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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말했다, 괴로우면 걸으라고
[상상사전] ‘길’
2021년 02월 17일 (수) 17:55:40 배현정 feliz_ing@pusan.ac.kr
   
▲ 배현정

노동자는 존엄할 수 없다. 살고자 ‘버티기’를 한 노동자에게 죽음이 있다. 이들의 목숨이 존엄하다고 말하는 건 무리다. 한국 노동시장이 그런 현실을 말한다. 이 시장에는 예정된 죽음이 늘 있다. 바로 하청노동자의 죽음이다. 비정상적 노동구조에서 안전이 고려되지 못한 채 높은 곳에서 또는 낮은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노동자가 죽는 서사는 최근 급속히 증가하는 비정규직 실직과 닮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바뀌지 않는 노동 처우에 불안과 불만이 겹겹이 쌓인다. 결국 퇴사를 선택하지만 그것은 극한의 상황에서 어쩌지 못해 선택한 도피일 뿐이다. 퇴사와 죽음을 만드는 이 익숙한 서사는 사회 밖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슬픈 차선책이다.

한국의 노동자에게는 안전 또는 권리라는 선택지가 없다. ‘막다른 골목’은 죽음 또는 퇴사로 이어진다. 이런 현상은 한국 노동시장의 체제 때문이다. 그중 대기업의 독점이 큰 몫을 한다.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는 산업분야에는 영세·중소기업이 하청기업으로 있다. 대기업은 위험한 업무의 사고 책임을 회피하고 이윤을 독식하기 위해 하청업체를 두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안전을 책임질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에서 노동자는 최소한의 안전과 처우를 보장받지 못한다. 결국 내 자리를 지켜내고자 버티기를 한 노동자들은 죽어나간다. 대기업의 이윤지상주의는 또 다른 노동자들을 괴롭힌다. 임금을 낮추기 위해 파견직이나 파트타임 등 비정규직 직급체계를 만들었다. 이러한 이중 노동구조 속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거대한 노동구조에 대항할 수 없어 결국 퇴사를 택한다.

   
▲ 한국의 하청 노동자들은 비정상적 노동구조에서 안전이 고려되지 못한 채 높은 곳에서 또는 낮은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 Pixabay

불합리한 한국 노동시장 체제는 성장지상주의에서 비롯했다.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으로 경제 성장이 뒤처질 수밖에 없던 한국은 성장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고속도로를 지으며 77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숭고한 죽음’으로 미화됐고, 살아남은 자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영웅’이라고 자축했다. 성장이 복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표인 이들에게 누군가의 죽음은 성공을 위한 거름일 뿐이다. 성장지상주의 가치관은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회와 사람들에게 깊이 스며들었다. 기업은 개인 생명의 가치와 권리 신장은 뒷전이고 이윤 추구에 최우선 가치를 두었다. 성장은 인간보다 상위 가치였고, 노동자의 노동권과 안전은 하위 가치였다.

니체는 말했다, 괴로우면 걸으라고. 우리는 끊임없이 걸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목포에서 서울로, 암투병중인 김진숙 씨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그 걸음이 동력이 되어 제정된 법률도 꽤 있다.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2021년 중대재해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제정된 법안들을 통해 노동자의 안전과 권리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함께 걸었기에 가능했다. 길 위의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이 칼럼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의 ‘22기 예비언론인 캠프’에 참여한 배현정 씨가 과제로 보내온 글을 첨삭한 것입니다. 그는 부산대 의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 재학중입니다. 글이 채택된 학생에게는 이봉수 교수의 미디어비평집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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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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