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장애인’

▲ 정진명 기자

“둥글게 둘러앉아 기도하면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다.” 오글라라 라코타족 데이브 추장이 한 말이다. 인디언들은 원이 가장 신성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생명의 고리도 하나의 원이다. 원 안에 있으면, 생명체는 각각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다. 인간은 인간대로, 자연은 자연대로 앞뒤를 구분 지을 수 없으며, 위아래로 나눌 수도 없다. 그야말로 평등한 상태가 된다. 원이 가지는 강력한 힘은 생명 자체를 존중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도 원의 힘을 은연중 믿는다. 긍정적인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도 맥락이 비슷하다. 동의를 구할 때도 동그라미를 그려서 보여주고, 풍요와 풍작을 기리기 위해 강강술래를 돌 때도 둥근 모양을 만들었다. 사람의 성격을 설명할 때도 ‘원만하다’는 말은 모나지 않고 인간관계가 좋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서로 결핍을 채우며 '둥글게 사는 삶'을 인생의 모토로 삼았다. 어려운 사람들을 남몰래 후원하고, 시간 날 때마다 독거노인에게 도시락 배달 봉사활동을 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는 보통 때보다 일찍 퇴근한 날 양념통닭을 들고 있었다. 그는 들뜬 목소리로 십 년간 부은 청약통장이 신도시 아파트에 당첨됐다고 자랑했다.

이삿날 비가 내렸다. 나는 이삿짐을 옮기기 힘들다고 날씨를 원망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비가 내리면 잘산다는 말이 있다며 신경 쓰지 않았다. 돈을 내고 부른 이삿짐센터 직원을 돕겠다고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악"하고 비명이 들렸다. 달려가 보니 아버지는 자기 손을 가리면서 고통스러워했다. 이삿짐을 옮기는 리프트의 레일에 손가락 하나가 잘린 것이다. 빗물이 고인 땅바닥은 순식간에 벌겋게 물들었다. 손가락 접합수술을 했지만 신경이 끊어져 장애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 퇴원하자 아버지는 일상 생활에서 불편을 느꼈다. 간단한 물건을 집는 것조차 어려웠다. 나와 가족들은 아버지 손이 되려고 늘 그의 표정과 행동을 살폈다. 낙담한 아버지를 위해, 밤마다 가족들은 둥글게 둘러앉아 기도를 드렸다.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누구보다 아버지를 알게 한 시간이기도 했다.

사회의 시선은 달랐다. 아버지는 심한 장애 등급을 받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겠냐는 핀잔을 받았다. 일할 능력이 있어도 손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제외됐고, 승진도 밀렸다. 동료들에게 업신여김도 받는 듯했다. 삶의 목표인 '남과 함께 둥글게 사는 삶'은 자신에게 적용되지 못했다. 

▲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부정적이다. 물론 장애인 차별 문제도 만연하고 심각하다. Ⓒ KBS

2019년 말 기준으로 등록된 장애인은 261만8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5.1%이다. 해마다 장애인 수는 증가하는데, 놀라운 점은 실제 인원보다 적게 등록된다는 현실이다. 몇 년 전 건강보험공단에서 일하면서 목격한 사실이다. 보험수급 관련 일을 하면서, 당시 장애인 판정을 받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민되는 것인지를 알게 됐다. 내가 "왜 신청 안하고 돌아가세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장애인 등급을 판정받으면, 동시에 사회에서 쓸모없고 도움을 받아야만 사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고 답했다.

사회가 꿈꾸는 '둥글게 함께 사는 삶'은 가능할까? 장애인, 저소득층, 고아 등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회 공동체와 더불어 살게 하겠다고 복지 정책을 편다. 하지만 제도에서 사각지대가 생기고, 정책에서도 취지와 달리 약자들을 구별 아닌 차별을 할 때가 많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문화누리카드'를 만든 초창기가 그랬다.

원은 모든 면이 공격받을 수 있는 도형이다. 요즘처럼 차별과 혐오가 심해지는 모난 세상에서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아버지처럼 '둥글게 함께 사는 삶'을 놓치고 싶지 않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현경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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