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정환봉 한겨레 기자의 탐사보도론

“사실 탐사기획보도라고 해서 다른 보도와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에요. 기본적인 것들은 같은데 ‘플러스알파’(추가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서 또 뭐가 플러스알파가 돼야 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하죠.”

정환봉(44) <한겨레> 기자는 지난달 21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열린 저널리즘특강에서 좋은 탐사보도를 끌어내는 방법으로 ‘플러스알파 고민하기’를 꼽았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초청으로 ‘한국기자상 정상급 수상자가 말하는 기획탐사보도’ 강의에 나선 정 기자는 ‘다른 루트(길) 찾기’ ‘외부와 결합하기’ ‘의제 종합하기’ ‘새롭게 패키징(분류·포장)하기’ 등을 자신이 활용한 플러스알파로 소개했다. 정 기자는 2011년 한겨레에 입사해 사회부24시팀, 한겨레21 시사팀 기자와 탐사기획팀장 등으로 일했다. 그는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공작 사건 연속보도’로 한국기자상 대상 등을, 2020년 ‘대한민국 요양보고서’로 관훈언론상 등을, 지난 3월 ‘살아남은 김용균들’로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등을 받았다. 국내 현역 기자 중 한국기자상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새로운 루트’에 어떻게 접근할지 고민

정환봉 한겨레 기자가 세명대 학술관에서 열린 저널리즘특강에서 ‘한국기자상 정상급 수상자가 말하는 기획탐사보도’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조벼리 기자

정 팀장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 보도가 ‘다른 루트’를 찾은 덕에 가능했다고 소개했다.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2년 12월, 국정원이 직원을 동원해 인터넷 사이트에 여론조작 목적의 댓글을 대규모로 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입사 3년 차 사회부 기자로서 ‘광진 라인’을 담당하던 그는 사건이 벌어진 ‘강남 라인’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서울 강남경찰서 등 관할 기관에 아는 사람이 없었던 그는 국정원 직원이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오유) 운영자와 접촉했다.

처음 연락했을 때만 해도 비협조적이었던 오유 운영자는 정 기자가 끈질기게 연락하며 설득하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대다수 언론보도가 국정원의 활동을 정당화하고 오유에 불리한 쪽으로 가자, 이 운영자는 정 기자를 만나 유에스비(USB) 하나를 내밀었다. 국정원 직원이 오유에 쓴 91개 글의 전문이 담긴 저장장치였다. 정 기자는 이를 전문 분석한 뒤, 2013년 1월 31일 ‘국정원 직원, 대선 글 안 썼다더니 야당 후보 비판 등 91개 글 올렸다’를 단독 보도했다. 해당 국정원 직원은 수사를 거쳐 기소됐으며, 이후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 등 고위 책임자들도 조직 차원의 조작 지시 등이 밝혀져 사법적 심판을 받았다.

정 기자는 “당시 다른 기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루트’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탐사보도에서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만약 강남경찰서를 출입했고 친한 경찰이 있었다면 그 사람 얘기를 듣는 데 취재 역량을 투입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았기에 악착같이 (오유) 운영자에게 연락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 기자는 핵심 취재원에게 자신을 끊임없이 각인시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오유 운영자에게) 타사 기자들도 연락했을 텐데, 그 기자들은 아마 저보다 덜 연락했거나 초기에만 연락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황이 수시로 바뀌듯 사람 마음도 하루에 열두 번씩 바뀌는데 (중요한 순간에) 옆에 있는 기자가 중요하다”며 “키(열쇠)를 가진 사람 곁에서 내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외부와 협업해 조사와 분석을 더하다

지난달 21일 세명대 학술관에서 열린 특강에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 등 청중이 정환봉 한겨레 기자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로 연결한 외부 청중을 포함해 50여 명이 참여했다. 조벼리 기자
지난달 21일 세명대 학술관에서 열린 특강에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 등 청중이 정환봉 한겨레 기자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로 연결한 외부 청중을 포함해 50여 명이 참여했다. 조벼리 기자

정 기자는 “때로는 외부와의 결합도 중요하다”며 자칫 피상적일 수 있는 주제에 과학과 숫자를 더해 의미 있게 보도한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2018년 7월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원 교수 연구팀과 협업해 ‘천안함,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한겨레21>에 연재했다. 정 기자는 당초 프랑스로 유학 간 천안함 생존 장병이 ‘사건의 진실’을 말하려 한다는 제보를 받고 접촉했다가 ‘정부 발표를 믿는다’는 얘기에 허탈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최광수 전 병장 등 살아남은 장병들이 극심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세월호 생존자들의 증상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건이 일어났던 계절이 돌아오면 심한 우울감을 느끼는 것, 폐쇄된 공간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 등이었다. 그는 취재 방향을 틀어 천안함 생존 장병의 고통을 보도하기로 하고, 과학적인 측정을 위해 김승섭 교수에게 공동 작업을 제안했다.

