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한국사회의 상징’ ➄ ‘분노’의 표정

표정을 공감한다는 것

오랜 취미가 있다. 사람 관찰하기다. 주로 공덕동에 있는 집 근처 경의선 숲길에서 행인을 관찰한다. 경의선은 서울 용산에서부터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철도였다. 경의선 숲길공원은 그 긴 철도길의 일부를 공원으로 복원한 공간이다. 공원은 중앙에 보도가 있고, 벤치가 보도를 바라보고 있는 형태다. 벤치 뒤로는 행인을 대상으로 하는 카페나 음식점, 그리고 사무공간 건물들이 있다. 나는 공원길의 끝이자 시작인 전환점 부근에서 벤치에 앉아 산책하는 사람들 표정을 관찰한다. 

공원을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다. 점심시간에는 직장인이 많다. 홀로 산책하던 20대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고 입꼬리를 축 내린 표정이다. 회사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나 보다. 30대 여자 셋은 입꼬리와 함께 올라간 광대를 손으로 가리며 웃는다. 휴식의 기쁨과 만족이 느껴진다. 석양이 비추는 오후의 표정은 점심과 또 다르다. 남자 중학생은 그 또래의 허세를 담아 입을 벌리고 눈을 가늘게 뜬 표정이다. 매장 앞 쓰레기를 치우는 아르바이트생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꽉 다물었다. 나는 행인의 표정에서 그들의 마음과 감정을 느낀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공포, 혐오와 연민, 자괴감과 만족감은 겹겹이 쌓여 표정이 된다. 오랜 감정이 남긴 흔적이다. 표정은 사람의 마음이자 감정이다.

▲ 표정은 사람의 감정과 삶을 드러낸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공포, 혐오와 연민, 자괴감과 만족감 등의 감정은 스쳐 지나가지만, 표정에는 그 오랜 감정이 묻어 있다. © pexel

표정 관찰을 하면, 다른 사람 얼굴에 드러난 감정이 내게 전해진다. 밝게 웃는 남학생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고, 아이가 넘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엄마를 보면 불안하다. 긴장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꽉 다문 사회초년생의 표정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감정을 공유하며 그 표정이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한다. 올라간 입꼬리로 쉼 없이 조잘대는 남학생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며 그가 학교 점심시간 축구 시합에서 몇 골을 어떻게 넣었는지 머리 속으로 그려본다. 턱을 아래로 내리고 눈으로 연신 아이와 전방을 훑는 엄마를 보며 하루 내내 긴장하는 그의 일상을 떠올리고, 긴장한 사회초년생의 표정을 보면서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는 직장생활을 상상한다. 표정은 사람의 감정과 그들이 그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세상을 읽는 열쇠다. 

‘분노’는 사회 부조리 해결 실마리

표정을 관찰하며 발견한 사실이 있다. 분노의 감정은 공감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화를 내는 사람은 ‘즉각 거부’ 되고, 적대감마저 든다. 공덕역 주변에서 화 난 30대 남자가 남자아이 팔목을 움켜잡고 편의점으로 끌고 가는 장면을 목격한 일이 있다. 아이는 중학생 교복을 입었다. 많아봐야 열여섯. 아이는 씩씩거리는 성인 남자의 힘에 질질 끌려갔다. 불쾌함이 팍 치솟았다. 남자가 아이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너 부모님 전화번호 뭐야! 변상받아야겠다.” 아이는 도둑질하다 붙잡힌 거였다. 

분노는 폭력 상황까지 연출한다. 사람들은 분노를 보며 위기의식을 갖는다. 폭력이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을 혐오한다. <도덕감정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사람들이 분노에 곧바로 공감하지 않으며, 공감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분노의 원인이 화를 내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화를 당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화를 내는 이유를 알아야 우리는 분노에 공감할 수 있다. 내가 아이를 잡아 끌고 가는 편의점 주인을 적대시한 건 편의점 주인이 당한 부당한 일(도둑질)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분노를 향한 본능적 혐오감은 분노의 이유를 외면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분노한 이유를 듣지 않고 적대감부터 갖는다. 혐오는 즉각적이지만 공감은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사례를 빼면, 분노는 실제 부조리하고, 부당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 때문에 세상에 드러난 분노를 잘 읽으면 그 뒤에 가려진 사회 부조리가 드러난다. 분노는 부조리와 개인 인식의 방정식이므로, 분노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가 된다. 

세상의 ‘분노’를 읽어라

한국 사회는 분노사회다. 분노는 다양한 사람에게서, 다른 표정으로 드러난다. 지난 1월, 분노는 까만 얼굴을 하고 눈물 짓는 모습이었다. 29일간 곡기를 끊으며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온전한 입법을 요구하던 피해자 유가족들의 분노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에 끼어 숨진 김용균 씨 어머니와 2016년 CJ ENM에서 <혼술남녀>의 조연출을 맡으며 각종 갑질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한빛 PD 아버지는 노동현장의 불평등과 안전을 요구했지만, 해결까지는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7일부터 29일간 단식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1월 8일, 5인 미만 사업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인과관계 추정 조항도 삭제한 채 통과돼 분노가 수그러지지 않았다. © KBS 유튜브

코로나 팬데믹 시대, 분노는 마스크를 뚫고 나왔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특수고용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 취업이 좌절된 청년의 분노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월 9시 이후 손님을 내보내고 불을 켜놓는 개점 시위를 벌였다. 부산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부산시가 지급하는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빠지자 부산시청 앞에서 보호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년들의 분노는 체념의 형태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면서 청년 61.1%가 사실상 구직을 포기했다. 삶의 의욕마저 포기한 것이다. 

