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단양 약초꾼 강성열 씨가 산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이 이른바 삼정(蔘政)을 실시해 산삼의 채취와 유통 등을 국가 차원에서 통제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함부로 산삼을 채취한 심마니는 지금의 징역형에 준하는 처벌을 받았고, 조정에서는 산삼이 자라는 지역의 채취 시기와 입산 인원까지 조절하는 등 산삼의 관리를 중요한 국책사업으로 다뤘다고 한다.

실록에는 한반도는 산삼을 채취하는 곳으로 유명해 청나라의 봉황성을 지키는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찾아와 산삼 채취를 허가해달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정책은 일제강점기까지도 이어졌지만, 광복 후에는 산삼 채취 허가제도가 없어지면서 심마니는 허가받아야 할 필요가 없는 자유업이 되었다. 대신 지금은 심마니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래도 좋은 삼을 찾아 산을 타는 심마니, 약초꾼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강성열(52) 씨는 서울을 떠나 30년 전에 고향인 충북 단양으로 돌아와 전국을 돌며 삼을 비롯한 각종 약초를 캐며 살아가는 약초꾼이다. 그는 자신을 심마니가 아니라 약초꾼이라고 부른다. 전통 심마니처럼 삼을 캐기 위해 산에 들어가 며칠씩 묵기도 하지만, 산삼만 캐서는 먹고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장 주된 수입원이 버섯이라 심마니라고 불리는 게 민망하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산삼이 주된 수입원 중 하나인 건 여전하다. 한 번은 산삼 군락을 발견해 한꺼번에 14뿌리를 캐 5400만 원에 팔기도 했다. <단비뉴스>는 지난달 29일, 단양군 대강면 장림리에서 강 씨를 만났다.

지난 6월 강 씨가 소백산에서 산삼을 발견했을 때 동료가 찍어준 사진. 강성열 씨 제공
지난 6월 강 씨가 소백산에서 산삼을 발견했을 때 동료가 찍어준 사진. 강성열 씨 제공

‘기회의 땅’ 소백산 자락에서 나고 자라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시에 걸쳐 있는 소백산은 산삼이나 송이버섯 등 돈 되는 임산물이 많이 나기로 유명하다. 2007년에는 충청도 소백산 자락에서 239g짜리 초대형 산삼이 발견되기도 했고, 올해 6월에는 경북 영주와 인접한 경북 봉화에서 산삼 15뿌리가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 산에서 임산물을 캐 먹고 사는 약초꾼들에게 소백산은 일명 ‘기회의 땅’이다.

강 씨는 그런 소백산이 훤히 보이는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에서 나고 자랐다. 어려서부터 산을 타는 일은 자신 있었다. 타고난 체력에 수완도 좋아 산을 타며 캔 약초를 팔아 꽤 큰돈도 만졌다. 지난여름에도 산삼을 여섯 뿌리나 캤다. 사진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산삼은 약 20년, 그 옆은 18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했다. 강 씨는 정확한 것은 감정을 받아봐야 알겠지만, 이 정도면 수백만 원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강 씨가 올여름에 소백산에서 캔 산삼 여섯 뿌리의 모습. 위의 사진 속 산삼도 여기 포함되어 있다. 김창용 기자
강 씨가 올여름에 소백산에서 캔 산삼 여섯 뿌리의 모습. 위의 사진 속 산삼도 여기 포함되어 있다. 김창용 기자

초보에서 전문가까지

그도 시작부터 능숙하진 않았다. 비슷한 약초가 워낙 많아 헷갈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초보 약초꾼 시절, 흰머리도 검게 한다는 마가목을 울릉도까지 가서 배낭에 한가득 지고 돌아왔더니 아버지는 “그 나무는 잡목인데, 울릉도까지 가서 땔감만 가져왔느냐”고 핀잔을 줬다. 어느 날은 돼지감자를 한가득 캐 왔다가 어머니로부터 “싹이 나서 먹지도 못하는 걸 뭘 그렇게 많이 가져왔냐”는 타박을 듣기도 했다.

그랬던 강 씨가 약초꾼으로 산 지도 15년이 됐다. 이젠 떨어진 나뭇잎만 봐도 주변에 뭐가 있는지 대충 안다. 약초꾼들은 겨울부터 봄까지는 주로 도라지, 더덕, 하수오, 칡 등 뿌리 식물을 주로 캔다. 아래 사진은 지난 4월에 직접 채취한 적하수오다. 소백산 일대에서 채취한 적하수오는 하수오 중에서도 약효가 좋기로 유명하다. 사진의 적하수오는 무게가 약 5kg이다. 하수오는 보통 길이가 5~15cm, 굵기가 1~3.5cm, 무게는 600~800g 정도다. 사진 속 적하수오는 이른바 ‘초대형’이다.

