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아포리아’

▲ 조한주 기자

순종실록에 나주 사람 문순득 이야기가 나온다. 우이도에서 나고 자라 흑산도에서 홍어를 팔던 문순득은 25살 때 다른 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열흘 넘게 표류했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조선 아닌 섬에 닿았다. 도착한 곳은 지금은 오키나와라고 불리는 류큐. 아홉 달 동안 류큐어를 배우면서 살다 청나라로 가는 조공선에 오르지만, 다시 풍랑을 만난다.

문순득은 지금 필리핀 루손 섬인 '여송’(呂宋)에 다다랐다. 연날리기를 좋아하지만 노끈을 잘 꼬지 못하는 그곳 사람들 모습을 보고 노끈을 만들어 파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다시 아홉 달 동안 악착같이 여송 말을 배우고 문화를 눈에 담은 문순득은 정기선을 타고 마카오, 북경, 한양을 거쳐 3년 만에 고향인 우이도에 도착한다. 삶을 포기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 문순득이 표류했던 길을 나타낸 지도와 문순득 초상. ⓒ EBS

이 무렵 신원을 알 수 없는 외국인들이 제주도에 표류했지만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이때 문순득이 제주도로 가 필리핀어로 대화하니 이들은 오랜만에 들은 고향 말에 통곡하고, 사정을 알게 된 조정은 이들을 여송국으로 돌려보냈다. 순조는 이 공로로 문순득에게 종2품 가선대부 품계를 내린다. 글도 모르던 어물전 장사꾼이 이름뿐인 벼슬이긴 하지만 양반이 된 것이다. 문순득 일화를 보면 고사성어와 속담이 떠오른다. ‘새옹지마’ 그리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아무데도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만큼 보이는 것도 적은 스무 살 재수생은 한 평도 되지 않은 고시원에서 살며 매일 울면서 밤을 보냈다. 내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쌓여 ‘나는 결국 안 되는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늘 가라앉았다. ‘이렇게 모자란데 잠을 잘 자격도 없다’는 생각은 불면증이 됐고, ‘혼자 있을 땐 아무도 날 보지 않는다’는 편안함은 폭식으로 돌아왔다. 20대 여성이 많이 앓는다는 우울증, 불면증, 식이장애가 동시에 몰려온 것이다. 우울이 내 안에 깊이 파고들어, 극단적 선택에 이른 적도 있다. 어느 날, 처방받은 수면유도제를 권장량보다 많이 먹고 눈을 감았다. ‘이젠 끝이구나.’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 조그만 창문에서 들어오는 밝은 햇살이 날 반겼다. 솟아날 구멍이었다.

▲ 사방에 벽만 보인다고 벽 너머 세계가 없어진 건 아니다. 조금만 마음을 달리 가지면 창문 너머 새로운 세상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 Unsplash

1951년 여성이 스무 살일 때 자살사망률을 1로 본다면, 1997년생은 약 7배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대 여성이 다른 나이대와 성별보다 자살률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나 혼자 겪은 문제라고 생각한 우울증, 불면증, 식이장애는 요즘 90년대생 여성이 꽤 많이 겪는 질병이다. 20대 여성 자살률이 높은 이유로 여성들은 원래 감수성이 높아 우울증 등 각종 정신과 질환에 많이 걸린다는 의견도 있다. 그것보다는 솟아날 구멍이, 다시 말해 희망이 없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다. ‘원래’ 그런 게 아니라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란 보장이 없어 삶의 끈을 놓는 게 아닌가 싶다.

희망은 아무 조건이 없다. 그저 살아있기만 하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보장도 필요 없다. 뭘 잘해야만, 조건을 충족해야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약을 먹고 잔 다음날 아침 내가 깨달은 건 이거다. ‘그래도 살아있는 게 좋구나’. 문순득은 아는 사람이 없고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 가서도 살 구석을 찾아냈다. 확실한 건,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기회가 찾아온다는 거다.

▲ 여행의 끝은 또 다른 여정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 Unsplash

‘아포리아’(aporia)의 그리스어 어원은 더 이상 길이 없는 ‘막다른 길’이다. 그러나 영국 시인 데이비드 와이트의 시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추락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순간 길이 너를 받아 너의 발을 떠받쳐 준다.’ 절망의 순간이 계속 와도, 내디딜 길이 있으니 계속 걸어갈 수 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모두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운이 좋든 안 좋든 일단 살기 바란다고, 어떻게든 솟아날 구멍은 생길 테니.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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