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중증응급의료 사각지대 제천∙단양

지난 2018년 7월 중순 어느 날 오후 5시 15분경, 제천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이 아무개(61) 씨는 퇴근을 하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다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껴 주저앉았다. 작업반장인 장 아무개(62) 씨가 급히 이 씨를 차에 태워 5시 30분쯤 제천의 한 병원으로 옮겼다. 이 씨는 뇌경색 진단을 받았으나 제천에는 뇌경색 수술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의료진을 갖춘 병원이 없어 큰 병원으로 옮겨야 했지만 갈 수 있는 병원을 제때 찾지 못했다.

제천의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있는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은 물론 인근 큰 도시의 병원들에 연락을 했지만 ‘병상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 씨를 받을 수 있다는 병원이 없었다. 병원에 도착한 지 3시간 지난 오후 8시 30분이 넘어 이 씨의 동료가 사설응급차를 불러 밤 10시 반이 다 돼 경기도 안산 고려대병원으로 옮겼지만 골든 타임이 지난 뒤였다.

가벼운 뇌경색 증상이 나타난 뒤 치료를 해서 회복 가능성이 있는 최소한의 시간인 골든 타임이 4~5시간인데 이 씨가 고려대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증상이 나타난 지 5시간을 넘긴 것이었다. 특히 뇌경색은 증상이 나타난 지 30분 안에 치료를 받아야 완치율이 90% 이상 되는데 이 씨는 최소한의 골든 타임마저 넘겨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받았지만 팔다리가 마비돼 걷지를 못하고 말도 어눌하고 시력도 약해졌다.

▲ 제천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이 아무개 씨의 직장동료 정상화 씨가 지난 12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이 씨가 쓰러진 뒤 수술을 받기까지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김태형

이 씨의 직장 동료 정상화(47) 씨는 “(이 씨가) 제천 병원에서 3시간 이상 기다리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 너무 늦게 수술을 받아 제대로 회복을 못 했다”며 “제천에 뇌경색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있었거나 가까운 곳에 큰 병원이 있었으면 저렇게 걷지도 못하게 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이 씨는 초기에 바로 병원으로 가서 그 정도로 그쳤지 위급한 환자였다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며 “인구 13만이 넘는 제천시에 뇌경색 수술을 할 수 있는 응급의료센터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자연치유도시면 뭐해? 응급환자 수술도 못하는데…”

▲ 2년여 전 뇌경색 수술을 받고 후유증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조연식 씨가 지난 21일 세명대 한방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나와 발병 당시 병원들의 대처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김태형

“우리 제천 슬로건이 ‘자연치유도시’라는데 응급환자 치료할 큰 병원도 하나 없이 무슨 치유도시예요. 위급한 환자가 생기면 다 서울로 큰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힐링은 무슨 힐링이냐고?”

지난 21일 오전 제천시 세명대 한방병원 앞에서 만난 조연식(53) 씨는 “뇌경색으로 수술을 받은 뒤 3년째 후유증 치료를 받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 씨는 지난 2018년 6월 29일 밤 10시경 뇌경색 의심 증상이 나타나 119를 불러 타고 밤 10시 30분경 제천 서울병원으로 갔다. 이곳에서 뇌경색 진단을 받은 조 씨는 병원 측을 통해 서울 등지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알아봤지만 병상이 없어 이송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다른 곳에 있는 큰 병원들이 와도 (수술 등 처치가) 안 된다고 해 기다리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며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수원에 있는 (경기남부권역 응급의료센터인) 아주대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조 씨는 뇌경색 치료 골든 타임인 다섯시간 안에 아주대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받았지만 왼쪽 다리를 절고 왼쪽 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등 좌반신 불수가 됐다.

