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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에 갇힌 사람들
[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19년 퓰리처상 수상작 – 갱들의 나라에 갇히다
2021년 07월 15일 (목) 16:50:12 김세훈 기자 domenico7@naver.com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헨리는 새로운 삶을 찾아 엘살바도르에서 미국으로 왔다. 갱과 마약에 휘둘리며 인생을 내버리기 싫었다. 뉴욕 롱아일랜드에 정착해 학교를 다니며 미래를 꿈꿨다. 헛되었다. 열아홉 살 되던 해, 헨리는 미국에서 추방됐다. 지역 갱 조직에 연루됐다는 혐의였다.

카를로타는 아들을 아꼈다. 에콰도르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어렵게 아들을 낳았다. 초등학교에 보내서도 해코지를 당할까 걱정돼 아들 손을 잡고 다녔다. 헛되었다. 열다섯 살, 아들은 숲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마체테(벌목용 칼)로 베인 흔적이 있었다.

알렉스는 늦은 나이에 고등학생이 됐다. 커피 밭에서 일하며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아 온두라스를 떠났다. 대학을 졸업해서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해내는 삶을 동경했다. 헛되었다. 열아홉, 알렉스는 이민자 구치소에 구금됐다. 갱단 표식으로 알려진 ‘뿔 달린 악마’를 그렸다는 이유였다.

범죄 조직 MS-13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탄생했다. 1980년대 중남미 국가 엘살바도르에서 내전이 발발하자, 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자들이 그곳에서 갱단을 만들었다. 낯선 곳에서 이민자끼리 뭉쳐 서로 지켜주자는 목적이었다. 세력이 커지며 미국 전역에 지부를 두게 됐다. 세를 넓히려면 힘이 필요했다. 날이 넓은 마체테를 써서 사람들을 죽였다. 뿌리를 잊지 말라고 상징을 발명했다. 머리 양쪽으로 뿔이 솟은 악마 문양과 더불어 엘살바도르의 지역 번호 ‘503’을 몸에 그리게 했다.

범죄도시에서 살고 죽는 세 사람의 이야기

   
▲ 3회에 걸쳐 연재된 ‘갱들의 나라에 갇히다’ 기사의 1회.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 헨리의 이야기를 영상과 사진에 함께 담았다. 헨리의 신변을 우려해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 <프로퍼블리카>

미국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의 한나 드라이어 기자는 2018년 MS-13의 잔혹함과 미 수사당국의 미흡한 대처를 주제로 세 편의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이민자를 몰아내는 정책에 몰두했다. 2017년 트럼프는 롱아일랜드의 브렌트우드를 찾아 이민자들로 구성된 갱단이 이곳을 “피로 얼룩진 학살 현장”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들이 미국에 있으면 안 된다고도 했다. 경찰들이 참석한 행사 자리였다.

한나 드라이어가 취재에 나선 계기다. 범죄 조직을 쫓아낸다는 명분으로 반(反) 이민 정책을 강화하면 되레 장삼이사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 생각했다. 갱단에서 벗어나고자 경찰에 정보를 흘려도 내부 고발자는 당국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자식이 사라져도 이민자 부모는 경찰의 도움을 얻을 수 없다. 사소한 이유로 학생들은 MS-13과 얽혀 추방된다.

헨리는 엘살바도르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며 살았다. 갱단에서 끼니를 챙겨주고 교복도 사줬다. 그 대가로 일을 시켰다. 사람을 죽이라고 했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다른 갱단과 시비에 휘말려 살해 협박을 받았다. 도망치다시피 미국에 갔다. 그곳에도 조직이 있었다. 조직원은 갱단을 마음대로 떠나지 못했다. 새 삶을 살고 싶었다. 경찰에 내부 정보를 넘겼다. 기대와 달리 이민자 구치소에 끌려갔다. 그도 MS-13 조직원이라는 이유였다. 이듬해 헨리는 고향 엘살바도르로 추방됐다.

