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2024 기후 전망과 전략: 10인과의 대화

“이번 세기에 들어와서 우리나라가 겪은 질병들, 사스, 메르스, 또 이번에 코로나19. 이게 전부 박쥐로부터 바이러스가 왔다는 건 역학조사를 통해서 밝혀진 일입니다. 그런데 이 박쥐들이 최근에 온대지방으로 자꾸 옮겨오기 시작했어요. 왜 그렇겠어요? 온대지방 기온이 자꾸 오르니까 그들이 분포를 확장한 겁니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을지로5길 페럼타워 3층에서 열린 ‘2024 기후 전망과 전략: 10인과의 대화’ 포럼에서 첫 발표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최 교수는 ‘생물다양성과 조화로운 삶’을 주제로 한 연설에서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확하게 인과관계를 밝히기 쉽지 않으나, 여러 정황적 증거들을 통해 기후변화가 배후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후변화가 멈추지 않으면 열대지역에 있는 박쥐들이 온대지역으로 바이러스를 계속 옮겨 와, 인류는 반복적으로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민간 환경연구기관인 녹색전환연구소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150여 명이 현장 참가하고, 540여 명이 유튜브 중계를 지켜봤다.

지구 장악한 인간과 가축, 바이러스에 취약해져

‘2024 기후 전망과 전략: 10인과의 대화’ 포럼에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생물다양성과 조화로운 삶’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박세은 기자
‘2024 기후 전망과 전략: 10인과의 대화’ 포럼에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생물다양성과 조화로운 삶’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박세은 기자

최 교수는 인류가 1만 년 전 농경을 시작할 무렵 지구의 모든 포유동물과 조류의 전체 중량에서 인간과 가축을 합한 무게가 1%가 채 안 됐지만, 2024년 현재는 축산업과 동물원 등을 포함해 96~99%까지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불과 1만 년여 만에 우리가 야생동물을 1% 남짓으로 줄여버리고 완벽하게 지구를 장악했다”며 “야생동물 몸에 붙어사는 바이러스가 이주하는 곳은, 백발백중 우리 또는 우리가 기르는 동물”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또다시 찾아올 팬데믹에 대비해 ‘화학 백신’ 대신 ‘행동 백신’과 ‘생태 백신’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동 백신은 감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손을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등의 대응을 말한다. 생태 백신은 기후변화를 막고 자연을 보호하는 실천을 뜻한다. 최 교수는 “백신은 사회구성원의 70~80%가 함께 접종하지 않으면 집단면역을 이룰 수 없다”며 행동 백신과 생태 백신에 광범위한 동참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기후위기, 파국의 시점은 언제인가’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대기과학자 조천호 박사는 2023년 발간된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6차 평가보고서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그는 “자연에서 가장 빠르게 기온이 상승하는 속도는 1000년에 1도(℃)인데, 사람이 화석연료를 태워서 100년 만에 1℃를 상승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IPCC 보고서의 결과는 과학적 증거가 쌓이면 쌓일수록 기후위기가 더 낮은 온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극해빙과 영구동토층의 소멸 등 ‘급변점’(tipping point)을 넘어서면 기후위기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며, 앞으로 10년이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톡홀름회복력센터(Stockholm Resilience Centre)는 북극해빙의 소멸 등 9가지 기후 티핑포인트를 제시하며 긴급한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출처 스톡홀름회복력센터 누리집
스톡홀름회복력센터(Stockholm Resilience Centre)는 북극해빙의 소멸 등 9가지 기후 티핑포인트를 제시하며 긴급한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출처 스톡홀름회복력센터 누리집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질병대응연구센터장은 ‘기후위기와 건강’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많은 연구가 기상재해나 폭염을 인식하는 것 자체로도 (심리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IPCC는 2022년 보고서에서 ‘기후불안’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채 센터장은 “기후불안은 어쩌면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감정일 수 있지만, 이를 방치해서 기후불안이 악화하면 결국 병리학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디지털 전환 과정의 에너지 과소비 억제도 중요

‘기후를 위한 경제학’을 쓴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은 포럼 2부에서 인공지능(AI)기술 개발과 같은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생태 전환’이 우리 사회의 중대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생태 전환이 더 급한데도 디지털 전환에만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은 이어 디지털 전환이 에너지 폭증으로 귀결되지 않고 환경친화적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산업구조 전환의 가장 큰 도전과제라고 말했다.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은 ‘기후위기 대응과 경제·금융’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탄소세를 부과해야 하지만,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AI와 블록체인, 2차전지, 기후테크 등 변혁적 기술과 기후금융의 활성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전 차관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투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기후위기를 이해하고 적절한 투자를 할 수 있는 투자자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는 ‘기후위기와 먹거리’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농촌과 도시의 관계 회복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100만 농가가 있고 약 200만 명의 농민이 있다”며 “농민들의 평균 나이가 70세여서 이들이 5천만 명의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인들이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사는 등 도농 교류를 하면서 농촌과 도시의 관계를 회복해야, 기후위기와 먹거리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럼 2부 마지막 순서에서 발표자들이 좌장인 이승원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안소현 기자
포럼 2부 마지막 순서에서 발표자들이 좌장인 이승원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안소현 기자

2024년 선거에서 기후위기를 주요 의제로 만들어야

‘2024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진행된 포럼 3부에서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전환팀장은 전쟁이 기후위기를 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환경 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벌어진 500여 일 동안 온실가스가 대량 배출됐음을 지적한 보고서를 인용하며 전쟁의 악영향을 줄이는 국제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관후 건국대 교수는 ‘2024 총선과 기후 정치’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2024년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기후’라는 어젠다(의제)와 민주주의가 만나는 해”라고 말했다. 올해 세계 70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지는데, 유권자가 20억 명이며 선거 결과는 40억 명 이상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는 2024년이 민주주의를 통해 기후 문제를 의제화하고 해결하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국내에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상황이 기후 대응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과 지방소멸 이슈는 서로 별개가 아니다”며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커질수록 지방에서는 반(反)기후 산업이라도 유치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관후 건국대 교수가 “2024년 선거에서 기후위기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안소현 기자
이관후 건국대 교수가 “2024년 선거에서 기후위기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안소현 기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은 ‘2024 기후위기 전망과 행동 제안’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국가 전환, 에너지 전환, 산업 전환과 녹색일자리, 정치 전환, 삶의 전환 등의 행동을 제안했다. 그는 “2050년에 우리가 어떤 에너지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그림을 그려놓고, 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를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데, 우리는 몇 년째 태양광과 원전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실제로 재생에너지 전환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탄소중립으로 가는 데 재생에너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제대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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