제천∙단양, ‘제때 치료 못해 사망한 비율’ 서울의 1.6배

충북의 북동쪽에 치우쳐 있는 제천∙단양 지역에는 응급환자 처치를 위한 중증응급의료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뇌경색 심근경색과 중증외상환자들이 제때 제대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장애인이 되거나 사망하는 사례가 많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조사하는 ‘보건의료실태조사’ 2017년도 발표 자료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중 ‘인구 10만 명당 치료 가능 사망자 수’가 가장 높은 곳은 충북으로 58.5명에 이른다. ‘치료가능 사망자 수(amenable mortality rate)’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제공했을 때 예방 가능한 사망자 비율’을 뜻하는데, 충북은 가장 낮은 서울의 10만명당 44.6명보다 1.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천과 단양은 충북지역 11개 시군 중에서도 두번째와 네번째로 많은 각각 10만명당 65명과 71명으로 충북 평균인 58.5명보다 훨씬 높다. 제천과 단양은 중증응급의료체계가 미비돼 제때 치료나 처치를 받으면 살 수 있는데도 사망하는 응급환자비율이 서울의 1.5~1.6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 2015년 시도별 치료가능 사망률 산출(Nolte and Mckee 기준) 결과 충북(58.5)이 가장 높고 서울(44.6)이 가장 낮았으며, 충북지역 시군별로 보면 제천(65)과 단양(71)은 충북 평균인 58.5명보다 훨씬 높다. Ⓒ 김태형

중증응급의료체계 미비로 실제 응급환자 사망자수도 제천과 단양이 매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충청북도가 2019년 7월 발표한 ‘충북지역 공공보건의료 마스터플랜 수립 연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충북지역 뇌혈관질환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28.4명으로 가장 낮은 서울시의 23.3명에 견주어 1.2배 많았다. 충북지역 11개 시군의 뇌혈관질환 사망률은 제천이 인구 10만명당 31.4명으로 세번째로 많았고, 단양이 31명으로 네번째로 많았다.

▲ 2015-2017년 충청북도 뇌혈관질환 사망률. Ⓒ 충청북도 공공보건의료 마스터플랜 수립 연구 최종보고서

또 허혈성 심장질환 사망률도 충북이 10만명당 15.8명으로 서울의 13.5명보다 1.2배 많았고, 충북 시군 중에서는 단양이 인구 10만명당 21.4명으로 가장 높았고 제천이 18.9명으로 네번째로 많았다.

▲ 2015-2017년 충청북도 허혈성 심장질환 사망률. Ⓒ 충청북도 공공보건의료 마스터플랜 수립 연구 최종보고서

서울의대 김윤 교수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뢰로 진행한 ‘건강보험 의료이용지도 구축 3차 연구’ 결과를 보면 ‘부적절 초기이용’ 중증응급환자가 ‘적절한 초기이용’을 한 중증응급환자보다 사망위험도가 1.3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부터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이용한 환자보다 그렇지 못한 환자의 사망위험도가 더 높다는 것으로, 제천의 중증응급환자 부적절 초기 이용률은 20.34%로 전국 평균 14.50%보다 5.84%P 높다. 응급환자 발생 때 초기 대응이 적절치 못해 사망자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제천, 종합병원 두 곳 있어도 중증응급환자 처치 못해

제천 단양지역의 ‘치료가능 사망자 수’와 ‘실제 응급환자 사망자수’가 상대적으로 아주 많은 것은 이 지역에 중증응급환자를 처치할 의료기관이 없는 데다 응급처치가 가능한 ‘권역별응급의료센터’가 멀리 떨어져 있어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치기 때문이라고 지역의료계는 분석하고 있다.

지금 제천에는 응급실을 갖춘 종합병원이 제천 서울병원과 명지병원 등 두 곳이 있지만 중증응급환자 수술 등 제대로 된 처치는 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다. 제천 서울병원은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있지만 중증응급환자를 처치할 체제는 없다. 명지병원은 작년 3월 심장혈관센터를 설치해 혈관내 초음파검사 장비와 심장초음파기, 에크모, CRRT 등 장비는 갖췄지만, 심혈관 전문의가 1명뿐이다. 심혈관계 질병 진단은 하지만 수술 등 본격 처치는 어려운 상황이다. 교통사고 등의 사고로 응급 수술이 필요한 중증외상환자는 수술 등을 할 수 있는 의료진과 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아 경기도나 서울 등지 큰 병원으로 이송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단양은 제천보다 의료인프라가 더 열악하다. 그나마 하나 있던 종합병원인 단양 서울병원이 경영난 등으로 2015년 4월부터 휴업을 하다 지난 10월 6일 폐업해 단양에는 제대로 된 병원이 하나도 없다. 단양은 정부가 지정한 ‘응급의료분야 의료취약지’로 단양군립 노인요양병원이 응급의료기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 제천에는 제천서울병원과 명지병원이 각각 응급의료센터와 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됐지만 중증응급환자 처치는 불가능해 지역공공의료체제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김태형

