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⑦ 2021 경향포럼 ‘생존 가능한 지구로 가는 길’

“기존 원자력발전소를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쓸 수는 있겠지만 새롭게 원전을 만드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아까 그래프에 나왔듯, 원자력은 현재 절대적으로 가장 비싼 에너지원입니다. 그리고 핵 확산의 위험, 방사능 오염 사고의 위험 등 추가적 리스크가 막대합니다. (아직 기술 개발 단계인) 소형원자로(SMR) 역시 재생에너지원과 비교해 경제성이 없습니다. 빌 게이츠가 SMR 활용을 주장하며 재생에너지의 가능성을 경시하는데, 그는 SMR 개발 회사에 투자하고 있어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죠.” 

23일 오전 8시 반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1 경향포럼: 기후위기의 시대-생존 가능한 지구로 가는 길’에서 마이클 만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행사장과 화상으로 연결한 토론에서 진행자인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짓고 있는 한국’에 관해 묻자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더 이상 잘못된 길로 가거나 막다른 길로 접어들면 안 된다”며 ‘원전 대안론’을 일축했다. 만 교수는 ‘하키스틱 곡선’ 등을 통해 기후변화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대표적 학자로 <하키스틱과 기후전쟁> <신 기후전쟁> 등을 썼다. 

석탄·원자력 발전소 더 지으면 탄소중립 불가능 

▲ 아직 기술개발 단계인 소형원자로(SMR)가 기후위기를 막을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에 관해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하는 마이클 만 펜실베니아주립대 교수. ⓒ 김지윤

만 교수는 석탄발전소와 관련, “최근 G7(선진 7개국) 정상이 모여서 더 이상 석탄에 자금을 댈 수 없다고 선언했다”며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지금 당장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7기의 석탄발전소를 짓고 있는 한국에 관해) “탄소 배출을 곧바로, 대폭적으로 향후 10년간 줄일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하는데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다면  탄소중립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에 앞서 ‘신 기후전쟁: 지구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코로나19가 끝나면 또 다른 (기후)위기가 펼쳐질 것”이라며 “더 끔찍한 상황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 당장 긴급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구공학과 같은) 기술적 해법이 아니라 정치적 의지가 해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재생에너지 기술을 활용해 얼마든지 우리 문명을 탈탄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만 교수는 1982년 미국 최대 정유회사 액손모빌의 사내 과학자들이 ‘재앙적인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한 기록을 인용하며 “지난 50년간 우리는 기후위기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액손모빌을 포함한 화석연료 회사들이 대중에게 진실을 말하는 대신 엄청난 돈을 들여 과학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거짓정보를 알렸기 때문에 대응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유엔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과학자들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1.5도 상승’을 ‘재앙적 미래’의 임계점으로 보고 있는데, 2018년까지 1.0도가 상승했고 2021년에는 1.2~1.3도 상승이라는 추정이 나오기도 했다. 

‘기후변화 부정론’에 이은 ‘신 기후전쟁’ 

"지난 수십 년 동안 화석연료 기업들과 (이들의 지원을 받은) 정치인들이 거짓정보를 퍼뜨렸습니다.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보수적 언론매체들은 계속해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왜곡된 뉴스를 내보냈죠. 그런데 더 이상 과학적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게 된 지금은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대신 우리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신 기후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만 교수는 기후위기 대응을 방해하는 세력이 ‘지구온난화의 긴급성을 무시하고, 과학적 불확실성을 과대평가하며, 기후변화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굳이 화석연료를 포기하지 않아도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잘 적응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등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또 환경운동가 등 기후위기 대응 진영을 서로 싸우게 만드는 '분열 전략'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이클 무어 감독이 1년 전 재생에너지를 공격하는 영화를 만든 것을 대표적 예로 들었다. 만 교수는 화석연료산업과 이해관계가 있는 연구소와 머독 소유의 미디어기업 등이 기후변화행동가들을 분열시키는 싸움의 배경에 있다고 지적했다.

▲ 생존 가능한 지구를 위해 각국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토론 참가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홍종호 교수, 마이클 만 교수, 야닉 글레마렉 녹색기후기금(GCF) 사무총장, 데이비드 월리스 웰스 뉴아메리카 연구원, 에인절 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 ⓒ 이정민

면도날만큼 아주 얇은 시간만이 남았다 

“거대한 전환의 시기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제 시간에 해낼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면도날만큼 아주 얇은 시간만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희망은 있습니다.” 

