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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인턴 아닌 탄탄한 일자리를
[제정임칼럼]
2015년 10월 12일 (월) 10:24:42 제정임 교수 jaesay@gmail.com
   
▲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

언제부턴가 나는 가방에 두 개의 손수건을 챙긴다.

하나는 내가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의 눈물을 닦기 위한 것이다.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 졸업 후에도 취업 준비를 계속하는 제자들을 만날 때 깨끗한 손수건이 종종 긴하게 쓰인다.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갖추려 온갖 '노오~오력'을 했는데도 서류에서, 필기에서, 면접에서 수십 번 '불합격 딱지'를 맞으며 쌓인 설움이 왈칵 터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를 위한 경쟁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청년들이 겪는 취업난은 각자의 노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소수의 안정된 일자리를 잡지 못하면 평생을 비정규직으로서 불안하고, 가난하고, 멸시당하는 삶을 살지 모른다는 '근거 있는' 공포가 이들을 압박한다. 어른들이 '눈높이를 낮춰서 가라'고 권하는 일자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가는 학자금 빚을 갚기도, 결혼하고 아이 낳는 미래를 그리기도 어려운 현실이 이들을 짓누른다. 그래서 싱그러워야 할 20대가 머리칼이 한 주먹씩 빠지는 원형탈모와 불면증,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통계청이 집계한 올 상반기 20대 실업자 수는 41만명, '청년공동행동' 등 관련 단체가 추정하는 실질 실업자 수는 120만명이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비정규직 기간 연장 등으로 '노동유연성'을 높이면 이들의 취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질 낮은 일자리' 비중만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젊은이들이 바라는, 정규직에 준하는 '좋은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에 읍소하거나 노동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대신 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과감하게 물꼬를 터줄 필요가 있다.

   
▲ 좋은 일자리를 위한 경쟁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 Pixabay

주변을 살펴보자.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서비스인데도 사람을 적게 쓰고 변변한 대우를 해주지 않아 이용자까지 피해를 입는 분야가 많다. 맞벌이 부부들의 최대 고민인 보육이 대표적이다. 교사 처우가 비교적 안정된 국공립은 전체 어린이집의 5~6%에 불과하고, 대다수 민간 시설 교사들은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보수에 하루 10시간 이상 혹사당하기 일쑤다. '아이들의 첫 선생님'이 받는 열악한 대접은 아동 학대, 안전사고로 이어져 부모들을 전전긍긍하게 한다. 국공립 시설을 대폭 늘리고, 민간 보육교사의 고용 확대와 처우 개선을 제대로 지원한다면 좋은 일자리가 늘고 '애 키우는 걱정'을 줄여 저출산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격무와 스트레스로 사회복지 공무원의 자살까지 잇달았던 일선 복지관서, 불안정한 신분의 기간제 교사가 급증한 초·중·고교, 시설과 인력 부족으로 제 구실 못하는 공공 의료, 비정규직 연구원과 저임금 강사가 수두룩한 국책 연구기관과 대학들. 이런 영역에서 사람을 충분히 뽑고 처우를 낫게 하면 청년이 환호하는 일자리를 늘리면서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정부가 충원 계획을 밝힌 어린이집 대체 교사, 시간 선택 공무원 등과는 수준이 다른 '탄탄한 일자리'를 적어도 10만 개 이상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돈인데, 정부와 정치권이 공언한 대로 청년 일자리를 '최우선 국가 과제'로 삼는다면 예산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정부는 추경을 포함한 올해 예산에 약 2조원의 청년 일자리 사업을 편성했으나 '채용과 연결되지 않는 인턴 지원 등으로 고용 창출 효과가 별로 없다'는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 내년에도 2조1000억원가량 잡힌 이 예산을 인턴이 아닌 '진짜 일자리' 창출에 돌려야 한다. 또 사회간접자본(SOC)과 국방 예산 등은 수십조 혈세를 낭비한 방위산업 비리와 4대강·자원외교 사업을 교훈 삼아 최대한 깐깐하게 편성하고, 청년 일자리 재원을 늘려야 한다. 다른 복지 재정까지 감안하면 세금을 깎아줘도 투자와 고용을 늘리지 않는 대기업에 대해 비과세 감면을 줄이고 법인세 최고 세율을 높이는 등 증세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서 고용이 늘면 청년들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내수 경기도 활기를 띨 것이다. 그러면 민간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나는 선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공공 일자리가 더 많은 민간 일자리의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과도한 초과 근로를 줄여 추가 채용을 유도하고, 대기업 부당 거래를 바로 잡아 중소기업의 고용 여력을 키우고,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도 꾸준히 추진하면 청년 일자리 사정은 획기적으로 나아질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기업들은 자기네가 일자리를 만든다고 주장하지만, 진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물건을 사주는 소비자"라고 말했다. 다수 소비자, 즉 노동자가 쓸 돈이 있어야 기업도, 나라 경제도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회 진출 문턱에서 수없이 거절당하며 눈물을 삼키는 청년들이 노동자로서, 소비자로서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과감하게 마중물을 부어주기 바란다.


조선일보 The Column에 실린 글입니다. 

 

[이정화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환경팀 이정화입니다.
늘 현장에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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