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특수고용노동자 혜택도 없는 품바들의 코로나 수난

“아 절 씨구씨구씨구씨구 들어간다
아 절 씨구씨구 들어간다
아 작년에 왔던 각설이는
올해는 죄다 죽었네
어허 품바가 들어갈까
얼씨구 씨구씨구 들어갈까
저얼 씨구씨구 못 들어간다

어 품바가 말을 한다
오늘 가도 헛걸음이요
코 풀었다고 막걸리 술은 있어도
남원제 춘향제도 없고
군항제도 열릴 리 없고
오일장 장사꾼도 쉬니
품바가 놀 데 없지 
가을 운동회도 공쳤고
고희연 동네축제에
모조리 취소에 품바 품바가 죽어간다……”

품바 생활 20년의 김충실(48) 한국각설이품바협회 사무총장이 요즘 택배일을 하면서 틈틈이 흥얼거리는 각설이타령이다. 품바는 사전적으로는 ‘장터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걸하는 사람’이란 뜻이지만 요즘은 지역 축제 등에서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공연을 하는 이벤트 사업 종사자들을 말한다. 그는 지난 연초 이후 코로나 19 확산으로 품바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7월부터 택배 일을 하고 있다.

작년 이맘때 비해 품바 공연 99% 줄어

“코로나로 품바들 공연장인 지자체 축제부터 고희연, 동창회, 동네잔치까지 줄줄이 취소돼 행사가 많이 준 정도가 아니라 작년 같은 때보다 99% 줄었습니다. 품바들은 지금 생계유지가 아예 안 되는 상황인데 따로 배운 기술이 없어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요. 오죽하면 품바 인생 20년에 생각도 하지 못했던 택배 일을 시작했겠습니까?”

김 씨는 지난 12일 <단비뉴스>와 통화하면서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다들 어렵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품바들은 특히 어려운 시절을 지나고 있다”며 “품바들 전부가 지금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품바로 살아온 20년 동안 6개월 이상 단 한 건의 공연도 없이 쉰 것은 처음이어서 한진택배에서 배송일을 시작했다.

▲ 김충실 한국각설이품바협회 사무총장이 지난 7월 자신이 운전하는 택배회사 차 앞에 서있다. 그는 코로나로 공연이 대부분 취소돼 생활이 어려워지자 택배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 김충실

품바 일을 할 때는 주말을 끼고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 5일 공연을 뛰었는데, 택배 일은 월화수목금토 주 6일을 매일 13~14시간씩 일하니 매우 힘이 든다.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서 7시에 출근해 밤새 도착한 택배물품을 3시간 동안 분류한 뒤 차에 싣고 나가 책임구역을 돌면서 밤 9~10시까지 배송 일을 한다. 일도 힘든 데다 시간이 없어 식사도 제대로 못해 택배 시작 석 달 만에 체중이 10kg 이상 줄었다. 처음 수습기간 중에는 하루 50건 이하를 배달하고 월 80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지금은 월 25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린다. 수입은 품바로 일할 때가 택배일을 하는 지금보다 나았다고 한다.

당장 수입이 줄어든 것도 그렇지만 더 힘든 것은 자기 집 근처 공연장에서 가뭄에 콩 나듯 한번씩 품바 공연을 할 때다. 품바 가락이 울려 나오면 바로 무대로 뛰어올라가고 싶은데, 코로나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택배 일을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해지기 때문에 애써 참고 넘어간다.

김 씨는 중견급 이상 품바여서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편이다. 하지만, 초보 품바들이나 복수의 품바들이 만든 공연단은 그동안에도 최저임금 전후 수입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 왔는데 코로나 이후 더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남자 품바는 건설 일용직이나 택배 등 육체노동을 하고, 여자 품바는 식당이나 편의점 등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번처럼 오래 쉰 것은 처음

“구제역, 메르스 등 20년 동안 여러 일을 겪었지만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쉬어 본 건 올해가 처음이에요. 오늘까지 두 건밖에 못했어요, 두 건만…”

▲ 품바 놀이패 ‘풍각쟁이 공연단’ 박정옥 단장이 지난 10월 1일 인천의 한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조한주

일곱 품바들이 함께 공연을 하는 ‘풍각쟁이 공연단’ 박정옥(54) 단장은 14일 “예술공연에서 불황, 불황 하지만 올해 같은 불황은 처음 본다”면서 “올 한 해 겨우 두어 건 정도 공연했을 뿐 사실상 한 해를 공친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박 단장이 코로나 이후 열 달 만에 처음으로 관객과 대면공연을 한 지난 10월1일 인천 남동구 한 한식당 앞 간이 공연장의 관객은 대여섯 뿐이었다. 얼마 전 두 번째 대면공연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다가 아예 품바 공연이 없어지지 않을까 불안하다.

품바이자 두 자녀의 어머니인 박 단장은 20년 넘게 예명 ‘방뎅이’로 살아왔다. 2000년대 초반 서울 강남에서 미용실을 할 때 손님들 퍼머를 해주면서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은 한 고객이 노래자랑 예선전에 박 단장을 출전시킨 것이 품바 인생 20년의 시작이었다. 공연이 있는 날은 하루 12시간 이상 쉬지 못하고 춤추고 노래하지만 사람들과 만나 즐거움을 줄 때 받는 행복감 때문에 적은 수입에도 품바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살아왔다.