카를로타는 에콰도르 출신이다. 미국에 와서 아들을 키웠다. 공장에서 일하며 겨우 먹고 살았다. 아들은 학교에 녹아들려고 애썼다.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고, 팔에 문신을 새겼다. 교내 갱단의 관심을 끄는 화근이 됐다. 그들은 숲으로 아들을 불러냈다. 그날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카를로타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지만, 수사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으레 있는 이민 청소년의 가출이라 여겼다. 카를로타는 홀로 아들을 찾아다녔다. 반년 후, 아들은 TV에 나왔다. 숲에 묻혀 있었다. 마체테로 얼굴을 베이고 사지가 잘린 상태였다.

알렉스는 온두라스에서 살았다. 주변에 변변한 식당이나 은행도 없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아버지가 돈을 보내줬다. 돈이 불어나니 갱단의 표적이 됐다. 어머니를 위협하고 삼촌을 죽였다. 두고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브로커를 구해 미국으로 가족을 빼돌렸다.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렉스는 열여덟에 고등학생이 됐다. 커피 밭에서 일하며 하루 3달러를 겨우 버는 삶과 작별하고 뭔가 멋진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양복 입은 사내들이 집에 들이닥쳤다. 그를 이민자 구치소에 가뒀다. 학교 마스코트인 악마 문양을 자신 가방에 그렸더니 MS-13의 표식이라며 그를 갱단의 끄나풀로 엮었다. 스무 살, 알렉스는 혼자 온두라스에 돌아왔다.

한나 드라이어는 세 사람의 이야기로 2019년 퓰리처상 피처 라이팅(feature writing)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피처’는 기사의 장르다. 우리말에 상응하는 단어는 없으나, 굳이 옮기면 ‘기획기사’ 쯤 될 것이다. 다만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영미 언론에서는 피처(feature)와 뉴스(news report)를 구별한다. 피처는 한 가지 사안을 오랫동안 취재해 심층을 드러내는 기사다. 시의성에 목숨을 거는 뉴스와 다르다. 그래서 피처는 ‘보도’(reporting)가 아니라 ‘쓰기’(writing)에 가깝다.

한나 드라이어의 MS-13 시리즈는 4월부터 12월까지 8개월에 걸쳐 세 차례 연재됐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을 생생히 담아내려고 그들의 주변을 샅샅이 취재했다. 취재 후기를 보면, 한나 드라이어는 헨리 한 사람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그를 아는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거부하는 교사진을 설득하기 위해 눈보라가 치는 날에도 학교를 찾았다. 그 결실이 세 편의 피처다.

내러티브로 풀어낸 이야기

   
▲ 2019년 5월 28일 미국 컬럼비아대 도서관에서 열린 2019 퓰리처상 시상식에서 한나 드라이어 기자(왼쪽)와 리 볼링어 컬럼비아대 총장(오른쪽)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퓰리처상위원회

‘MS-13에 대한 수사 당국의 미흡한 조처로 일상이 무너진 엘살바도르인 이민자들의 모습을 강력하고 울림 있는 내러티브로 그려냈다.’

퓰리처상 심사위원회는 선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흔히 ‘내러티브’라고 하면 소설 문장처럼 독자에게 이야기하듯 쓴 기사를 떠올린다. 실제 세 편의 기사는 형식과 내용 모두 소설을 닮았다. 연재물 분량을 합하면 A4 용지 기준 61쪽으로, 중편소설 한 편이 나온다. 내용 면에서도 세 기사는 각각 헨리와 카를로타, 알렉스의 관점을 축으로 삼아 그들의 사연을 전한다.

2010년대 초반 국내에도 내러티브 저널리즘이 소개됐다. 중앙일보는 2010년 ‘내러티브 저널리즘 리포트’라는 문패를 내걸고 내러티브 기사 형식을 들여왔다. 기사 첫머리에 따로 박스를 두어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칸을 만들고 그들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름이 복잡해서 책 앞머리에 인물을 밝혀 두는 러시아 소설이 떠오른다. 