‘위대한 전환: 회복력과 3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화상 강연에 나선 세계적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 경제동향재단 이사장은 “전기의 구매자와 판매자가 따로 있는 시장이 아니라 모두가 에너지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네트워크의 시대로 가고 있다”며 “유가만 치솟아도 전체 경제가 위태로워지는 중앙집권형 화석연료 경제시스템에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에너지기업들이 전 세계에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정유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투자한 돈은 모두 회수할 수 없는 좌초자산이 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리프킨 이사장은 “약 40조 달러의 어마어마한 기금을 보유한 미국 연기금 회사와 약 20~30조 달러를 보유한 민간 보험회사들이 발 빠르게 화석연료 투자를 회수하고 이제 새로운 에너지 시장을 노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화석연료에 투자해 많은 손해를 본 금융·보험 분야의 CEO(최고경영자)들이 이제 새로운 그린 채권에 투자하고 싶어 한다”며 “투자 기회를 노리는 돈들이 재생에너지 시장을 맴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 <노동의 종말> <글로벌 그린 뉴딜> 등을 쓴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 경제동향재단 이사장이 ‘2021 경향포럼’에서 화상으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김정민

기후위기 심각하지만 해결의 모멘텀 구축  

“대기라는 것은 굉장히 광활해 보이지만 사실 대단히 얇은 막에 불과합니다. 자동차 최대 속도로 달리면 5분 만에 대기권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죠. 우리는 이 얇은 하수구에 매일 1억6200만 톤(t)의 이산화탄소를 쏟아 붓고 있습니다. 이제는 히로시마급 원자폭탄이 매일 60만 개 폭발하는 것과 동일한 열에너지가 대기에 갇혀 있어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기후위기 해결을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를 주제로 한 화상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후위기는 매우 시급한 위기지만 그럼에도 매우 강력한 모멘텀(변화의 탄력)이 구축되고 있음을 긍정적 신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약으로 복귀하면서 드디어 정치적 변곡점이 생겼고 새로운 시대를 열 기회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 기후변화의 위험을 널리 알린 공로로 IPCC와 함께 2007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기후위기 해결을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라는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그는 달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청중에게 ‘대기가 얼마나 얇은지’ 설명했다. ⓒ 김정민

그는 “투자자들도 새로운 시장을 환영하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시민들이 거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기후위기 저지 움직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며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 또한 소비자들의 압박에 못 이겨 발 빠르게 탈탄소화하고 있는 고무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 행동을 하지 않을 때의 경제 리스크는 갈수록 커질 것이라며 “특히 무역 중심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 같은 나라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제대로 못할 경우 (유럽·미국의 탄소국경세 도입 등으로)경제 전체가 발목 잡힐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식량난 예고하는 기후위기, ‘공평한 분배’ 고민해야 

‘기후변화, 어떻게 왔고 어디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강연한 호프 자런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세계의 과도한 식량 소비 욕구가 기후위기를 초래하고 식량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식량 부족과 기아 현상은 인류가 식량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라며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식량 생산 및 분배 방식은 ‘더 많은 곡물 생산’이 아닌 ‘공평한 분배’”라고 강조했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등의 저서로 유명한 자런 교수는 “1970년 이후 세계 인구가 2배 증가하는 동안 식량 생산량은 3배 증가했는데, 육류 생산이 급증한 탓에 전체 식량의 40%가 동물 사료로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지난 50년 동안 소고기 생산량이 25% 증가했다며 “동물 사료를 줄이고 인류가 소비하는 식량을 늘려야 기후위기와 기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노르웨이에서 화상으로 강연하고 있는 호프 자런 오슬로대 교수. 그는 ‘인간이 왜 식량을 생산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에서 공평한 분배가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 김지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많은 국가가 ‘탄소중립 달성’에만 집중하는 흐름을 비판하며 “기후변화가 인권위기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탄소 사회의 종말>을 쓴 그는 “기후위기를 인권문제로 보는 것은 기후위기 피해를 천재에 의한 ‘불운’으로 보지 않고 인재에 의한 ‘불의’로 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엔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이 “부자들은 돈으로 생존을 사고 빈곤층의 인권은 사라질 것”이라고 한 말을 인용, “기후정의(climate justice) 관념을 국내외에 적용해 기후인권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박병석 국회의장, 김부겸 국무총리, 오세훈 서울시장이 축사를 했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야닉 글레마렉 녹색기후기금(GCF) 사무총장 등도 기조강연에 나섰다. 이날 행사에는 약 300여 명의 시민이 줌(ZOOM) 화상회의를 통해 청중으로 참여했고 각 당  원내대표와 정부 인사 등 30여 명이 현장에 자리했다. 

▲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1 경향포럼’에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 교수가 제러미 리프킨 경제동향재단 이사장,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화상 대담을 하고 있다. ⓒ 김정민

편집 :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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