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도구에서 공예품으로…연구로 지켜낸 전통 빗자루의 가치

과거 빗자루는 마당과 골목, 집 안의 먼지를 쓸어내는데도 쓰였지만,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다. 나쁜 운은 쓸어내고, 좋은 운은 모아 담는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은 신문물이 들어오면서 사라져갔고, 전통 빗자루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값싼 중국산 플라스틱 빗자루, 버튼 하나만 누르면 편히 청소할 수 있는 진공청소기가 나오며 전통 빗자루도 그 자취를 감추어 갔다. 하지만 묵묵하게 전통을 지키고 있는 이가 있다. 70년 동안 전통 빗자루를 만들어 온 송향 이동균(81) 명인이다. <단비뉴스>는 지난 7일 이동균 명인이 운영하는 제천시 화산동의 ‘광덕 빗자루 공예사’를 찾았다.

점점 사라져가는 빗자루 재료들

제천 화산동에서 이동균 명인을 만난 것은 아직 동이 트기 전인 새벽 5시. 빗자루의 재료로 쓰일 갈대 채취에 동행하기 위해서다. 그는 제천시 두학동의 두학들에 자라난 갈대나 장평천 물길을 따라 자란 갈대를 사용한다. 그는 81살의 나이에도 아직 강가와 들판을 누비며 빗자루 제작에 쓸 원재료를 직접 채취한다. 질 좋은 재료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70년 동안 갈대를 다룬 장인의 ‘손맛’이 필요하다. 

이동균 명인이 제천시 두학동의 두학들에서 갈대를 채취하고 있다. 정예지 기자
이동균 명인이 제천시 두학동의 두학들에서 갈대를 채취하고 있다. 정예지 기자

채취한 갈대는 안의 보드라운 속대만 남긴다. 이 속대를 여러 번 털어내 불순물을 제거한다. 그리고 소금물에 삶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튼튼하고, 질기게 만든다.

채취한 갈대에서 겉껍질은 버리고 보드라운 속대만 남긴다. 정예지 기자
채취한 갈대에서 겉껍질은 버리고 보드라운 속대만 남긴다. 정예지 기자

빗자루의 손잡이에는 부들을 사용한다. 그는 부들도 직접 채취했다. 부들을 꺾으러 못에 들어가면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이 위험하다며 그를 말리곤 했다.

“연못 수통에 빠지면 나올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나는 어디가 위험한지 잘 알지. 평생을 해왔는걸.”

올해처럼 9월에 갈대를 채취한 것은 그의 빗자루 인생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통상 7월부터 갈대를 채취하기 시작해 8월 초에는 끝냈다. 갈대꽃이 피는 8월이 되기 전에 채취해야 속대가 곱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봄에는 가물어 갈대가 크지 못했고, 여름에는 비가 많이 와 갈대를 채취하지 못했다.

이동균 명인은 항상 제천시 두학동 두학들과 장평천 인근의 갈대를 채취하여 빗자루 재료로 사용한다. 정예지 기자
이동균 명인은 항상 제천시 두학동 두학들과 장평천 인근의 갈대를 채취하여 빗자루 재료로 사용한다. 정예지 기자

재료를 채취할 장소도 이제는 마뜩잖다. 산과 들 지천으로 자라던 갈대, 수수, 부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들을 채취하던 못이 있었는데, 그 못을 대형차로 흙을 부어 메워서…. 이제 갈대 나는 곳도 몇 없고…. 만들려고 해도 재료가 점점 없어져.” 

10대부터 80대가 될 때까지, 평생 해 와 손에 익은 일이지만 이제는 힘에 부친다. 갈대를 채취하는 일은 일당 10만 원을 주고 도와줄 일꾼을 구해 함께 작업한다. 갈대 속대를 빼내는 일도 가족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빗자루를 만들고, 손님의 손에 쥐어 주는 일은 오로지 이동균 명인의 몫이다. 건강도 걱정이다. 허리 디스크 때문에 올해는 두어 달 일을 쉬어야 했다.

12살 때부터 시작된 빗자루와의 인연

이동균 명인은 제천에서 지척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빗자루를 만들던 할아버지를 따라 12살 때부터 빗자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만드는 빗자루는 탄탄하고 깔끔했다. 마을 사람들이 재료를 한가득 주면서 빗자루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칭찬이 업이 됐지요.” 이동균 명인은 빗자루를 만들기 시작한 계기를 그렇게 말했다. 그가 빗자루를 만들어 내면 동네에 칭찬이 자자하게 퍼졌다. 남은 재료로 만든 여분의 빗자루는 팔았다. 그렇게 빗자루와 길고 긴 인생이 시작됐다. 

25살에 군에서 제대하고는 영월을 떠나 제천에 정착했다. 빗자루 사업을 정식으로 시작했다. 80년대까지는 빗자루 산업이 성행했다. 일 년에 빗자루 수천 개를 만들었다. 아예 동생 둘과 함께 빗자루 사업을 키워나갔다. 동생들은 막비를 만들고, 그는 솜씨가 좀 더 필요한 고급비를 만들었다. 손재주가 있다 보니 다른 공예품에도 관심이 생겼지만 잠깐이었다. 결국, 빗자루 만드는 일로 소명으로 삼았다.

