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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려는 청년들의 '진짜 진보론'
[마음을 흔든 책] 김창인 외 '청년, '리버럴'과 싸우다'
2018년 04월 16일 (월) 20:20:57 나혜인 기자 nahyein8@gmail.com

“사람들이 왜 진보를 싫어하는 줄 알아? 맨날 지기 때문이야.”

미국 드라마 <뉴스룸>에서 앵커로 등장하는 윌 매커보이는 극중 토론회에서 진보 쪽 논객 섀넌에게 이렇게 쏘아붙인다. 한국에서는 진보로 번역하지만, 원작 대사에 따르면 섀넌은 리버럴(liberal), 곧 자유주의자다. ‘리버럴’은 미국에서 민주당이 대표하는 진보진영을 일컫는다. 섀넌은 “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나라냐”라는 대학생 방청객의 질문에 당당히 “다양성과 기회”라고 답한다. 평소 손석희 같은 냉철한 캐릭터인 매커보이는 이 대목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섞어 일갈한다. “그렇게 잘난 ‘리버럴’인데, 왜 허구한 날 지고 앉아있냐?”

   
▲ 미국 드라마 <뉴스룸> 시즌1 첫 회에서 진보 쪽 논객 섀넌(왼쪽)을 쏘아붙이고 있는 앵커 윌 매커보이(제프 다니엘스·가운데). ⓒ HBO

<청년, ‘리버럴’과 싸우다>는 극중 매커보이처럼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오늘날 진보세력을 청년의 눈으로 비판한 책이다. ‘진보라고 착각하는 꼰대들을 향한 청년들의 발칙한 도발.’ 부제부터 자극적인 이 책은 한국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청년의 새로운 시각으로 극복해보려는 20대인 김창인, 이현범, 전병찬이 썼다.

이들은 ‘안타깝지만 대한민국 진보는 실패했다’며 그 원인을 유시민으로 상징되는 ‘리버럴’에서 찾는다. 개인주의와 자유시장, 탈국가-탈민족 등 리버럴이 말하는 진보는 개인을 가장 자유로운 존재로 상정하지만, 공동선을 고민하는 데 소극적이고 자본주의의 병폐를 방관해 ‘헬조선’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위 ‘민주개혁세력’이라 불리는 한국의 리버럴은 87년 민주화를 이끌고 젠더, 인종, 소수자 등 진보 의제를 다양하게 던졌지만 여전히 암울한 한국 사회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에도 10년간 수구보수세력이 집권했고 나름대로 개혁을 꿈꾸던 김대중·노무현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이명박·박근혜에게 정권을 내줬다.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구호를 내세워 권력을 잡은 문재인·민주당 세력 역시 유럽에서는 중도보수쯤으로 분류되는 리버럴이다. 이보다 좀더 왼쪽에 있는 정의당은 리버럴과 연합해 입각하는 것에 목표를 두거나, 소수의 진보 의제를 사회에 말하는 수준에 의의를 두는 정도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것은 ‘상식’과 ‘정상’에 그칠 뿐 ‘앞으로 더 나아간다’는 진보가 아니다.

   
▲ 책 <청년, '리버럴'과 싸우다>는 새로운 진보에 '리버럴'이 설 자리는 없다고 말한다. ⓒ 시대의창

저자들은 리버럴의 한계가 ‘포스트모던’이라는 낡은 사고 때문이라고 말한다. 탈근대·탈이념·탈권위를 앞세운 포스트모던이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만 꿈꾸다 ‘옮은 것’에 관한 고민을 무디게 했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은 애초에 진리가 없는 시대 조류다.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찾기보다 ‘나’를 위한 변화가 중요하다.

개인주의적 자유, 탈공동체, 상대주의와 다양성을 우선하다 보니 어떤 ‘옮음’을 주장해도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 타인에게 열성적으로 진리와 가치를 제시하고 설득하는 사람은 ‘꼰대’ 취급을 받는다. 담론의 장이 넓어져도 결론은 ‘너도 옳고 나도 옳다’고 자족하는 데 그친다. ‘일베’가 수명을 유지하고, 적폐청산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들리는 것도 포스트모던 특유의 ‘무가치성’ 탓이다.

한국의 진보진영 역시 언제부터인가 ‘주장’을 포기하고 있다. 스스로 옳음을 증명하려는 노력보다 세상에는 우리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며 다양성의 관점에서 존중하고 이해해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진보가 진정 시대의 전환을 원한다면 다양성을 넘어 ‘옳은 것’을 적극적으로 갈망하고 기득권을 부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깨뜨려야 한다고 말하는 한국 사회의 포스트모던은 중도주의, 합법주의, 자유민주주의, 비폭력주의 등 크게 네 가지다. 내리막길에서 기어를 중립에 두면 굴러떨어지는 자동차처럼 이미 보수 쪽으로 기운 한국 사회에서 어설픈 중도주의는 기득권을 더욱 공고하게 할 뿐이다. 어렸을 때부터 주입되는 법치주의 역시 사회 진보를 위해서는 보다 넓은 해석이 필요하다. ‘옳은 행동’을 먼저 하고 법이 이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법을 바꿔야지, ‘합법’에 갇혀 목적과 가치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수가 독점하고,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기득권 수호 체제일 뿐이며, 폭력이 금기시되는 시대지만 폭력투쟁 없는 진보는 역사상 없었다며 우리 사회가 구조적 폭력을 은폐하려는 지배권력에 저항하는 ‘대항폭력’을 어떻게 수용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 저자 전병찬씨는 <청년, '리버럴'과 싸우다> 에필로그에 '박근혜가 구치소로 가고 문재인이 대통령이 돼도 노동자, 성소수자 등 소외된 사람들의 실체는 부정당하고 추상적인 정의와 대의만이 환영받았다'며 '바뀌어야 하는 건 정권 이전에 사회'라고 적었다. ⓒ flickr

68혁명으로 시작된 포스트모던이 그 시대의 진보였다면, 이제는 그마저도 변혁의 대상이 됐다. 저자들이 생각하는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이 사회와 떨어져 살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유를 전체적으로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오늘날 진보라 자임하는 리버럴에 가하는 이들의 비판은 촘촘하지만, 대안은 ‘진리의 정치,’ ‘진짜 삶을 바꾸는 정치’ 등 다소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세대의 주역인 청년들이 새로운 생각을 내놨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저자 역시 “아직 철학적으로 적들의 논리를 완전히 부수지는 못했다”면서 “그럼에도 기존 문법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며,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세대에게 부름을 받아야 찾아온다”고 역설한다.

<뉴스룸>에서 섀넌을 한참 쏘아붙이던 매커보이는 평소 그답지 않은 모습에 놀란 청중 앞에서 나지막이 읊조린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나라가 아니지만, 과거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 우리는 옳은 것을 위해 싸웠고, 도덕적 이유로 법을 만들기도 하고 없애기도 했어요. 가난과 싸웠지, 가난한 사람들과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파편화한 개인이 각자도생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 진짜 진보에게 중요한 것은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다양성이 아니라 공동선, 진짜 옳은 것을 향한 치열한 고민과 설득, 투쟁이다. 포스트모던이 근대라는 ‘정’의 ‘반’이었다면, 이제는 ‘합’을 찾아야 한다.


편집 : 양영전 기자

[나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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