지난 1월,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사람들은 분노를 쏟아냈다. 그 옆에는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가명) 양이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분노는 양부, 경찰, 진단서를 끊어준 의사, 그리고 정부를 겨냥했다. 정인 양에 관한 아동학대 의심 신고는 세 차례에 걸쳐 접수됐지만 경찰은 양부모가 단골 의사에게 떼어온 진단서만 믿고 무혐의로 처리했다. 정인 양 사건은 지난해 6월 아이를 캐리어에 넣어 숨지게 한 천안 계모 아동학대 사건 4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어린이 학대와 사망사건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분노는 외국인의 얼굴로도 드러난다. 2018년, 정소희와 섹 알 마문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는 외국인 노동자의 분노를 담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는 99% 이상이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를 이용하고 있다. 이 중 69.6%(노동자 응답 기준, 사업주는 64.5%)가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같은 가설 건축물에서 생활한다. 말이 숙소이지, 가설물에는 냉난방과 소방시설이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다. 

▲ 미나리 공장에서 일하던 티다는 30만원 숙식비를 내고 비닐하우스 방에서 셋이 함께 생활했다. 숙식비는 월급에서 공제했고, 일이 없을 때는 일당도 공제했다. 생활고를 겪던 티다는 고용센터에 이직을 신청했다. 티다와 동행한 동료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다큐멘터리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20일, 경기 포천에서는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누온 속헹(31) 씨가 가설 건축물 숙소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영하 17도를 밑도는 한파에도 난방 시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는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임금 착취 또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목숨마저 위협받고 있다. 

분노를 사용하는 방법

지금 한국 사회에서 드러난 분노는 가장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문제들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분노의 원인을 읽으면 사회 부조리를 해소할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 포항 MBC에서는 다큐멘터리 ‘그 쇳물 쓰지 말라’를 방영했다. 다큐에는 포스코 제철공장에서 피해를 입은 노동자와 주민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41년간 포스코에서 근무한 정원덕 씨는 “이 회사는 다니지 말아야 되고, 아예 이 회사 자체를 없애야 된다고 생각해요”라 말한다. 퇴직 3년 만에 악성중피종이 발생한 윤여화 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자기 피해 사실을 직접 호소했다. 코크스 공정에 투입된 송관용 씨는 백혈병에 걸렸지만 자비로 치료해야 했다. 그가 암 발병 당시 함께 근무한 29명 동료에게 발생한 병명과 현황을 적어 놓은 종이에는 백혈병, 간암, 위암, 혈소판감소, 위암, 후두암, 대장암, 신장암, 뇌암 등 암 병명이 빼곡했다.

▲ 32년간 포스코에서 근무한 송관용 씨가 같이 일하던 동료 29명이 걸린 병명과 현재 상황을 정리한 서류에 암 병명이 빼곡히 적혀 있다. 포스코에서 일한 노동자 중 지난 10년간 산재로 받아들여진 인원은 4명에 불과하다. © 포항 MBC

다큐는 포스코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자세히 보여준다. 석탄으로 일종의 숯, 즉 코크스를 만드는 코크스 공정에서 나오는 코크스오븐 배출가스에는 발암물질인 벤젠, 다환방향족탄화수소, 석영 등이 포함돼 있다. 다큐는 코크스 공정에서 일한 노동자를 30년간 추적한 외국 연구자료를 통해 코크스오븐 작업 노동자들이 일반 노동자보다 암 발병 위험도가 4.45배 높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코크스오븐 배출가스가 1군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 환경보호청 보고서를 보여준다. 다큐는 이렇게 전문가 인터뷰, 피해 사실과 노동환경의 관계를 입증하는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포스코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하나씩 드러낸다. 

세상의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다룬 언론 보도는 사회에 공분을 일으키고, 해법을 마련케 한다. 다큐멘터리의 사회적 아젠다 제기 기능이다. 다큐가 방영되고 사흘 뒤, 포스코노동조합은 기자회견에서 사측을 규탄하며 몇 가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포스코가 직업성질환의 전수조사와 산재 신청에 적극 나서고, 포항시는 포항산업단지 인근 주민의 환경성질환을 전수조사하고 개선대책을 마련하며, 정부는 포스코에 대한 안전보건진단을 실시하라는 내용이었다. 시민단체 ‘일과 건강’은 ‘환경성‧직업성 암환자 찾기 119’라는 전용 상담 창구를 개설했다. 지난해 21건의 집단산재신청을 했고, 지난 2월에는 이 중 첫 번째 건이 승인됐다. 피해 사실과 업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첫 승인 사례였다. 직업성 암 119는 이 사례를 계기로 지금까지 포스코측이 축소한 문제들이 드러나고, 피해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은 분노통역사

언론은 분노통역사가 되어야 한다. 분노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세상 밖으로 드러낸다. 분노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으면 그 자체로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이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 드러난 분노의 표정을 읽어 내고, 그 원인과 이유를 분석한 다음, 분노의 감정을 세상이 공유하게 만드는 일은 기자‧PD의 몫이다. 기자‧PD는 분노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 함께 울고 웃으며, 그들의 표정 뒤에 가려진 분노하는 이유를 밝혀야 한다. 끊임없이 분노를 관찰하고 분노의 이유를 드러내 세상에 전하는 분노통역사, ‘K 양극화’로 부와 노동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는 오늘 한국 사회에서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자 책무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한국사회의 상징’이다. 코로나는 이른바 ‘K자 양극화’로 불리며 부와 노동의 불평등을 심화했다. 공공 안전망이 부재한 각자도생 사회, 더 깊어진 불안과 갈등으로 신음하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오늘을 상징하는 대상과 현상으로 읽어낸다. (편집자)

편집 : 강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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