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로그인 회원가입
2021.10.16 토
> 뉴스 > 칼럼 > 글케치북
     
꽃은 정말 있었을까?
[글케치북] 존재와 인식의 길항작용
2021년 02월 13일 (토) 17:02:54 신현우 PD shw0746@naver.com
   
▲ 신현우 PD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의 시 <그 꽃>은 질문이 생긴다. 꽃은 정말 있었을까? 두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는 꽃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다. 꽃은 있었지만 화자는 존재하는 꽃을 올라갈 때 보지 못했다. 두 번째는 실제 꽃이 없었다는 것이다. 화자가 내려오면서 본 것은 꽃이 아닐 수 있다. 다른 물체를 꽃으로 착각했을 수도, 헛것을 보았을 수도 있다. 꽃을 보고 싶은 간절한 '바람' 또는 보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두 가정 모두 존재와 인식이 독립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꽃은 화자의 인식과 상관없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첫 번째 가정에서 화자가 보거나 말거나 꽃은 있다. 두 번째 가정에서는 화자가 보거나 말거나 꽃은 없다.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화자의 인식은 꽃의 존재 여부와 상관이 없다. 화자는 꽃을 보기도 하고 못 보기도 한다. 꽃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다.

   
▲ '내려갈 때 본 그 꽃'은 정말 있었을까. ⓒ Unsplash

존재와 인식을 구분하지 않는 이가 많다, ‘인식하는 것은 곧 존재하는 것’이니까. 내가 보거나 들은 것은 있는 것이고, 내가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한 것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총선 이후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은 ‘본인들이 직접 보거나 들은’ 몇 가지 증거를 제시하며 부정선거의 존재를 주장한다. 후자의 사례는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일부 남성 중에는 본인이 보거나 듣지 못했기 때문에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한다.

두 경우 모두 본인의 인식이 존재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은 부정선거가 아니라는 증거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한다. 성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차별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한다. 배제한 두 가지 모두 본인들이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존재 여부는 이들의 인식과 별개로 독립적이다.

존재와 인식이 별개라면 무엇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엄밀하게 말하면 ‘있다’는 표현은 합의의 산물이다. 모두가 동일하게 인식한 것, 예컨대 서울에 광화문이 ‘있다’는 사실은 진실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다수가 인식했다고 진실이라는 주장은 인간의 인식이 잘못됐을 가능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극단적으로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처럼 이 세상이 가상현실일 가능성도 있다. ‘있다’는 말은 다수의 인식 과정을 종합했을 때,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합의’다.

존재가 합의의 산물이라는 말은 진리가 합의의 산물이라는 말과 같다. 중력의 법칙은 진리다. 뉴턴은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을 발견했다. 오늘날 누구나 중력을 매일 경험한다. 중력은 인간의 인식에 종속돼 있다. 모두가 동일하게 인식했지만, 인식이 잘못됐을 가능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력은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 합의된 진리’일 뿐이다.

세상에 진짜가 없다는 허무주의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불완전한 인식으로는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진리인지 확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진리가 합의된 산물이라는 말은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변화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더 좋게 변할 가능성과 더 나쁘게 변할 가능성이다. 인간은 의심과 비판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를 만들었다. 존재를 인식에 종속시키고, 진리를 고정불변의 것으로 놓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 인간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다.

고은의 시 <그 꽃>을 있는 그대로 읽으면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갈 때 본 이야기’로 끝난다. 의심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화자가 다른 물체를 꽃으로 착각했거나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할 때, ‘사실 그가 본 건 꽃이 아니었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원래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편집 : 조한주 기자

[신현우 PD]
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장, 유튜브브랜딩팀 신현우입니다.
세상은 문밖에 있다.
     관련기사
· 서른 번째 길을 걸으며
· 흰 눈 내리던 날, 그 코트와 장갑
· ‘막다른 길’은 없다
· 거리에 갇힌 사람들
· 정치가 ‘막다른 길’에서 벗어나는 법
신현우 PD의 다른기사 보기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나누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Follow danbi_news on Twitter

단비뉴스소개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7136)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로 65(신월동 579)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413호|Tel 043)649-1557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충북 아 00192|등록일 : 2017-11-27|발행인: 제정임|편집인: 안수찬|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안수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수찬
Copyright 2009 단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nbi@danb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