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공생’

▲ 김태형 기자

2014년 3월 경남 김해시 화포천 습지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흰 몸체, 검은색 날개깃, 붉은 다리가 특징인 황새 ‘봉순이’. 2012년 태어난 ‘봉순이’는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시 출신으로 발목에 ‘J0051’이라고 적힌 가락지가 끼어 있었다. 도요오카시는 1971년 황새가 멸종하자 복원사업을 벌여 인공부화한 뒤 2005년부터 방사해왔다. 농약 과다 사용 등으로 황새가 멸종한 지 34년 만이었다.

일본 황새 복원사업이 결실을 보기까지는 농민들 도움이 컸다. 황새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황새와 먹이생물에 치명적인 농약을 사용하지 않거나 줄여야 했다. 논에 농약을 뿌리지 않는 친환경 농법 덕분에 황새는 다시 하늘을 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기 황새가 멸종했다. 1971년 4월 충북 음성에서 황새가 번식한다는 소식이 보도된 지 불과 3일 만에 수컷 황새가 밀렵꾼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우리나라 야생에서 번식하던 마지막 황새 부부 중 수컷이 죽자 혼자가 된 암컷 황새는 1983년 건강이 나빠져 한 동물원으로 옮겨졌는데, 농약 중독 상태였다.

먼 일본에서 방사한 ‘봉순이’가 김해 화포천 습지로 날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화포천 습지에는 황새 먹이인 미꾸라지 개구리 등 다양한 생물이 풍부하게 서식한다. 화포천 습지는 한때 공장 폐수 등으로 오염됐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가 쓰레기 줍기를 실천하고 친환경 농업을 권장하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봉순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이유다.

▲ 노무현 대통령과 봉하마을 주민들이 친환경 농업과 화포천 습지 복원에 앞장선 결과 황새 ‘봉순이'는 이에 화답하듯 화포천 습지를 찾아왔다. ⓒ KBS

기후 위기 시대를 맞이한 지금, 농업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은 10월 농촌진흥청 국정감사에서 “정부는 친환경 농법 확대로 매년 3%씩 화학비료 사용량을 절감하겠다고 했지만 지난해 화학비료 사용량은 44만1200t으로 2011년과 비교해 13.3% 증가했다”고 비판했다. 무분별한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은 토양 침식과 온실가스 배출 등으로 이상기후를 초래하고, 이는 식량위기로 이어진다.

올해 54일간 이어진 최장 장마는 인간이 쏜 총에 맞은 지구가 보낸 마지막 경고일지 모른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업을 활성화해 자연을 복원해야 한다. 친환경 농산물 소비가 인류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는 생각과 함께 농민들이 친환경 농업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등 의식과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홀로 떠돌다 농약 중독으로 고통받던 마지막 황새가 될 것인지 풍부한 먹거리를 찾아온 봉순이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이봉수)

편집 : 유희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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