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좋은 콘텐츠 포럼 ‘지역언론의 새 판을 만들다’

세계 1위 신문 시장 미국 덮친 ‘뉴스 사막화’

미국 3143개 카운티별 지역신문 수. 미국 인구의 5분의 1이 뉴스 사막이거나 뉴스 사막이 될 위험이 있는 지역에 살고 있다. 출처 노스웨스턴대학

‘뉴스 사막(News Desert)’이란 말이 있다. 언론 매체가 존재하지 않아 ‘언론 없는 사막’이 된 지역이란 뜻이다. 뉴스 사막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곳은 세계 1위 신문시장, 미국이다. 200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내 수백 개의 일간지와 주간지가 폐간되면서, 지역 내 언론 매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현저히 줄어든 곳을 ‘뉴스 사막’이라 이름 붙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이 발표한 “미국지역언론보고서(The state of Local News 2022)”를 보면 미국 시민의 5분의 1 이상이 이미 뉴스 사막화가 진행됐거나, 진행될 위기에 처한 지역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군과 비슷한 행정구역인 카운티 3143개 가운데 200개에는 지역신문이 단 하나도 없다. 또 1630개 카운티에는 하나의 신문사만 있었다.

보고서는 이처럼 지역 뉴스를 보도하는 지역 신문사가 사라져가는 상황을 ‘민주주의와 사회의 위기’라고 말했다. 지역 저널리즘의 상실이 지역사회 내부와 지역사회 사이의 정치적·문화적·경제적 분열을 악화시키고,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생존 가능성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지역 저널리즘의 상실은 잘못된 정보와 허위 정보의 악의적 확산, 미디어에 대한 신뢰 약화와 심각한 디지털 정보 격차를 동반한다”고 설명했다. 또 “신뢰할 수 있는 지역 뉴스가 없는 사회에서는 시민 참여는 감소하고 지방정부와 기업 부패가 증가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지역주민들이 지불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지역 언론과 ‘한국형 뉴스 사막’

미국 지역 매체를 덮친 뉴스 사막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지역 뉴스 사막화 현상은 미국과 다른 형태로 가속화되고 있다. 지역 언론의 절대적인 수가 줄어들고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지역 언론 수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었다. 2022년 신문산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2년 571개였던 지역신문 수는 2021년 624개로 증가했다. 온라인신문까지 합치면 지역 언론사의 수는 크게 늘었다.

하지만 ‘지역신문이 실종된 지역’만 뉴스 사막이 아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UNC)이 발표한 “사라지는 신문, 언론 사막화 확대(Vanishing Newspapers-The Expanding News Desert)”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지역신문이 사라진 지역뿐만 아니라 지역 뉴스 보도와 지역 뉴스에 대한 주민들의 접근권이 크게 낮아진 지역도 뉴스 사막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한국형 뉴스 사막은 후자에 가깝다. 지역 언론사 수는 많아도 지역의 현안을 충실히 다루는 ‘가치 있는 뉴스’가 적다는 것이다. 자치단체 홍보성 기사, 출입처 보도자료 베끼기 기사 중심 보도가 지역의 뉴스 사막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KBS청주 시사프로 ‘언론 자유와 방종’ 편에서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계희수 활동가가 모니터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 유튜브 KBS 다큐공작소 채널
KBS청주 시사프로 ‘언론 자유와 방종’ 편에서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계희수 활동가가 모니터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 유튜브 KBS 다큐공작소 채널

이는 지난 2021년 11월 방영된 KBS청주 시사 프로그램 <한끼시사> ‘언론 자유와 방종’ 편에서 잘 드러났다. <한끼시사>가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과 함께 충북 도내 주요 일간지 4사와 지상파 방송 3사의 보도를 2주간 모니터링한 결과, 전체 보도 가운데 보도자료나 홍보자료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받아적는 ‘받아쓰기 기사’ 비율이 과반을 차지했다. 신문의 경우 받아쓰기 기사 비율이 74.5%, 방송의 경우 65%에 달했다.

지역이란 사막에도 좋은 보도의 ‘꽃’이 핀다

지난달 26일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충북민언련 20주년 기념 좋은 콘텐츠 포럼 ‘지역 언론의 새 판을 만들다’가 열렸다. 정윤채 기자
지난달 26일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충북민언련 20주년 기념 좋은 콘텐츠 포럼 ‘지역 언론의 새 판을 만들다’가 열렸다. 정윤채 기자

지역에도 좋은 보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사막에 핀 꽃처럼, 지역에도 저널리즘의 가치를 보여주는 좋은 보도와 콘텐츠들이 존재한다.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달 26일 좋은 콘텐츠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한 포럼 ‘지역언론의 새 판을 만들다’에서 소개한 충북 도내 언론사들의 보도 사례가 그렇다.

이날 포럼에서는 KBS청주, CJB청주방송, 충북CBS, 옥천신문, 충북인뉴스, 충청리뷰 등 충북 도내 6개 언론사의 언론인 11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무대에 오른 지역언론인들은 지역민의 삶을 바꾼 좋은 보도 사례부터 지역에서 출발해 해외까지 뻗어나간 콘텐츠 사례 등을 소개하며 지역언론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객석은 현직 지역언론인들과 시민들로 가득 찼다.

