다. 비닐은 이렇게 장기간 방치된다. ⓒ 이성제

농촌에서 자체적으로 폐비닐을 처리하는 데는 구조적 어려움이 있다. 농촌 인구가 점점 줄어 2011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6.0%에 불과한데, 65세 이상 고령인구비율은 점점 늘어 같은 해 33.7%를 기록했다. 충북발전연구원의 배민기 연구위원은 “고령 인구가 많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집도 흔한 농촌에서는 도시처럼 쓰레기를 처리하기 어렵다”며 “현실과 정책에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폐비닐 수거를 독려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농민들에게 지급하는 수거보상비는 전국 평균 kg당 70~80원밖에 안 된다. 2011년 현재 경지면적이 1헥타르(ha) 미만인 농가가 81.3%를 차지할 만큼 소규모 자영농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대다수 농가가 폐비닐 수거로 받을 수 있는 돈은 1000원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보상비는 대개 집하장을 관리하는 마을 부녀회 등에 일괄 지급되기 때문에 농민 개인에게 별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이든 농민들이 멀리 떨어진 마을 집하장까지 애써 폐비닐을 가져갈 유인이 부족하다.

 

 ▲ 도화리 마을 집하장에서 1.5km가량 떨어진 외딴 언덕 밭. 비닐을 걷던 박동리(79)씨는 "마을에서 홀로 떨어져 농사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며 "보통 바람 안부는 날을 골라 태우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성제

그래서 전문가들은 집하장 개선과 보상비 현실화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출간된 충북발전연구원의 ‘충청북도의 깨끗한 농촌환경 만들기’ 보고서는 “폐비닐의 효율적 수거를 위해 집하장 시설을 보완하고, 수거보상비를 현실화해 폐비닐 수거량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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