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공감능력'
개 35마리가 실험실에 모였다. 연구자들이 개와 열심히 놀아준 뒤, 개 이름을 불러 집중시키고 눈앞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중 25마리가 연구자들을 따라 하품하며 입을 벌렸다. 생후 7개월부터 개월 수가 많은 강아지일수록 하품을 따라하는 경향이 더 많이 나타났다. 개는 생후 7개월부터 감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웨덴 룬드대학교의 실험이다.
갓난아기도 마찬가지다. 태어난 지 몇 시간 안 되는 아기라도 마주보는 사람의 얼굴 모양을 따라할 수 있다. 눈을 크게 뜨면 아기도 따라 뜨고, 입을 벌리면 아기도 똑같이 입을 벌린다. 일종의 의사소통 과정인데, 아기는 이런 모방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가장 가까운 부모와도 이렇게 관계가 시작된다.
포유류의 뇌 속에 있는 ‘거울 뉴런’이 개나 아기가 다른 이를 모방할 수 있게 한다. 거울 뉴런은 다른 행위자가 한 행동을 관찰하기만 해도 자신이 그 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활성을 내는 신경세포다. 거울 뉴런에 의한 모방은 누군가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길 가다 넘어진 사람을 보고 내가 넘어진 것처럼 아픔을 느끼거나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도 거울 뉴런이 작동한 결과다. 모방을 넘어 공감까지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30일, 24년 만에 다시 전두환 씨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씨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전 씨는 반성의 기미 없이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법정에서 꾸벅꾸벅 조는가 하면, 광주로 출발하기 전 서울 집 앞에 모여 항의하는 시민에게 “말 조심해, 이놈아”라며 막말을 일삼았다. 재판이 진행되는 기간, 12·12 군사반란 가담자들과 함께 비싼 중국음식을 먹는 모습이나,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사실 등이 밝혀져 공분을 사기도 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공공임대 아파트를 방문해 발언한 것도 논란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13평 복층형 아파트를 둘러보면서 ‘신혼부부에 아이 1명이 표준인데, 어린아이일 경우 2명도 살 수 있지만 아이가 크고 재산이 형성되면 더 높은 수준의 주거를 원할 수 있으니 중형 아파트로 옮겨갈 수 있는 주거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맥락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야권과 일부 언론은 문 대통령이 ‘4인 가족이 살기에도 충분한 13평 아파트’라고 말한 것처럼 왜곡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아무도 살고 싶어하지 않는 공공임대’에 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용면적 13평, 공급면적 20평인 이 임대 아파트를 두고 일부 정치인과 네티즌은 ‘그렇게 비좁은 집에서 4명이 어떻게 사냐’며 공격하고 나섰다. 실은 전국 아파트 거주 가구 다섯 중 하나가 20평 이하에서 살고, 그보다 좁은 곳에서 더 많은 가족이 함께 살기도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임대 거지’라고 놀려댄다는 얘기를 이 어른들 이야기를 통해 확신했다.
80년 5월의 잘못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전두환과, 공공임대 아파트를 비하하는 사람들 모두 원초적 본능에 충실한 하품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건 마주보는 이를 보고 따라하며 그 감정에 공감하는 게 아닌, 그저 남의 고통은 남의 것에 불과하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무관심과 지루함의 증거가 아닐까? 언젠가부터 사람들 공감 능력이 줄어들고 있다. 감정을 못 느껴 범죄를 일삼는 사이코패스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품이 전염되듯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표정을 따라하는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이봉수) |
편집: 오동욱 PD
[이예슬 기자] | |
단비뉴스 편집기획팀장, 청년부 이예슬입니다. 천천히, 꾸준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