다만 내러티브는 기사를 소설처럼 꾸미는 기교에 머물지 않는다. 내러티브는 정보를 조립하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기사는 중요한 정보를 요약한 다음, 세부 사실을 나중에 알려준다. 이를 역피라미드 구조라 부른다. 필요한 정보만 빠르게 전달한다. 천편일률 스타일에 맥락 없는 이야기로 흐른다는 단점도 있다. 그 대안이 내러티브다. 미국 미주리대학 저널리즘스쿨이 발행한 저널리즘 교과서에는 역피라미드 구조와 내러티브 형식에 대한 소개가 나란히 실려 있다. 달리 말해, 내러티브는 기예가 아니라 구조다.

역피라미드 구조가 삼각형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습이라 하면, 내러티브 형식에서는 정보를 정돈하는 방식이 자유롭다. 예컨대 한나 드라이어 기자가 쓴 세 이야기는 마름모꼴이다. 처음에는 개인 이야기로 출발한다. 헨리가 교사에게 몰래 범죄 사실을 털어놓는 장면, 카를로타가 아들과 행복하게 지내던 때, 알렉스가 아직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등장한다. 다음에는 맥락이 넓어진다. 세 인생을 뒤흔든 MS-13과 수사당국의 이야기가 나온다. 마지막으로, 세 사람에게 돌아간다. 사회가 남긴 흔적들이 그들 삶에 각인되어 있음을 깨우쳐 준다.

헨리, 카를로타, 알렉스의 이야기는 사사로운 일화가 아니다. 문학의 경지를 넘보겠다며 그들 내면을 함부로 쏟아내지도 않는다. 한나 드라이어가 진정 보여주려 했던 것은 반 이민 정책으로 재생산되는 차별과 폭력의 구조다. 그 본질을 포착하기 위해 사람을 들여다봤다. 사회 구조가 그들 삶의 결을 바꾸어놓은 지점을 찾아내려 했다.

여기에 이르러 기자가 다루는 사실의 범주는 확대된다. 한나 드라이어의 기사가 ‘울림 있는 내러티브’로 전달된 것은 치밀한 취재 덕이다. 사실에 기초한 문장으로 인물이 놓인 상황을 구현했다. 전문가 멘트, 어설픈 통계, 일회용 사례를 얼기설기 엮어서는 닿지 못할 글쓰기다.

이야기의 힘, 프로퍼블리카의 영향력

<프로퍼블리카>는 후속 보도로 유명한 매체다. 자신들이 보도한 기사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소개한다.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화면 상단에 임팩트(impact) 탭이 있다. 불의를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바꾸도록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매체의 철학이라고 안내한다. 그들은 따로 ‘백서’를 작성했다. 26쪽 분량으로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소상히 논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 대목을 발췌 요약하여 옮긴다.

‘취재 과정에서 (사회) 문제가 분명히 밝혀졌을 때,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드러날 때만, 기자는 그 문제와 대안에 관해 독자의 주의를 환기할 수 있다.’

세 편의 피처가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대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모범 사례를 그러모아 앞으로 나아갈 비전이라고 내놓지도 않았다. 다만 새 삶을 갈구하는 청년, 아들을 잃은 어머니, 미래가 좌절된 학생을 좇아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추적했다. 문제를 선연하게 드러낸 이 기사를 읽은 독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대안을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2018년 4월 6일 헨리는 법정에 섰다. 추방 여부를 결정하는 날이었다. 이날 재판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한나 드라이어의 기사가 실린 <뉴욕매거진> 한 부가 이민세관단속국(ICE) 변호사와 헨리 사이에 놓였다. 판사가 내린 결정은 이례적이었다. 기사에 나온 사람들의 증언을 듣기 전에는 헨리의 거취를 정할 수 없다고 했다. 헨리가 증인을 모으는 데 두 달 시간을 줬다.

그럼에도 헨리는 추방 명령을 받았다. 어릴 적 살인 행위를 참작해주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엘살바도르에 돌아가도 그 곳의 갱단이 헨리를 죽일 가능성은 낮다고 판사는 판단했다. 2019년의 판결은 법정 밖에서 뒤집혔다. 독자들이 성금을 보냈다. 한화로 약 2800만원이 모였다. 헨리는 유럽으로 망명해 새 삶을 찾았다. 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닐 계획이라고 했다.


편집 : 신현우 PD

[김세훈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편집기획팀 김세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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