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가짜뉴스를 새로운 현상, 큰 문제, 혹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근데 사실 정보 양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가짜뉴스는) 과거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예요.”

지난달 2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시대의 뉴스 리터러시'를 주제로 강연한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의 말이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초청으로 저널리즘특강에 나선 그는 “PC(개인용컴퓨터)가 주어지고,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늘 갖고 다니고, 언제든 그것을 퍼블리시(출판)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고, 디지털 방식으로 누구나 복제와 수정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가짜뉴스는 필연적인 정보 양식의 하나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한국일보>에서 5년 동안 기자로 활동한 뒤 네이버와 다음, 오마이뉴스재팬 등에서 뉴미디어 전문가로 일했다. 이후 일본 도쿄대에서 학제정보학 박사학위를 받고 도쿄대와 간다 외국어대에서 교수로 일하다 귀국해 <미디어오늘> 부설 넥스트리터러시 연구소장을 지냈다.

‘가짜뉴스’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미디어 인류학자인 김경화 박사가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특강에서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시대의 뉴스 리터러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미디어 인류학자인 김경화 박사가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특강에서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시대의 뉴스 리터러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김 박사는 가짜뉴스(fake news)가 일반적으로 ‘팩트(사실)가 아닌 정보, 혹은 그런 정보를 유통하는 행위’로 정의되지만,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는 이 표현이 부적절하다며 ‘정보 장애’(inforamation disorder)로 부르도록 제안했다고 소개했다. 유네스코는 정보장애의 유형으로 오보(mis-information), 위조된 정보(dis-information), 악용된 정보(mal-information)를 제시했다. 오보는 기사에 실수로 잘못된 사실을 쓰는 것처럼 의도하지 않고 생산 혹은 유통한 가짜 정보를 말한다. 위조된 정보는 거짓인 걸 알면서도 만들고 유포한 정보, 악용된 정보는 내용상 틀리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기 위해 부적절한 시기 혹은 맥락에서 퍼뜨린 정보를 말한다.

김 박사는 “가짜뉴스는 저널리즘적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많지만, 매스미디어의 역사에서 정보 장애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굉장히 많았다”며 대표적인 예로 1938년 조지 오손 웰스의 ‘화성인 침공’ 사건을 들었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 시비에스(CBS) 라디오에서 ‘우주전쟁’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생방송으로 내보냈는데, 많은 청취자가 실제 상황인 줄 알고 차에 짐을 싣고 피난길에 나서는 등 ‘집단 패닉’을 겪은 일이다.

그는 다만 현대 사회에서 개인용컴퓨터와 스마트폰, 인공지능을 활용해 딥페이크(인간 이미지 합성)를 쉽게 만드는 등, 정보 장애를 고도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할 부분으로 지적했다. 또 ‘일렉트로닉 페르소나’라고 불리는 디지털 공간의 ‘또 다른 나’가 개인마다 여럿 존재하고, 스페인에서 홀로그램을 이용한 시위가 벌어지는 등 ‘인간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기술변화와 관련해 유의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인터넷이 민주주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에 관해서도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인터넷과 미디어를 스스로 활용하는 주체가 될 수도 있고, 동시에 미디어가 주는 정보 양식이 구축해 놓은 환경 속에 있는 작은 요소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기술변화가 인간의 삶에 가져오는 변화 주목해야

김경화 박사의 강의를 경청하는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로 연결한 외부 청중을 포함해 30여 명이 참여했다. 김창용 기자
김경화 박사의 강의를 경청하는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로 연결한 외부 청중을 포함해 30여 명이 참여했다. 김창용 기자

김 박사는 정보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뉴스가 발전해 온 맥락을 살펴보면 책(활자)과 같은 물리적 매체와 17세기 유럽의 커피하우스와 같은 물리적 공간, 그리고 읽을 줄 아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커피하우스에 가면 누군가가 큰 소리로 인쇄물을 읽어 줬다”며 대다수 사람이 글을 읽을 수 없어 커피하우스에 가야 인쇄물에 실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듣고, 그 사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커피하우스가 공론장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커피하우스에는 ‘신분이 높은 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좋다’ ‘욕설하면 12펜스의 벌금’ ‘싸움을 일으킨 자는 피해자에게 커피를 한 잔 사야 한다’ 등 평등과 책임을 강조하는 공론장의 규칙이 있었다고 김 박사는 소개했다.

그는 “리터러시(literacy)는 본래 듣는 것을 의미했다”며 “묵독(소리 내지 않고 읽는 것)이라는 형식은 매우 새로운 형식”이라고 말했다. 리터러시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으로, 한국말로 '문해력'이라고 번역한다. 지금은 단순히 문자를 알아보고 읽는 능력을 넘어, ‘글 전체를 읽고 내용을 파악해 자신의 의견을 글로 써낼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 개념이다. 그러나 문자가 보편화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듣는 것이 읽기’였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이어 “기술이 변하면서 인간, 개인의 의미가 변하기 때문에, 성찰적 리터러시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짜뉴스라는 정보 양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기술의 시대에 왜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성찰적 리터러시”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디지털 기술과 연동된 우리 삶의 변화를 성찰해야 한다”며 “무지의 영역, 즉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에 대해서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메타버스와 인공지능 시대, 언론인의 생존전략은

강연에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양혁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이 질문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강연에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양혁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이 질문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 양혁규(27) 씨는 “메타버스가 저널리즘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 현재 언론 보도에 실용적으로 쓰이고 있는가”를 물었다. 김 소장은 선거 개표 방송 등 사례가 있지만, 방송에서 메타버스를 아직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메타버스를 잘 활용하고 있는 예로는 연예 비즈니스 산업을 들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메타버스 속에서 가수의 신곡을 발표하고 이벤트를 열어 큰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다. 김 박사는 “메타버스가 공론장이나 팩트를 다루는 뉴스 미디어가 되기에 적합한지는 생각해 봐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같은 대학원생 이정우(25) 씨는 “인공지능 시대에 대체될 수 있는 직업의 하나로 기자가 꼽히는데, 기자로서 생존하려면 어떤 방안을 모색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김 박사는 “인공지능 시대에 계량적인 부분은 대체가 되기 쉽지만, 인간의 주체적 의지가 필요한 부분은 대체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의 맥락, 기자가 가진 사회변혁 의지 등이 심층 보도에 더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며 “보도하는 주체인 기자의 사고방식이나 관점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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