발표에 나선 언론인들은 지역민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보도와 프로그램 등을 소개하고, 프로그램 제작과 취재 과정에서 있었던 후일담을 공유했다. 지역언론인으로서 안고 있는 고민과 지역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KBS충북 김효진 PD가 “지역 공영방송과 PD저널리즘의 가치”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정윤채 기자
KBS충북 김효진 PD가 “지역 공영방송과 PD저널리즘의 가치”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정윤채 기자

첫 연사로 나선 KBS충북 김효진 PD는 재난보도 과정에서 지역 PD로서 효능감을 느낀 경험을 발표했다. 2019년 KBS에 입사해 올해로 5년 차인 김 PD는 지난 7월 자신이 연출에 참여하는 <다큐공작소>에서 ‘긴급수해보고’ 편을 제작했다. 김 PD를 포함한 4명의 PD들은 지난 7월 15일 일어난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중심으로 충북 도내 여러 수해를 취재했다. 밤을 새워가며 참사 현장을 제일 늦게까지 지켰다.

중앙의 다른 시사 프로그램들도 취재에 뛰어들었지만, 지역의 수해를 단순한 ‘사례’로서가 아니라 중요한 사안으로 보도한 건 <다큐공작소>뿐이었다. 오송 참사와 같은 날 산사태로 숨진 한 청년의 이야기도 최초 보도했다. 사고가 발생한 도로는 산사태 위험에도 도로 통제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낙석방지시설도 설치되지 않았고 배수에도 문제가 있었다. 관련 기관들은 사고 이후 발생 원인을 규명해 달라는 유가족의 연락에도 “담당 부서가 아니다”라며 회피했다. 유가족은 <다큐공작소>의 취재가 시작된 후에야 처음으로 담당 기관의 연락을 받아볼 수 있었다.

김 PD는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이 피해자 유가족들께 도움이 되는 것을 보면서 여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일에 힘이 있다는 걸 느꼈다”며 “지역에 있는 많은 언론인이 지치지 않고 현장에서 기쁨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JB청주방송 안정은 기자는 지난 3월 두 차례의 쌍둥이를 출산한 뒤 하반신 마비 증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손누리 씨 부부의 사연을 최초 보도한 경험을 발표했다. 안 기자의 “겹쌍둥이 부부의 눈물” 보도를 시작으로 수많은 언론에 손 씨 부부의 사연이 잇따라 보도되며 전국에서 ‘부부를 돕고 싶다’는 연락이 쏟아졌다. 지자체부터 기업, 개인까지 앞다투어 이들을 돕겠다고 나섰다. 지역에 밀착한 좋은 보도가 지역민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안 기자는 이번 보도로 언론의 자부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기자는 “여러 사건·사고나 정확한 정보 전달도 뉴스의 중요한 가치지만 우리 지역 이웃의 삶을 더 이롭게 하는 기사가 언론의 자부심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보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켜봐 달라”고 덧붙였다.

충북민언련 이수희 대표는 이런 좋은 보도들이 지역민들이 지역언론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게 하는 매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포럼에서 “지역의 좋은 보도와 좋은 콘텐츠들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면 지역민들은 지역언론을 외면하지 않는다”며 “지역언론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이에 함께하고 싶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막에서 피어난 꽃에 박수를

하지만 지역에서 좋은 보도가 나와도 ‘지역의 이야기’라는 벽에 부딪혀 보도 가치에 비해 영향력이 축소되는 경우도 있다. 포럼에서 마지막 연사를 맡은 충북민언련 계희수 활동가는 이런 사례의 하나로 KBS충북 이정훈 기자의 “집단 암 미스터리” 보도를 소개했다.

계 활동가에 따르면 이 기자는 지난 2021년 청주시 북이면의 소각장 밀집지역에 사는 지역주민 60명이 암으로 숨진 일명 ‘집단 암 미스터리’를 단독 보도했다. 일부 중앙언론은 같은 사안에 대해 환경부 발표자료를 그대로 인용했다. KBS충북은 달랐다. 전문가들이 환경부 발표에 제기한 의문부터 피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고루 다뤘다. 그러나 이 뉴스는 오로지 KBS충북에서만 송출됐다. 해당 보도가 나간 날 KBS 본사의 <KBS 뉴스9>에는 이 보도가 방송되지 않았다.

KBS청주 이정훈 기자의 '끝나지 않은 60명 집단 암 사망의 비극' 보도. KBS 홈페이지 갈무리
KBS청주 이정훈 기자의 '끝나지 않은 60명 집단 암 사망의 비극' 보도. KBS 홈페이지 갈무리

얼마 후 KBS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시즌3 20화에서는 이 보도에 대해 “지역 뉴스에만 나가서 환경부에서는 대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패널로 출연한 한 기자는 “왜 전국 뉴스에 안 들었던 거냐”며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다.

계 활동가는 이처럼 지역 뉴스가 전국으로 확대되지 못하는 상황을 구조적 문제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계 활동가는 “네이버나 유튜브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고 조회수가 잘 나오는 뉴스들을 선별해 사실상 큐레이팅하고 있는 구조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잘 지역언론 콘텐츠를 선별해 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지역 주민들이 언론사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은 ‘내가 사는 곳의 뉴스를 이곳이 얼마나 다루고 있는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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