강 씨가 지난 4월에 채취한 적하수오. 초대형으로 가격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강성열 씨 제공
강 씨가 지난 4월에 채취한 적하수오. 초대형으로 가격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강성열 씨 제공

초여름부터는 약초꾼들의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장마 전까지 산삼과 천마를 캔다. 초가을에 접어들면 송이, 능이 등 버섯을 채취한다. 단풍이 지고 나면 다시 봄까지 뿌리 식물을 캔다. 강 씨는 일 년에 200일 정도 산을 오른다. 이렇게 산을 자주 타다 보면 멧돼지를 만나는 등 위험한 순간도 적지 않다. 올가을에도 산에서 구덩이를 파는 멧돼지를 만나기도 했다. 멧돼지는 땀을 흘리지 못해 체온을 낮추고 기생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습한 지역에서 진흙 목욕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 씨가 올가을 구덩이를 파는 멧돼지를 만났을 때 찍은 사진이다. 강 씨는 멧돼지가 목욕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강성열 씨 제공
강 씨가 올가을 구덩이를 파는 멧돼지를 만났을 때 찍은 사진이다. 강 씨는 멧돼지가 목욕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강성열 씨 제공

약초는 없고, 도둑은 많아

하지만 요샌 일이 쉽지 않다. 우선 임산물의 절대적인 양 자체가 줄었다. 심마니나 약초꾼들은 나름의 철칙이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어린 식물을 채취하지 않는 일이다. 어린 삼을 보면 못 본 척 지나가는 게 산과 삼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그래야 약초가 번식할 수 있고, 후손들도 산삼을 캘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일반 등산객들이 약초나 삼, 버섯 등에 관심을 두고 무분별하게 채취하게 되면서 삼은 물론 칡이나 더덕까지 씨가 마르는 상황이다.

산의 생태계가 파괴되자 군청과 산림조합에서도 나섰지만 사실상 효과가 없는 상태다. 강 씨를 비롯한 단양 지역의 약초꾼들은 단양군 산림조합이나 군청에서 허가받은 산에서 임산물을 채취한다. 산의 어디에서 무엇이 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버섯이면 버섯, 삼이면 삼이 잘 자라는 곳에 종균이나 씨를 뿌려 임산물을 키우는 등 산의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산에 뿌리는 씨를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은 군에서 지원해주더라도 대부분은 약초꾼들의 몫이라 한계가 명확하다는 문제가 있다.

강 씨와 함께 산을 오르다 발견한 더덕과 도라지 씨방(―房)의 모습. 왼쪽이 도라지, 오른쪽이 더덕이다. 최근 더덕과 도라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산에 씨를 주우러 오는 사람이 많아 예전에는 지천이던 더덕과 도라지 씨방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김창용 기자
강 씨와 함께 산을 오르다 발견한 더덕과 도라지 씨방(―房)의 모습. 왼쪽이 도라지, 오른쪽이 더덕이다. 최근 더덕과 도라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산에 씨를 주우러 오는 사람이 많아 예전에는 지천이던 더덕과 도라지 씨방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김창용 기자

하지만 일반 등산객들이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다. 최근 정부가 불법 임산물 채취 단속을 강화했지만 사실상 효과가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경찰을 배치하고, 암행 드론을 띄워 불법 채취를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 씨는 “경찰이 산을 탈 수도 없으니 불법으로 채취하는 사람들은 도망가면 그만이고, 나무가 이렇게 우거진데 드론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산을 많이 탔는데 드론을 본 적도 없다. 그래도 몇몇 사람이 잡혀서 벌금을 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아직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기업의 임산물 시장 진출, 약초꾼에겐 또 다른 위기

이렇듯 강 씨를 둘러싼 상황이 변하면서 그의 생활에도 문제가 생겼다. 게다가 기업들이 인삼을 수입해다 파는 것도 모자라 산양삼까지 직접 키워 팔기 시작하면서 약초꾼인 그의 입지는 급격하게 좁아졌다. 임산물 자체가 그 출처나 나이, 가격 산정 기준 등을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알 수 없어 신뢰도가 부족한 상품인 탓에, 비교적 사회적 신뢰도가 높은 기업들이 임산물 시장에 진출한 뒤로 약초꾼들의 수익이 크게 줄었다.

수입이 예전만 못한 걸 체감한 그는 판매 경로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판매 경로 확대를 위해 주민과 가까워질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지역사회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지역사회를 지키는 일은 그에게는 곧 고향을 지키기는 일이기도 했다. 다행히 그 시도는 좋은 결과를 냈다. 이웃들은 판매 경로를 넓혀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강 씨는 술을 담그거나 즙을 짜는 등 가공을 거치면 손님들이 더 좋아하고, 남는 것도 많다고 말했다.

강 씨가 직접 가공해 판매하고 있는 상품들. 왼쪽은 그가 재배한 산양삼으로 담근 술이고, 오른쪽은 직접 채취한 도라지에 배를 섞어 짜낸 즙이다. 김창용 기자
강 씨가 직접 가공해 판매하고 있는 상품들. 왼쪽은 그가 재배한 산양삼으로 담근 술이고, 오른쪽은 직접 채취한 도라지에 배를 섞어 짜낸 즙이다. 김창용 기자

그래도 산에서 희망을 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현재 전국적으로 약 70~80명의 심마니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강 씨처럼 약초를 함께 캐는 약초꾼들을 포함하면 정확히 파악은 안 되지만 그 수가 많이 늘어날 것이다. 산의 상황이 변하면서 그나마 활동하던 심마니나 약초꾼들도 대부분 산을 떠나 새로운 일을 찾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강 씨는 아직 산에서 희망을 본다. 아끼는 사람에게 준 약초가 효과가 좋을 때 그는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그는 산의 생태계가 잘 관리되어 후손들도 좋은 약초를 채취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산에 돈을 뿌리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면서도 산에 갈 때면 늘 약초 씨를 챙긴다. 산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그는 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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