권역응급의료센터도 환자 못 받아 안동까지 보내

제천과 단양 지역에 중증응급환자 치료체제가 구축돼 있지 않아 다른 지역 큰 병원으로 응급환자를 이송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송시간이 많이 걸려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금 충북지역의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청주에 있는 충북대병원으로 지정돼 있지만 제천이나 단양에서 120~130km 이상 떨어져 있어 이들 두 지역은 더 거리가 가까운 강원도 원주충주권역응급의료센터인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가도록 지정돼 있다. 하지만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도 제천이나 단양에서 45~70km나 떨어져 있어 차량이동시간만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 제천∙단양에서 권역응급의료센터까지 이송경로 및 소요시간. Ⓒ 김태형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도 시설이나 의료인력이 상대적으로 열악해 병상이나 의료인력 부족에 따라 응급환자를 이송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있어 중증응급환자 처치에 한계가 있다. 실제로 이 병원은 지난 27일 보건복지부가 전국 권역 및 지역응급의료센터 등의 ‘서비스 수준’을 3단계로 평가해 발표한 결과, 가장 낮은 C등급을 받았다.

제천소방서 구급대원 최 아무개 씨는 “제천에서 응급처치가 안 돼 가장 가까운 원주로 가는 데만 40~50분이 걸린다”며 “그 마저도 병상이 없다고 하면 다른 곳으로 가는데 급성심근경색처럼 골든 타임이 중요한 환자들이 치료를 못 받아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제천 지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지역응급의료기관에서 치료할 수 없는 중증환자들을 권역응급의료센터로 보내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겁니다. 권역응급의료센터에 환자가 너무 많아 병상이나 수술 등을 할 수 있는 의료진이 부족해서 받을 수 없다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응급실 의사들은 서울, 경기, 청주까지 환자를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응급실 근무를 할 때는 (제천∙단양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있는) 원주로 환자들이 거의 100% 갔는데, 지금은 원주에서 반도 수용을 못하고 있습니다.“

▲ 김면중 제천 서울병원 이사가 지난 12일 제천시청에서 열린 ‘제천∙단양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공개 토론회’에 참석해 지역응급의료체제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 김태형

지난 12일 제천시청에서 열린 ‘제천·단양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공개 토론회’에 참석한 김면중 제천 서울병원 이사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응급환자들이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못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충북권역응급의료센터가 있는 충북대병원을 가려 해도 거기도 못 받는다 하면 경북 안동에 있는 병원까지 급한 환자를 보낸다”며 “이 정도로 응급전달체계가 무너져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의료체제 구축해 응급의료 사각지대 없애야

이처럼 제천∙단양 지역이 중증응급의료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지난 6월 제천 참여연대 등 7개 시민단체는 ‘제천·단양 공공의료 강화 대책위원회’를 발족해 두 지역의 공공의료체제 강화를 통한 중증응급의료체제 구축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책위가 발족 직후 제천∙단양 두 지역 주민 7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2%가 ‘공공의료체제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동시에 지역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하는 분야(중복응답)로는 가장 많은 65%가 ‘응급·외상·심뇌혈관 등 필수 중증의료’를 꼽았다.

대책위 최성호 사무국장은 “제천 지역은 중증응급환자가 골든 타임 안에 수술을 받고 회복까지 할 수 있는 병원시설이나 의료진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 등 심혈관 응급환자나 중증외상환자 치료를 위한 의료체제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배장환 교수는 9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똑같은 세금을 내고 서울 종로구에 사는 사람들과 제천 사는 사람들이 사망률이 다르다면 지역적 불균형이 있는 것”이라며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정부의 지속적인 사실 관계 추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환자 수가 적은데 사망률이 높은 심근경색증이나 뇌졸중, 중증외상과 같은 중증질환의 경우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며 “의료기관이 수익을 낼 수 있게 해주거나 그것이 안 되면 공공의료로 대체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도 안 되는 곳은 권역별응급의료센터를 지금보다 촘촘하게 추가로 지정하는 등 적절한 이송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편집 :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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