“붓도 만들어 봤는데, 전문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더라고. 영역을 침범하면 그 사람이 괴롭죠. 그래서 만들어둔 붓만 두고, 더 만들진 않지. 빗자루만 하지.”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진공청소기가 나오고부터는 빗자루가 필수품이 아니게 됐다. 급격한 수요 감소로 생활고가 이어지자 다른 일을 해볼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빗자루 만드는 일로 돌아왔다. 6남매를 기르는 가장이었던 그는 생활고를 이겨 낼 돌파구가 필요했다. 빗자루도 단순 청소 도구에서 벗어나 ‘공예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쓰이는 대형 빗자루 대신 소장용으로 쓰일만한, 곱고 작은 빗자루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동균 명인이 만든 장식용 빗자루인 ‘아담꽃비’. 정예지 기자
이동균 명인이 만든 장식용 빗자루인 ‘아담꽃비’. 정예지 기자

그렇게 탄생한 것 중 하나가 장식용 빗자루 ‘아담꽃비’다. 한 뼘 조금 더 되는 작은 크기의 빗자루여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채취하는 시간은 차치하고, 이 작은 빗자루를 하나 만드는 데 2시간 정도가 걸린다. 

갈대를 모아 비 부분을 만들고, 손잡이 안쪽에는 부들을 넣는다. 부들과 갈대를 정갈하게 모아 실로 감는다. 튼튼한 빗자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로 묶는 작업이 중요하다. 엄청난 손아귀 힘이 필요하다. 단단하게 매두어야 보기도 좋고 튼튼하다. 설사 줄 하나가 끊어지더라도 망가지지 않고, 두고두고 쓸 수 있는 빗자루가 된다. 실로 빗자루를 다 꿰면 비 부분을 망치로 두드려 고르게 펴는 작업을 거친다. 평평하게 펴야 잘 쓸려, 제 역할을 다하는 빗자루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서야 빗자루 하나가 겨우 탄생하는 것이다.

“아주 애만 먹어요. 암만 돈 많이 받아도 품값이 안 나와.”

이동균 명인이 빗자루를 제작하는 공간이다. 이동균 명인의 오른편에 그가 직접 제작한 빗자루 제작도구 ‘조리대’가 놓여있다. 정예지 기자
이동균 명인이 빗자루를 제작하는 공간이다. 이동균 명인의 오른편에 그가 직접 제작한 빗자루 제작도구 ‘조릿대’가 놓여있다. 정예지 기자

전통 빗자루는 국가 무형문화재가 될 수 있을까?

이동균 명인은 빗자루로 제3회 전국 농어촌부업제품대회 장려상, 1991년·1994년 충북 농산물품평대회 금상, 제천시 공예경진대회 최우수상, 2009년 충북 공예경진대회 은상, 2008년 관광공예상품공모전 장려상을 탔다. 

명인 제09–228호, 충청북도 명장 제10-5호, 충청북도 우수공예 기능인 제95-5호, 대한민국 기능전승자 제2006–3호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충청북도 명장에겐 3년간 매년 200만 원의 기술 장려금이 지급된다. 충청북도 우수공예인에게는 각종 전시회 참가와 함께 예술행사 초청, 판로 지원 등이 이뤄진다. 2006년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대한민국 기능전승자로 선정되고는 매월 80만 원을 5년간 지원받았다. 

빗자루 수요가 점점 줄어들었던 시기도 이겨내고 빗자루를 공예품으로 승화할 수 있었던 것은 큰돈은 아니지만 기능인에 대한 각종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빗자루 공예품 제작을 위한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국가는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전통문화를 국가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한다. 그리고 기·예능 보유자, 보유단체도 지정해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게 한다. 전통은 젊은 세대의 관심에 비켜나 있고, 기능 보유자의 고령화로 전통문화 명맥이 끊길 위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동균 명인은 70년 동안 전통 빗자루를 만들어 왔고, 각종 상과 명인 타이틀을 받으며 예술적·기술적 능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아직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20여 년 전 국가 무형문화재 지정 검토 단계까지 올랐지만, 지정이 무산됐다. 그가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을까? 그는 희망을 품으면서도 후계자를 두는 것이나 무형문화재 지정에 회의적이다. 

“(국가 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 되면 좋죠. 그러면 기능 배우는 사람에게도 지원이 나오고요. 근데 되려나요? 그리고 빗자루 만드는 거 간단해 보여도 배우는 데 오래 걸려요. 한참 걸리죠. 막비 만드는 것만 배우려고 해도 5~6년은 걸리죠. 지금부터 가르쳐도 되려나 모르겠어요.”

이동균 명인이 전통 빗자루를 만든 지도 올해로 꼭 70년이다. 그 세월 동안 빗자루를 함께 만들던 이들도, 후계자도 떠나고 빗자루를 찾는 이들도 줄어갔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갈대의 ‘순정’을 지키며 전통 빗자루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전통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그 가치가 미래에도 이어지도록 연구해, 빗자루를 아름다운 공예품으로 승화시켰다. 잊혀 가는 전통이 현대에도 살아 숨쉬기를 바라며, 오늘도 그의 손에서는 갈대가 예술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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