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봄’ ➃ 청년의 자살

봄이 '슬픈' 나

'온 계절을 다 타는 별난 애.' 할머니는 나를 이렇게 한 줄로 설명했다. 여름엔 더워서, 가을엔 불어오는 찬 바람에 마음이 쓸쓸해서, 겨울엔 얼어붙은 온 세상이 허망해서. 봄에는 유독 우울했다. 모든 생명이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활기찬 계절이라지만, 나는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지 걱정에 빠져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외로웠다. 봄꽃을 보며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활기찬 척해도, 유쾌한 사람들의 싱그러운 에너지를 따라갈 수 없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기운을 내 세상에 도전하라'는 세상의 충고와 위로는 헛소리로 들리는, 나도 불안정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는 위기의 20대 청년일 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오랜만에 통화한 친구는 덤덤하게 슬픈 소식을 전했다. 그는 부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는데,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자살을 시도하는 환자가 늘어났다고 한다. "선배들은 자살 시도 환자가 많아지는 걸 보면서 봄이 오는 걸 느낀다더라." 지난 1주일 사이 목 맨 사람 둘, 손목 그은 사람 하나,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사람 하나가 실려 왔다고 한다. 이들이 모두 20대 중후반 우리 또래라 해서, 더 슬펐다.

봄의 역설

봄에, 나 빼고 모두가 행복하다는 건 착각이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통계청이 분석한 2013~2019년 월별 자살 사망자 수는 3월부터 5월까지 가장 높다. 조성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봄에 자살이 늘어나는 이유를 늘어난 일조량이 감정 기복 크고 우울증 심한 이들에게 충동적인 행동을 유발하기 때문이라 진단한다. 햇빛이 눈 망막을 통해 뇌 시상의 일부분을 자극해 감정기복을 크게 만든다. 겨울에는 우울해도 기력과 의지가 없는 채로 지내지만, 역설적으로 봄의 역동적 에너지가 자살까지 이끈다는 것이다. 봄의 '시작하는 계절'이라는 상징과 사람들의 밝은 분위기가,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는 엄청난 박탈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전문가는 겨울에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봄 햇볕에 에너지를 얻어 기복이 심해지고, 충동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한다. ⓒ 스브스뉴스

봄이 되면 지자체들은 자살 예방 캠페인을 벌인다. 대구시는 3월부터 5월까지 통합심리지원단을 가동해 24시간 정신건강 상담 전화를 운영한다. 길거리 현수막, 대중교통 안내판, 아파트 승강기 모니터, 각종 고지서에 상담전화를 알리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자살 고위험군 시민들을 등록해 특별관리한다. 전남 순천시는 5월까지 자살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 공동주택 주민들에게 정신건강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우편물로 기관 정보를 안내하고,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시민들 정신건강을 집중 관리한다. 규모와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지자체들이 봄철 자살 예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10대에서 30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이 가장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에 1만379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평균 37.8명이나 된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26.9로,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 11.3을 크게 웃돈다. 자살률은 10대(2.7%)와 20대(9.6%)에서 2018년보다 증가했다. 문제는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순위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이다. 10대 사망원인 37.5%, 20대 사망원인 51%가 자살이다. 전문가들은 학업, 취업 스트레스 등 사회적 요인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이나 조울증 등 기분장애로 진료를 받은 이들 중 20대 비율이 16.8%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 최근 한 보고서는 코로나가 특히 사회·경제적 기반이 약한 청년들이 양극화한 현실에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 SBS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지난해 10월, 서울에 거주하는 19~34세 청년 2011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가 청년의 이행경로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26.8%가 코로나19 이후 자살 생각을 해봤다고 답했다. 2018년 조사보다 약 10배 늘어난 수치다. 우울감의 정도도 높아졌다. 우울증 척도 검사 결과, 청년의 우울 점수는 60점 만점에 20.46점이었다. 16점 이상이면 경도, 25점 이상이면 중증 우울 증상으로 분류되는데 20.46점은 우울증이 중증을 향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울 점수는 특히 학력과 소득이 낮고, 미취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인 청년에게 높게 나타났다. 노동시장 내 지위와 학력이 정신건강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청년층의 우울과 자살 생각이 위급한 수준이고, 청년들 정신건강 문제를 긴급한 요구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N포 세대', 이 땅의 청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이미 청년들은 희망을 잃고 미래를 포기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 내 집 마련과 경력까지 포기한 '5포 세대', 모든 것을 포기한 'N포 세대'가 오늘 청년의 현실을 대변한다. 지난 2019년 OECD가 발표한 '한국청년보고서'를 보면, 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청년실업률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감소하고 있는데, 한국만 세계경제 상황과 관계없이 청년실업률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OECD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청년고용률이 낮은 원인을 "높은 대학진학률에 비해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비율은 낮고(한국 1/8, OECD 1/4), 고학력 청년 니트족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모든 것을 포기한 'N포 세대'는 스스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 땅의 청년들을 상징한다. ⓒ 네이버

청년들은 비정규직, 플랫폼노동, 프리랜서 등 고용주가 확실하지 않은 모호한 고용 형태로 전락했다.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의 문은 갈수록 좁아졌고, 스펙을 위한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대학 진학과 취업을 위한 스펙을 만드는 투자는 부모의 재산에 따라 양극화했다. 대학 졸업 직후부터 학자금으로 부채를 짊어진 청년은 전전긍긍했다. 경쟁 심화는 떨어진 취업률, 불안정한 노동조건은 우울감으로 이어져 청년 자살이 늘어났지만, 청년을 위한 정책이나 제도, 사회안전망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 'K양극화'에 무방비로 노출된 청년