▲ 지난 10월 1일 박정옥 단장의 풍각쟁이 공연단이 공연한 인천 남동구 한 한식당 옆 간이 공연장에서 두세 명 밖에 안 되는 관객이 공연을 보고 있다. 사진 오른쪽 사람들은 유튜브로 품바 공연을 송출하는 스태프다. ⓒ 조한주

처음엔 동네 행사나 회갑연 같은 개인 잔치 공연으로 출발했지만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품바가 됐다. 매년 9월 초 남원에서 열리는 춘향제 같은 대규모 지역축제나 고등학교 동문회, 가을운동회까지 매달 적어도 두 건의 공연을 치렀다. 행사가 많은 가을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늦으면 새벽 2시까지도 공연을 하는 빡빡한 날들을 보냈지만 힘든 줄 몰랐다. 공연을 보고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며 여섯 사람과 함께 ‘풍각쟁이 공연단’을 결성해 이벤트 사업자 등록도 했다.

넉넉치 않은 생활이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움을 주는 것을 낙으로 삼아온 그에게 올 한 해는 정말 견디기 힘든 가혹한 해가 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역축제 동문회 운동회 동네잔치는 물론 산악회 모임까지 줄줄이 취소되면서 품바 단원들 무대도 사라졌다. 전국적으로 400~500명 정도되는 것으로 추산되는 품바들의 삶의 터전이 없어진 것이다.

박 단장은 “2014년 세월호 사고 뒤에도 삼가는 분위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고희연이나 회갑잔치 같은 개인적인 행사는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 없다”며 “구제역∙메르스 때는 오래 쉬어도 보름 정도였는데 올해 같은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 지난 4월 경남 창원시 진해 주택가에 걸린 플래카드. 품바들의 주요 무대 중 하나인 벚꽃 축제 군항제의 취소를 알리는 내용이다. 매년 봄 엄청난 인파가 몰리던 진해 군항제는 코로나19로 올해는 열리지 않았다. ⓒ KBS

긴 공백기는 풍각쟁이 공연단의 존립 자체를 위협했다. 박 단장 자신도 그전에도 1년에 3천만원 정도 벌면 절반은 천막 대여비 등 경비로 나가 수입이 별로 많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마저 없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전북 정읍 내장산 근처 사유지를 빌려 공연을 하고 있지만, 단원들 숙식과 공연준비 비용을 제하고 나면 수입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년까지는 한 해 20~30개 지역축제나 각종 행사에 출연해 단원들에게 최저임금보다는 많은 월 160만원 이상 출연료를 줄 수 있었는데, 올해는 겨우 밥값 정도 될까 말까 한 수준이다.

박 단장은 “단원들이 수입이 없어 힘들어 해도 말로 위로하는 것 말고 뾰족한 수가 없어 안타깝고 힘들다”며 “대부분 품바 전업에 다른 일을 안 해본 사람들이라 마땅한 일거리도 못 찾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 지난 10월 1일 인천 남동구 한 한식당 옆 간이 공연장에서 박정옥 풍각쟁이공연단 단장이 노래하는 모습을 한 관객이 관람하고 있다. ⓒ 조한주

실업급여도 특수고용노동자 지원도 못 받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8월말까지 집계한 ‘2020년도 지자체 지역축제 개최 현황’에 따르면, 문체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전국 지역 축제의 97.4%가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엄상용 한국이벤트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9월과 10월 행사 역시 99% 취소됐다고 봐야 한다”며 “대구∙경북 지역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나온 3~4월보다 수도권과 전국 곳곳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가을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약 1천200여개 지역 축제에 연 5조원 정도 돈이 풀리던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돼 이들 행사를 생계수단으로 삼아 온 사람들이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 각 지역마다 축제가 취소됐다는 내용을 알리는 기사들. ⓒ 조한주

그럼에도 품바와 이들 행사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마땅한 지원책도 없어 더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 품바는 실업급여 등을 받을 수 있는 정규 근로자는 물론 택배기사나 학습지 교사 등과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해 국가 지원금을 받을 방법도 없다. 김 사무총장은 “품바들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봤지만 정부기관으로부터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이런 저런 고민을 해보지만 배운 것이 품바 밖에 없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지난 8월 충북 음성군이 온라인으로 진행한 충북 음성 품바축제의 모습. ⓒ 음성군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취소된 지역축제 대신 일부 지자체들이 온라인 행사를 하고 있지만 그것도 품바들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매년 5월 말 열리던 충북 음성 품바축제는 대면공연은 취소되고 대신 지난 8월 온라인 공연으로 열렸다. 온라인 생중계는 순간 동시 접속자가 1만 명이 넘었지만, 대부분 트롯 가수 박서진 씨 팬들이었고, 품바는 고작 10팀이 전부여서 대다수 품바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김 사무총장은 “코로나19가 언제 풀릴지 몰라 전업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고 저임금의 일용직이나 택배 일 정도밖에 못 하는 상황”이라며 “지원금 지급이 어렵다면 품바들이 공연을 할 수 있는 온라인 행사 등 무대라도 좀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품바들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의 겨울이 더 춥고 길어지면서 이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편집 :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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