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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욕망의 노예’가 되는 사회
[상상사전] ‘지위 불안’
2021년 05월 26일 (수) 20:14:27 최태현 기자 cth3424@gmail.com
   
▲ 최태현 기자

경쟁에 따른 불안이 꼬리를 문다. 초-중-고에 걸쳐 무한경쟁을 체득한다. 시험 결과에 따라 학생들은 피라미드 건축에 사용된 돌처럼 아랫돌 위에 윗돌이 놓이는 서열 구조 속으로 편입된다. 아래쪽으로 들어가는 학생일수록 압박과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점에 있는 학생도 행복하지 않다. 한번 굴러 떨어지면 낙차가 커서 ‘지위 불안’도 크다. <불안>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알랭 드 보통의 책도 원 제목은 <지위 불안>(status anxiety)이다. 사회가 정해 놓은 욕망의 트랙에 들어서지 못하면 존중받지 못한다는 걱정이 일상을 지배한다.

2008년 인권위는 “우열반 편성은 차별”이며 시정을 권고했지만, 심화반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학생은 경주마처럼 달린다. 눈가리개를 쓴 학생은 주변을 둘러볼 겨를이 없다. 결승선은 대입이다. 이른바 명문대학에 못 가면 낙오자가 될 것 같은 불안이 고등학생을 조종한다. 2019년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청년은 69.8%이다. OECD 평균 45%보다 한참 높다.

설 곳 없는 삶은 불안하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청년이 갈 자리는 거의 없다. 고졸 청년 가운데 취업한 청년 비율은 2019년 24.9%밖에 안 된다. 많은 청년정책은 ‘4년제 대졸 청년’이 기준이다. 대학 학자금 정책은 청년정책으로 치환된다. 고졸 청년은 목소리가 안 들린다. 이들은 불안을 표현할 창구도 없다. 2019년 KBS 신년기획조사에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차별’로 학력 및 학벌 차별이 33%를 차지했다. ‘고졸’은 낙인이 되어 평생을 붙어 다닌다.

   
▲ 학력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만연하다. 노력과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피라미드 하층부에 깔린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학력 차별에 따른 임금 격차도 큰 편이다. 능력주의의 '재인식'이 필요한 때다. © KBS

강박은 불안을 낳는다. ‘완벽해야 성공한다’는 강박이 청년을 지배한다. 대입, 스펙, 취업, 결혼… 완벽주의가 표준이다. 대입에서 성공하려면 고득점이 필수다. 수능에서 한 문제라도 더 맞히려고 눈뜨고 감을 때까지 수험서를 달고 산다. 모의고사에서 한 번 삐끗하면 자책한다. 더 완벽해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한다.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학점과 어학 점수는 ‘고고익선’(高高益善)이다. 조금만 더 점수를 높이겠다는 강박이 청년을 짓누른다.

입시 준비하느라 잠도 못 잔다. 2020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청소년은 평균 7시간 18분 잔다. OECD 국가 청소년은 평균 8시간 22분 자는 것에 견주어 너무 짧다. 한국 고등학생은 평균 6시간 3분 잔다. 응답자 절반 이상은 ‘수면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잠이 부족한 이유는 공부(62.9%)가 가장 많았다. 잠까지 줄여가며 공부한 결과로 삶은 피폐해진다. 공부 때문에 죽고 싶다고 생각한 학생은 3명 중 1명꼴이다.

불안이 심하면 우울해진다. 삼포, N포세대를 넘어 ‘이생망’이 신조어로 떠올랐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청년은 자조를 넘어 삶을 비관한다. 2019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10~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20대는 51%가 자살로 죽었다. 극단으로 치닫지 않더라도 삶의 배터리가 방전된 청년이 늘고 있다. 지난해 8월 전체 구직단념자 68만 가운데 이삼십대가 35만으로 절반을 넘겼다. 최근 일할 생각이 없는 ‘니트족’이 늘어나는 현상은 기력이 소진된 청년의 자화상이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불안은 욕망의 하녀’라고 정의했다. 청년들이 느낀 불안은 대개 사회적 지위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은 높은 지위를 욕망한다. 사회적 지위가 인간의 가치를 정의하는 시대다. 인정투쟁은 격렬하다. 좀 더 노력하면 더 성취할 수 있다는 욕망이 가득하다. 욕망이 커질수록 불안은 늘어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오늘날 ‘인간은 비교의 동물이다’로 바뀐 듯하다. 남을 기준으로 나를 평가한다. 타인과 비교하며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나’를 잃어버린 존재는 늘 불안과 함께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임효진 기자

[최태현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장, 편집기획팀 최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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