생존 장병 24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경험과 건강실태를 조사하고, 8명을 별도로 심층 인터뷰했다. 그렇게 완성된 보도는 2018년 관훈언론상 저널리즘혁신부문상을 수상했다. ‘생존 장병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이라크전에 참전한 미군의 7배’ ‘생존 장병 중 절반이 지난 1년 동안 자살 생각’ ‘생존 장병의 우울증은 일반인의 91.6배이며 수면장애는 83.2배’ 등의 내용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관훈언론상 심사위원회는 “대학연구소와 협업을 통해 다양한 데이터를 잘 활용하고 과학적으로 심층 취재 보도하는 등 새로운 방식으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정 기자는 “숫자로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기사가 힘 있게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얘기는 언론에 자주 나왔지만, 이 보도는 과학과 숫자를 더했기에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그는 “기시감이 있는 주제라도 다른 보도에 없는 요소들을 끌고 와서 보도하면 기존의 보도와는 다르게 기획이나 탐사 형태로 보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제를 종합하고 대안을 제시하다

정 기자는 기존에 많이 보도된 주제라도 의제를 종합하고, 현장 취재와 자료 분석을 함께 활용하면 강력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9년 한겨레 31주년 창간기획으로 보도한 ‘대한민국 요양보고서’를 예로 들었다. 이 보도는 1부에서 기자가 직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요양기관에 취업한 뒤 현장의 문제점을 생생하게 취재한 것을 전달했다. 2부에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매년 실시하는 현지 조사 보고서 800건을 입수해 전수 분석함으로써 구조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했다.

정 기자는 “취재 당시 ‘앞으로 5년간은 이 기획을 뛰어넘는 보도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현장을 현미경처럼 보여주고, 자료를 입수해 전수 분석하면서 거시적 관점을 담았으며, 대안을 고민하며 외국 사례도 담아 완결성 있는 보도를 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정 기자는 지난해 4월 윤석열 정부의 초대 내각 검증 취재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미국 유학용 ‘스펙’을 쌓기 위해 케냐의 대필 작가를 고용해 논문을 쓴 사실을 구글링(인터넷 검색)을 거쳐 밝혀낸 과정도 소개했다. 해당 대필 작가는 한겨레의 취재에 응하는 조건으로 50달러의 사례금을 요구했는데, 취재 윤리에 저촉될 우려가 있어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환봉 기자는 지난해 4월 윤석열 정부 내각 검증 취재 당시 구글 검색을 통해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의 논문을 대필한 케냐 출신 작가의 신원을 확인했다. 정환봉 제공
정환봉 기자는 지난해 4월 윤석열 정부 내각 검증 취재 당시 구글 검색을 통해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의 논문을 대필한 케냐 출신 작가의 신원을 확인했다. 정환봉 제공

기사의 논리를 세우는 ‘패키징’도 중요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이 진행한 질의답변 시간에 정환봉 기자가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벼리 기자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이 진행한 질의답변 시간에 정환봉 기자가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벼리 기자

정 기자는 지난해 4월 탐사보도팀장으로 임명된 후 기존의 사회문제를 새롭게 패키징한 보도를 잇달아 내놓았다. 산업재해로 1~3등급 장해를 입은 청년들의 문제를 다룬 ‘살아남은 김용균들’, 기자가 대부업체에 취업해 청년부채의 실상을 포착한 ‘저당 잡힌 미래, 청년의 빚’, 질병 산재가 인정되기까지 역학조사 기간을 전수조사한 ‘황유미들의 733년’이 대표적이다.

정 기자는 ‘살아남은 김용균들’ 취재에 앞서 왜 하필 청년의 산재에 주목하는지 논리를 분명히 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중증 장해를 당한 청년 노동자는 가장 긴 시간 동안 ‘노동력 100% 상실의 삶’을 보내야 한다는 것, 이들은 사실상 사망 직전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매년 1000명 가까이 나오는 사고 산재 사망자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갖는다고 정리했다.

청년부채 문제를 취재할 때는 다양한 당사자를 만나기 위해 기자가 직접 대부업체에 취업했다. 당시 정부의 청년부채 대책이 나온 뒤 ‘코인, 주식투자 등으로 돈을 탕진한 이들의 부채를 왜 갚아줘야 하느냐’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는데, 무차별적으로 취재원을 만나 실상이 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보도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해진 청년부채가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는 편견과는 달리 취업난, 주거난 등에 더 큰 원인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원칙을 지키는 자세

정 기자는 미국 에이치비오(HBO) 방송의 드라마 <뉴스룸>의 한 장면을 소개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2011년 미국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 당시 여러 언론사가 가브리엘 디 기퍼즈 하원의원이 사망했다는 오보를 냈지만, 드라마 주인공이 속한 보도국의 책임자는 “죽음을 확인해 주는 것은 뉴스가 아니라 의사”라며 미확인 속보를 거부하는 장면이다. 정 기자는 “오보를 내지 않는 건 사실 별로 티가 안 나는 일”이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들을 차곡차곡 해내는 일이 결국 플러스알파를 만들어 주는 본체”라고 말했다. 그는 “더 잘해보겠다는 욕심보다는 옳은 것을 추구하고 진실에 가깝게 쓰려는 욕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강연에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정윤채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이 취재원을 대할 때 유의할 점을 질문하고 있다. 조벼리 기자
강연에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정윤채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이 취재원을 대할 때 유의할 점을 질문하고 있다. 조벼리 기자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 이선재(28) 씨는 “취재하다 벽에 부딪히는 순간을 돌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라고 물었다. 정 기자는 “취재원이 예상과 다른 답을 해 이제까지 취재한 내용을 못 쓰게 되더라도, 원칙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여기가 막혔으니 다른 데 뭐가 있을까를 계속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나은 것이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사를 쓰기 직전에 자신이 기사의 가장 큰 반대자가 돼 보는 게 중요하다”며 “약간만 과장하면 엄청난 기사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진실은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대학원생 정윤채(25) 씨는 “사회적 참사의 유족들처럼 상처가 있는 취재원을 만날 때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정 기자는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방식은 (당사자에게) 통제권을 주는 것”이라며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보도하지 않겠다, 대신 당신이 원한다면 최선을 다해 보도하겠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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