코로나는 부와 노동의 불평등을 심화했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 가난해지는 'K양극화'는 사회 기반이 약한 청년층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지난해 10월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 동향을 보면, 15~29세 청년층 일자리는 2019년 같은 기간보다 25만 명 감소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청년 체감실업률과 청년 물가상승률을 더해서 ‘청년경제고통지수’를 추정했다. 2017년에 24.6이던 것이 2019년에는 23.3으로 내려갔다가 지난해 25.7로 오르더니 올해 1분기에는 27.7까지 올랐다. 청년들이 느끼기에 갈수록 취업은 더 안 되는데 물가만 오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청년 체감실업률은 2015년 21.9%, 2019년 22.9%를 기록했다가 지난해 25.1%로 올랐다. 청년 넷 중 한 명이 실업자이거나, 추가로 취업을 원하는 단시간 노동자이거나, 구직활동중이지만 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이다.

▲ 통계청 2020년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수는 2690만4000명으로 전년보다 약 22만명 줄었다.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고용 한파'로 일자리 시장에서 낙오된 청년들이 '코로나 취포세대(취업 포기 세대)'로 전락하고 있다. ⓒ <동아일보>

코로나19 이후 2030 청년 고용시장은 얼어붙었다. 대기업 10에 6곳은 올해 상반기에 채용하지 않거나 채용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되면서 식당, 카페 등이 문을 닫거나 영업시간이 단축돼 청년들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대폭 줄었다.

취업도, 아르바이트도 불가능해 생계마저 걱정해야 하는데, 지자체마저 그나마 있던 '청년예산'을 삭감해 비난을 샀다. 올해 광주광역시는 청년들이 지역사회의 다양한 직무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광주청년 일경험드림' 사업 예산을 50% 이상 삭감하고, 청년 지원 관련 예산을 지난해 458억 원에서 올해 151억 원 줄어든 307억 원으로 책정했다. 청년수당과 청년 월세지원사업, 청년 공공일자리 사업 등의 정원과 예산을 줄인 것이다. 논란이 일자 다시 64억 원 증액했으나 지난해에는 미치지 못했다. 서울시도 올해 청년 자율예산을 17% 삭감했다. 청년수당, 청년 월세지원사업, 청년 공공일자리 등 관련 사업도 예산 축소의 영향을 받게 됐다.

청년들은 다시 절벽으로 내몰렸다. 지난해 12월 한국자살예방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2019년 극단적 선택을 한 20~30대 청년 열에 셋은 실업자였다. 이 기간 청년 자살 사망자 173명 가운데 32.9%인 57명은 실업자였고, 그중 64.9%인 37명은 직업과 관련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실업 상태가 1년 이상으로 길어지면 자살로 이어질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자살예방협회는 "우리나라의 고용 불안정과 청년 자살률 상관관계는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보다 강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불안'과 '실업 상태'가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코로나19 시기 청년 세대를 '록다운(lockdown) 세대'라 이름 붙였다. 교육과 직업훈련 기회가 막히고, 소득이 줄어들고,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등 3중으로 록다운(봉쇄)된 청년을 빗댄 것이다. '록다운 세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젊은이들의 냉엄한 현실이다.

청년이 꿈을 꾸는 봄

꽃에게는 봄이야말로 잔인한 계절이다. 해는 짧고, 수분을 도울 매개 곤충도 많지 않아 꽃을 피우기 힘들다. 봄꽃이 예쁘게 피는 과정은 눈물겹다. 복수초 꽃은 4월, 완연한 봄이 되어 활엽수가 무성해지면 그 잎이 햇볕을 가리기 때문에 하루라도 더 빨리 피기 위해 체온을 주변보다 8도쯤 끌어올린다. 봄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차가운 겨울을 견뎌냈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 희망을 안고 사회에 나오는 청년들은 세상의 꽃이다. 사회적 관심과 정책 아래, 청년들은 꽃 필 수 있다. ⓒ <연합뉴스>

청년은 꽃을 닮았다. 이 땅의 청년도 봄꽃처럼 죽지 않고 예쁜 꽃을 피우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꽃에게 햇볕과 곤충이 필요한 것처럼, 청년에게도 사회의 관심과 제도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청년층은 하나의 세대이지만 사회경제적 위치는 다양하다. 포괄적 주거정책이나 고용정책만으로는 청년 전체를 도울 수 없다. 다양한 청년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책 결정 구조를 만들고, 다양한 청년의 개별 상황에 맞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현재 청년 정책은 지자체 차원의 조례 제정 등으로 시행해, 각 지자체의 재정 여건, 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청년 정책의 편차가 심하다. 청년을 위한 실질적 제도와 안전망이 시급하다. 전국 청년들이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 안전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청년의 좌절과 분노를 아는가? 청년의 상처와 눈물을 느끼는가? 이 아름다운 봄에 청년의 죽음을 떠올리는 서글픈 현실이다. 봄의 역설은 이제 끝내자. 더 이상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내버려 둬선 안 된다. 이 봄, 청년들이 꽃을 피우게 하자, 꿈꾸게 하자.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봄’이다. 코로나 팬데믹 1년, 재난은 계속되지만 자연의 순환은 어김없다. 생명은 언 땅을 뚫고 대지를 초록으로 물들이고 꽃을 피운다. 생명이 역동하는 이 봄을,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잔인한 4월이라 노래했다. 그렇다, 제주4·3이, 세월호가, 4·19혁명이 말한다. 생명과 죽음, 혁명이 함께 하는 이 봄을 기억하라고. (편집자)

편집 : 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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